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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Feb 02. 2024

폭풍전야 (3)

  영팔이는 그새 어디서 났는지 벌써 술을 마시고 있었다. 취기가 오는지 몸 가누는 것이 어째 예사롭지 못했다.

  "왜 이제 들어와? 간땡이가 부었나. 어떤 놈이랑 붙어먹고는 기어들어 와?"

  ​영팔이는 선희를 보자마자 뜬금없이 대뜸 시비부터 걸었다.

  선희는 식당에서 일했다. 설거지를 주로 해서 손이 부르트고 손끝이 다 갈라졌다. 미영이는 그런 엄마의 버석버석한 손을 참 좋아했다.

  선희는 그런 영팔이를 짐짓 못 본 척 배고플 아이 저녁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계란후라이를 하나 부치고 김치와 김을 꺼냈다. 그리고 식당에서 가져온 질겨 터진 고기를 대충 썰어 상을 차렸다. 미영이를 불러 한쪽 구석에서 밥을 먹였다. 거의 다 밥을 먹을 즈음 어느새 왔는지 영팔이가 와 있었다. 미영이는 놀라 밥을 먹다 목구멍에 사레가 들려 캑캑거렸다. 선희는 얼른 물을 주었다. "꿀꺽꿀꺽" 아이가 물을 다 넘기기도 전에 영팔이는 밥상을 엎었다.
​  "와장창”
  그릇들이 사방팔방 나뒹굴며 방바닥에 음식들이 쏟아져 집안은 온통 난장판이 되었다. 벽에 튄 김치국물의 고춧가루가 영문도 모른 채 흉물스럽게 흩어졌다. 흩어진 반찬들 중 질겨 터져 잘 씹히지도 않는 작게 잘려진 고기가 꼭 영팔이의 심장같이 메말라 비틀어져 보였다.
  “내가 그렇게 우스워? 너, 그러다 나한테 제대로 한 번 걸리면 뒤진다.”
  흩어진 김칫국물이 누렇게 변한 영팔이의 윗도리에도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선희는 아이가 다칠세라 아이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 꼭 끌어 안 긴 미영은 엄마의 품 안이 참 좋았다. 엄마의 품 안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들썩들썩하던 심장도 고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영팔이가 선희를 때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저질렀길래 아빠가 저러는지 미영이는 아빠가 미웠다. 엄마가 가여워 눈물이 차 올랐다.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늘 그렇듯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미영이는 생각했다.

  아빠는 엄마를 때리다 숙취가 많이 올라오면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그리곤 그 자리에 꼬꾸라져 잠이 들었다. 그래서 미영이는 아빠가 빨리 잠들기를 바랐다. 미영이는 엄마를 더 꼭 끌어안았다.


  이내 곧 선희의 머리끄덩이가 잡혔다. 선희는 내팽개쳐졌다. "휙" 하며 선희의 몸이 날아갔다. 미영이는 결국 엄마와 떨어졌다.

  영팔이는 힘에 부쳤는지 숨을 헉헉대며 식식댔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영팔이는 뻘겋게 익은 얼굴로 열을 내며 미영이에게 다가갔다. 미영이는 그런 아빠가 너무 무서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때 선희가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영팔이를 밀쳐냈다. 영팔이는 휘청하더니 뒤로 넘어졌다. “쿵” 문지방에 머리를 찧었다.

  그 뒤로 영팔이는 무슨 영문인지 일어나지 않았다. 선희는 딸을 꼭 끌어안고 토닥여 주었다. 미영이는 아직도 심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팔딱팔딱 도저히 잠잠해질 것 같지 않았다.

  선희는 미영이에게 잠바도 입혀 주지 못한 채 미영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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