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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등대 Nov 14. 2023

당신에게 부족한 문해력은 무엇인가요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의 단상 공책 4

_문해력

단순히 단어나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 문해력이 아니다.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더해 이해한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능력까지가 문해력이다. “꽃을 꺾으면 안 돼요”라는 문장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꽃을 꺾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문장을 이해하기만 하고 꽃을 꺾고 다닌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금일’, ‘명일’, ‘심심한 위로’, 그런 단어를 아느냐 모르느냐를 가지고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아는 단어, 이해한 문장을 체화하여 살고 있는지 문제 삼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문해력 싸움이다.” 나에게 부족한 문해력은 무엇일까.






_유자차

컵 밑바닥에 잠겨있는 유자 과육처럼 평소에는 어두운 마음이 밑바닥에 잠겨 있다. 그러다 한 번씩 밑바닥의 것들이 소용돌이치며 올라온다. 유자차의 경우 휘휘 젓는 숟가락 때문이지만 나는 누가 휘휘 젓는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알아서 소용돌이쳐 올라온다. 온갖 찌꺼기들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올 때 체감한다. 고통은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었음을. 단지 시야에서 잠시 보이지 않았을 뿐. (배수아, 『작별들 순간들』) 고통은 밑바닥에 숨어 있다가 불시에 나를 덮친다. 밑바닥에서 조용히 꽈리를 틀고 있다가 불시에 발목을 무는 뱀처럼.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러다 갑자기 찾아오고. 그렇게 반복되는 삶이다.






_돈가스 집

아무것도 없는 언덕배기 동네에 난데없이 나타난 작은 돈가스집은 발랄했다. 젊은 부부는 늘 느지막한 저녁에 스쿠터를 타고 함께 퇴근했다. 몇 주 뒤 가게 문에 붙은 ‘close’ 팻말 아래 A4 용지에는 아기자기한 글씨로 신혼여행에 다녀오겠다고 적혀 있었다. 얼마 후 장사에 순풍이 달렸는지 가게 앞은 늘 배달 오토바이로 분주했다. 그렇게 일 년, 이 년이 흘렀다. 그리고 몇 달 전 돈가스 집을 지나는데 ’close’ 팻말 아래 A4용지에 딱딱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喪中(상중)’. 종이는 몇 주 째 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번주, 가게 창문에 붙은 큼지막한 종이. ’임대‘. 그들 삶의 큰 줄기를 다 봐버린 느낌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 언덕배기 동네에 그들의 이야기를 남겼다.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진리가 그들에게 부디 함께하기를.






_김훈의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칼의 노래』)

나는 이런 문장, 나아가 이런 이야기, 이런 정체성을 좋아하나 보다. 버려진 곳, 찢긴 곳, 잘린 곳, 깨진 곳, 척박한 곳에서 외려 아름다움이 발생하는 이야기. 아름답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들. 뜨겁고 낭만적인 사랑 노래보다는 뜨거움과 낭만이라는 베일을 벗은 민낯의 사랑 노래. 온전하지 않은 곳에서 가장 오롯한 것이 발생한다는 사실.






_맛없는 커피

커피를 잘 모르지만 카페를 자주 다니다 보니 맛없는 커피 정도는 구분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맛없는 커피를 만나면 살짝 화가 나기도 한다. 대충대충 내린 티가 나는 맛이 있다. 결국 정성스러운 것이 좋다. 효율, 경제를 꼼꼼히 따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나는 하나를 해도, 작은 것을 해도, 정성과 품을 다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결국 그런 것이 오래 사랑받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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