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의 지혜 Feb 04. 2024

폭풍전야 (4)

  그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미영이는 엄마와 다시 집에 들어다. 아빠는 넘어진 그 자리 그대로 누워 있었다. 미영이는 아빠가 아직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 편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드리고 싶었지만 다시 깨서 엄마와 자신을 때릴까 두려워 그러지 못했다. 미영이는 엄마가 차려 주시는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갔다. 선희도 출근을 하였다. 학교에 갔다 온 미영이는 아빠가 아직 주무시계시는 것을 보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잠도 많이 자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놀러 나가기 바빴다.


  놀이터에 간 미영이에겐 같은 반 민호라는 남자친구가 하나 있었다. 늘 가르마를 정갈하게 타고 웃을 때 패이는 보조개가 선한 인상을 주는 아이였다.

  민호네 부모님은 평범하신 분들이신데 미영이를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미영이가 보통내기도 아닌 데다가 하고 다니는 행실이며 몰골이 여간 꼴사납지가 않았. 그래도 학급 반장에 공부도 썩 잘해 놀게 내버려 두고 있었다.


  놀이터는 미영이가 10분 남짓 걸어와야 하는 곳에 있었다. 학교와 가까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라 친구들이 제법 많았다.
  “미영아” 하며 친구 두어 명이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니 수지와 지혜였다. 별로 반가운 친구들은 아니었다.

 수지는 늘 하얀 스타킹에 원피스를 입고 다녔고, 놀이터에도 늘 그렇게 하고 왔다. 하얀 스타킹에 뭐라도 묻을세라 새초롬하게 앉아있다가 그네만 몇 번 타고 들어가 버리는 아이였다.


  “어, 왔어?
  “미영아, 근데 너 옷이 왜 그래?”
  “내 옷이 뭐 어때서?”
  “아니 안 안냐고? 옷 색깔이 노란색인지 갈색인지 모르겠잖아. 하하하. 개쩐다 진짜.”


  미영이는 그제야 제 옷을 보았다. 색깔이 바랜 노란색 블라우스가 하얀색 스타킹에 분홍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수지 앞에서 더 도드라져 보였다.


  “남이사 뭘 입고 다니던 웬 참견이야 흥.”


  코웃음을  미영이는 부르쥔 주먹을 제 가슴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심장이 다시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깨금발을 하며 발끝에 힘을 주니 한쪽 발이 저려 왔다.


  “미영아, 우리 미끄럼 타자.”
저쪽에서 미영이를 본 민호가 큰 소리로 부르며 오고 있었다.
  “그래.”
그 자리가 불편했던 미영이는 민호를 보자마자 반기며 가려고 하는 참에


  “민호야, 나 내일모레 생파 하는데 너 오지 않을래?” 하며 수지가 민호에게 치근댄다.
  “누구누구 오는데?
  “우리 반 애들 거의 초대해도 된다고 했으니깐 시간 되는 애들은 다 올걸?”
  “미영이 너도 올래? 근데 올 때 옷은 좀 빨아 입고 와라.”


  수지와 지혜는 미영이를 보며 킥킥 댔다. 안 그래도 작은 몸이 더 움츠려 들었다. 당찬 미영이도 초라하고 알량한 제 모습은 어쩌지 못했다.

  이 아파트는 평수도 넓고 제법 사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미영이는 단칸방에 세 사는 제집을 생각하니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우습게 보였다. 아로새겨지는 이 모든 것에 또다시 심장이 거침없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뛰는 심장은 엄마가 오셔도 결코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을 미영은 잘  알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폭풍전야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