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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등대 Apr 16. 2023

일기장에서 동화책으로

지올팍의 음악

지올팍이 새 앨범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 》으로 돌아왔다. 그는 앨범을 이렇게 소개한다. “This fairy tale book was written by Zior Park and his Friends.” 즉 이 앨범은 지올팍과 친구들이 함께 쓴 동화책이다. 기시감이 든다. 지올팍의 첫 앨범 《THUNDERBIRD MOTEL》에서 비슷한 골격의 소개글을 읽은 적이 있다. “This is demo tape based on a diary found at the THUNDERBIRD motel.“ 그의 첫 앨범은 썬더버드라는 모텔에서 발견된 일기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일기장은 오래도록 낡은 모텔방에서 나오지 않던 한 투숙객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수상하고도 우울했던 투숙객이 모텔방을 나와 만난 친구들과 함께 쓴 동화책이 이번 앨범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 》인 것이다. 모텔방 구석에서 혼자 일기를 쓰던 그가 누군가와 함께 동화책을 쓰기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는 그의 앨범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먼저 그의 시작을 보아야 한다.


공포영화에서 긴장감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는 배경음악의 대명사로 꼽히는 영화 〈싸이코〉의 끼긱대는 현악소리를 오마주한 듯한 불안한 음으로 《THUNDERBIRD MOTEL》의 첫 곡은 시작된다. THUNDERBIRD 모텔의 청소부는 오래도록 나올 생각을 않는 한 투숙객의 방을 찾아간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자 문고리를 돌려 본다. 뜻밖에도 문고리는 쉽게 돌아간다. 인기척 없는 방 안을 휘 둘러보던 청소부는 테이블 위에 놓인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렇게 앨범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앞서 밝혔듯 이 앨범은 그 일기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앨범 내내 천둥소리가 우르릉, 하고 깔려 있는 듯하다. 눈앞에 번개가 번쩍이는 듯하다. 그래서 이 앨범의 가장 중심에 있는 노래는 〈CAN’T STOP THIS THUNDER〉가 아닐까 한다.


그는 ‘THUNDER’s inside / THUNDER’s outside’라고 노래한다. 자신의 안에도, 밖에도 번개가 치고 있다는 것이다. 번개란 갑작스레 번쩍이는 불꽃이다. 보통 번개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지나갔다고 안심하는 순간 눈앞에 다시 번쩍 나타난다. 게다가 대개는 천둥까지 몰고 온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번개가 내 안에서 내리친다면 어떻게 될까.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번쩍임을 안고 사는 것, 이것의 다른 이름은 불안일 것이다. 화자는 매 순간이 불안하다는 말을 내 안에 번개가 치고 있다는 말로 대신한다. 가사로서의 기교인가, 아니면 사람들에게 불안이라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이는 잘못된 고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로 이어지는 가사와 곡들 때문이다.


Turn off that light for me 날 위해 불을 꺼줘

Leave me to feel grief 내가 슬픔을 느끼게 내버려 둬

I’m sick of being chosen one 난 이제 선택받은 척하기 지쳤어


우리가 슬픔을 겪고 있을 때 가장 힘든 순간은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 있을 때일 것이다. 울 수 있는 자리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말이다. 그는 그런 상황 속에 있다. 자신이 울기에는 세상이 너무 환하니 잠깐만 불을 꺼달라고 부탁-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애원에 가깝다-한다. 어둠 속에 몸을 뉘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한다. 번개와도 같은 불안이 ‘선택받은 자’로서의 불가피함이라고 애써 받아들여오던 그는 지쳐버렸다. 그는 애써 유지해 온 ‘선택받은 자’라는 수식어를 내팽개친다. 무엇이 그를 이리도 힘들게 만들었을까. 앨범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를 괴롭히는 것은 ‘They’, ‘People’이다. 그가 추구하는 것들을 부정하고 그를 ‘유니콘‘, ’몽상가‘, ’환상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칭하며 그의 계획들은 모두 ‘욕심’에 불과하다 결론짓는 사람들. 그들의 말에 그는 ‘그래, 나 몽상가야. 존 레논과 같지.’(〈Sleepwalk〉)라고 시원하게 말하지만 시원한 속엣말일 뿐이다. 그는 그 사람들을 웃는 ‘가면’을 쓰고 대한다. 그러니까 그는 마음껏 울 수 없는 상황이자 마음껏 화낼 수도 없는 상황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것은 바로 창문이다. 딱 여섯 발자국 거리에 있는 창문. 머릿속의 목소리는 그를 자꾸 창문으로 내몬다. (Distance to the suicide / It's closer than I thought / 6 feet to the window - 〈Distance to the suicide〉) 이런 가사를 쓰는 사람이, ‘내 안에 번개가 친다’라는 표현을 그저 기교로써 사용하거나 불안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했을 리 없다. 그는 그저 느낀 그대로를 전달하고 있을 뿐이고 그럴 힘밖에는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앨범의 마지막 곡 〈LAND〉에서 파일럿처럼 날아 이 땅을 벗어나는 상상을 한다. 가면을 벗을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날아다니다가 죽는 상상을. 상상이 한창이던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앨범 첫곡의 기이한 전주가 다시 들려오는 것이다. 이는 상상의 끝과 지긋지긋한 현실의 시작을 알린다. 이로써 《THUNDERBIRD MOTEL》은 고통과 우울이란 멎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내리치는 번개와 같다는 진리를 잔인하리만치 완벽하게 보여주고 끝난다.





어떻게 이런 일기를 쓰던 사람이 발랄한 동화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에 대한 첫 번째 답은 이후 발매된 앨범 《SYNDROMEZ》에 있다. SYNDROMEZ는 지올팍이 수장으로 있는 크루의 이름이고 이 동명의 앨범은 그 크루와 함께 만들어낸 첫 결과물이다. 그는 이 앨범의 목표가 자신의 병과 아픔을 모두와 공유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THUNDERBIRD MOTEL》는 아무런 목표 의식 없이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뱉어낸 결과물-일기의 속성이 그러하다-이었다면, 《SYNDROMEZ》는 자신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그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저 자신만이 독자인 날것 그대로의 일기의 단계에서 한 단계 더 넓어졌다. 비록 너무도 외로워서 귀신에게 떠나지 말라고 애원하고(〈GHOST〉) 검은 상어 떼가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며 무서워하고 (〈BLACK FIN〉) 자신을 저 아래에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는 활화산,(〈ACT!VE VOLCANO〉) 혹은 아무도 정주할 수 없는 무중력의 땅이라고 아프게 정의하지만 (〈0 GRAVITY〉) 첫 앨범만큼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앨범과 크루에 대한 짤막한 소개 격인 〈SYNDROMEZ RADIO〉에서 찾을 수 있다.


I have a pain but people don't care

Pain has no name

They only care about the tangible

The kind defined by medical institutions

But you see, there more than meets the eye

The nebulous, impalpable , unnamed pain

You! I've gathered your people

I see your pain

We are SyndromeZ


사람들은 말해질 수 있는, 병원에서 진단 가능한 고통에만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 말고도 이름 없고 모호한 고통은 세상에 무수히 많다. 그러한 고통들은 말해지기 힘들다. 그리고 말하기 힘든 고통이 가장 큰 고통이다. 그는 그러한 고통을 앓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앓고 있는 이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모은다. 그 결과가 그의 크루, SyndromeZ라고 말하고 있으며 자신의 음악을 듣고 공감하는 사람들 역시 SyndromeZ에 속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이제 든든한 친구들이 생겼고 그리하여 더 이상 고통을 혼자 앓지 않고 그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SYNDROMEZ》는 《THUNDERBIRD MOTEL》만큼은 어둡지 않다. 《THUNDERBIRD MOTEL》는 아름다운 상상 끝에 우울의 반복을 상징하는 기이한 배경음악이 울리며 끝을 맺었지만 《SYNDROMEZ》는 자신에 대한 아픈 정의 끝에 〈SYNDROMEZ RADIO〉의 가사가 울리며 끝을 맺는다. 한 줄기 햇살이 거기 있다. 그 햇살은 점점 더 몸체를 불리더니 이내 내리쬔다. 그렇게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 》가 시작된다.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를 본 한 꼬마가 있었어요.
그 꼬마는 그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 사람들은 그 꼬마를 사스콰치를 쫓는 소년이라고 불렀어요.

그 꼬마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 꼬마는 아직 그 사스콰치를 쫓고 있어요. 신기한 건 그 꼬마와 같은 것을 본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하지만 세상은 환상을 쫓는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곳이에요. 세상은 그의 환상을 빼앗아 가거든요.
지금부터 그 사스콰치를 본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앨범의 첫 두 곡 〈THE MAN WHO SAW SASQUATCH〉와 〈SASQUATCH〉는 어릴 적 ‘사스콰치’라는 환상적 생명을 목격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스콰치를 찾아다닌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노래한다. 그러나 화자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사이코 취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고, 자기 자신이 마치 죽은 인형처럼 느껴지는 이곳을 벗어나 사스콰치를 본 사람들을 모을 거라고 노래한다. (I should gather my people, we should go to mirage - 〈BEING HUMAN〉) 〈BEING HUMAN〉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는 답답한 상자 속을, 사람들을 벗어나 숲 속으로 도망치고 거기서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마주한다. 세상 사람들이 되라고 하는 ‘사람’의 형상과 동떨어진 숲 속의 그들을. 그들을 마주한 그의 눈이 너무 많은 감정을 담은 채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그렇게 화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그 모임의 이름이 바로 지올팍의 크루 ‘SyndromeZ’일 것이다. 신드롬즈의 끈끈함은 첫 앨범보다 한층 더 진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BEING HUMAN〉의 다음 트랙은 〈SUNBURNKID〉로 신드롬즈 크루 내에 있는 ‘선번키드’라는 인물에게서 느낀 감동을 노래하는 곡이다. 그리고 그다음 곡인 〈MAGIC!〉은 이 앨범 내에서, 아니 지올팍이 여태까지 들려준 모든 곡을 통틀어 가장 희망이 넘치는 곡이다.


How beautiful all the rocks are like magic
How wonderful all the creatures are like magic
I didn't realize that I'm living in this blessing


뛰어내릴 수 있는 창문까지의 거리가 여섯 발자국 밖에 안 된다고 노래하던 사람이 이제는 모든 생명들이, 심지어 모든 바위이 아름답다고 노래한다. 그것은 앞서 살펴봤듯이 그가 이제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가진 사람들, ‘사스콰치’를 목격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과 사랑과 음악적 영감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이제 아픔이 아니라 사랑을 공유하기에 이른다. 언젠가 《THUNDERBIRD MOTEL》 앨범을 리뷰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멋진 결과물로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 그러나 나는 이 아티스트가 더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WHERE DOES SASQUATCH LIVE? PART 1 》 앨범이 더욱 반갑다. 사람에게서 벗어나 사람에게로 돌아온 그, 일기장에서 공유 일기장으로, 그리고 이제는 동화책으로까지 넘어온 그의 다음 행선지는 과연 어디일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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