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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Oct 02. 2024

열둘. 오랜만에 걸어보는 동네

여름이 지나갔다

임시 공휴일. 어제 늦게 들어온 탓에 주차장에 병행주차해 둔 차를 옮길 장소가 있는지 거실에서 아파트 앞 주차장을 내려다보았다. 이쪽은 병행주차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침에 차 빼기가 쉽다. 다행히 주차 공간이 보였다. 주차는 시간차다. 얼른 내려가 대충 세워둔 차를 빼서 앞쪽 주차장으로 와서 빈 공간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왔다. 다행이다.

그리스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규칙적이었던 산책은, 엄청나게 덥고 습했으며 오래 지속되기도 했던 더위로 인해 나갈 엄두가 나지도 않았었다. 처서가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폭염주의보가 떴던 더위에, 직장에서의 일도 만만찮게 바빴었고 집에 오면 나가기가 귀찮을 정도였으니까.

오전 중에 간간이 뿌려지던 비가 완전히 그쳤고 서쪽 하늘의 구름이 흩어져 저녁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 아직은 밝은 저녁, 오랜만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물병에 비타민 C 한 포를 타서 집을 나섰다. 처음에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 나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날이 쌀쌀했다. 바람막이 점퍼를 하나 걸치고 집을 나섰다. 서늘한 저녁이라 걷기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이전에 걸었던 강변길까지 가기에는 해질 무렵이라 조금 멀었고, 아파트 뒤쪽 산책길을 반복해서 걷다가 큰길로 나와 우리 동네 부근의 하천변을 걸었다. 제법 바람이 서늘했다. 봄에는 이런 서늘한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는데, 똑같이 서늘한 바람이지만 이제 앞으로 싸늘해질 것을 예고하는 바람이어서인지 조금 쓸쓸해졌다. 아직 길섶의 백일홍은 예쁜 꽃을 계속해서 피워내고 있지만, 이제 올해도 딱 석 달 밖에 넘지 않았고, 이제 조금 더 쌀쌀해지면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알기 때문이랄까. 올해 여름이 무척이나 덥고 습해서 올해 겨울은 어떨지 모르겠다. 옛날에 비하면 온도는 분명히 덜 내려가겠지만, 덥게 지내다 보니 상대적으로 겨울이 매섭고 차갑게 느껴질 것 같다. 올 겨울은 춥다는 예보가 미리 돌고 있는 탓이기도 하지만. 

낮이 짧아진 것이 확 느껴지는 저녁이었다.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고, 하천 옆의 논에는 벼의 이삭이 고개를 숙인 모습이 보였다. 여행을 떠날 때만 해도 아직 파릇파릇하고 꼿꼿한 줄기만 세우고 있더니 어느새 꽃이 피고 나락이 맺혔나 보다. 아직은 푸른 잎을 간직하고 있는 벼들이 부드럽고 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게 되면 어느 순간 이 논들도 수확이 끝나 텅 비게 될 것이다. 

십 대 때는 시간이 시속 10 km로 흐르고, 이십 대 때는 시속 20 km, 삼십 대 때는 시속 30 km로 흐른다더니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니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 똑같은 시간의 흐름인데도, 어릴 때는 그렇게 어른이 되고 싶더니 어른이 되니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마트 밴드의 운동량을 보니 어느새 7.4 km를 걸었다. 이십 리에서 살짝 모자라는 수치이지만 오늘은 오랜만에 걸은 것이니 정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같다. 오랜만의 동네 산책인지라. 

집에 오니 살짝 배가 고프다. 그러나 운동을 나가기 이전에 너무 많이 먹어서 이 시간에 저녁을 먹기는 너무 부담스럽다. 나또 하나를 꺼내고 며칠 전에 사둔 작은 시나노 골드 사과 하나, 바나나 한 개를 꺼냈다. 내일은 원래의 산책로대로 돌아볼 것인지 어떨지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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