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외출

평생교육원에 글쓰기 공부하러 가요!

by 바다나무

오랜만에 수업에 나갔다. 3월 봄학기 수업등록을 해놓고 여행, 손주 생일, 농장일 등으로 담주부터 가야지 하다가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미룬 게 4월 중순이 되었다. 오랜만에 나온 출석생에게 우들은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지난 학기에 못 뵈었던 문우들도 두어 분 계신다. 신입회원인 듯하다. 같이 글공부하는 언니가 안 나오는 사유를 말한 터라 엄청난 해외여행이라도 하고 온 줄 안다. 사실은 주여행에서 돌아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빠진 시간만 해도 3주가 넘는데.


작년 퇴직을 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대학의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 다니고 있다. 공부하고 싶은 강좌가 많지만 이래저래 시간을 쪼개고 나니 오롯이 나에게 투자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선 제일 하고 싶었던 글쓰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시창작반은 이미 오래전에 어설픈 자격증을 땄던 터라 잠시 뒤로하고 수필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을학기를 지나고 다시 봄학기, 3번째 학기 맞이했다.


우리는 매주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을 때는 부득이한 사정이 는 한 많은 분이 참석하여 저렴하고 소박한 밥상머리에 둘러앉 정담을 나눈다. 주로 된장찌개, 김치치개를 하는 한식 백반집로, 부담이 없는 대학가 단골식당이다. 인생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나이 들어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삶이 곧 수필이라 정의하며, 때론 중년의 수필문학에 심취해 몇몇은 멋진 카페로 장소를 이동해 뒷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살아온 이야기들은 인생의 쓴맛, 단맛이 커피와 혼재되어 진한 향기로 우러난다. 때로는 야외수업을 가거나 문학관 탐방을 하기도 하여 넓은 들판에 사유를 풀어 놓기도 하고. 옛 선현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


작년 봄학기 처음 수업에 갔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분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는데 모두가 연세가 많으셨다. 퇴직을(명퇴이긴 하지만) 하고 간 내가 제일 어릴 정도이니 어림잡아도 평균연령이 60 후반 이나 70은 되어 보인다. 우리 문우중 제일고령자는 94세로 전직 교육감님을 하신 분이다. 대학 명예학장님까지 하신 분으로 죽을 때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시는 학자분이셨다. 내가 현직에서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고 있을 때 교육감님으로 계셨던 분이시기도 하다. 늘 존경하고 우러러만 보았던 분과 함께 같이 글공부를 한다는 것도 내겐 이로운 기쁨이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없는 학구열은 언제, 어디서나 열정만 있으면 가능한 것이었다.


수필반 교수님도 같은 도내에서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하신 분으로 연세가 여든이 넘으신 분이다. 공업을 전공하셨던 교수님은 교직시절 글쓰기와 책 읽기를 좋아하셨다가 퇴직 후 전문적으로 글공부를 하다고 한다. 그 노력의 결과로 퇴직 후 평생교육원의 교수를 하시면서 또 다른 후학을 양성하고 계신다. 도 퇴직 후 잠시 뒤늦게 본격적인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으나 이렇게 공부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이 두 분 에도 74세에 방송대 국문과에 다니시는 문우님을 보면 두 백세까지 흐트러짐 없이 사는 건 예삿 일 듯 싶었다. 노후에 배우려는 인생여은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나도 닮가고 싶었다.


지난해 5월 15일 우리는 스승의 날 행사를 가졌다. 문우회 회장님께서는 내게 사은사를 낭독하라고 하셨다. 이미 오래 글공부를 해서 등단하신 작가며, 책을 내신 기성작가분들이 많았던 터라 나는 극구 사양하였다. 들어온 지 2개월뿐이 안된 초보, 글도 숙제로 한번 써간 것이 다였던 상황이라 앞에 나선다는 것이 많이 조심스러웠다. 어설픈 기억으로는 "엄마"라는 제목으로 처음 써간 글에 선배 문우님들이 좋은 말씀으로 합평을 해 주신 것 같다. 앞으로 문운을 기원한 격려말씀일 것이다. 계속되는 거절에 회장님은(76세) "그럼 나이 많은 내가 하랴?" 하시는 농담 어린 협박성 어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은사를 작성하여 낭독하 되었다. 감회가 새로웠다.


사실 그동안 나는 제일 뒷좌석 구석에 앉아서 있는 듯, 없는 듯 강의를 들었던 사람이다. 한 시간은 이론수업이었고, 한 시간은 써온 글에 대한 합평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수업이었다. 평소 글을 쓰면서 갸우뚱했던 부분을 알게 되고,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글들의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체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었다. 내 목마른 갈증들이 해결되는 시간들이었고, 다른 분들의 글을 통해 내 글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이론이었고 안다고, 배웠다고 금방 내 글이 많이달라지진 않았다. 금까지, 그저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그 시간은 즐겁고 기다려졌다. 거의 빠지지 않고 수업에 참여한 범학생이었다. 이번 게으름 빼놓고는.


어쩌면 나는 글공부도 재미있었지만 미래의 내 모습을 거기 계신 분 들에게서 보고 었는지도 모른다. 그분들은 수업을 하러 오실 때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옷을 입고 오신다. 무릎이 안 좋아 관절이 아파도 정갈하고 예쁜 옷차림에 편한 운동화만 신고 오실 뿐이다. 퇴직한 여유로움에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간 첫날 왠지 나의 옷차림이 민망스러웠다. 그렇다고 청바지가 불손하다던가, 꼭 정장을 입고 와야 한다는 꼰대적인 발상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분들 배움의 자세, 삶의 흔적스로 존중하며 향학열에 불타는 예의 바른 학생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인생공부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글 속에서 그분들의 인생이 느껴지고. 입고 오신 옷차림에서 그분들의 인성이 느껴졌다. 자식이 사준 곱디고운 옷, 을 넣을 수 있는 넓은 가방. 운동삼아 대학 캠퍼스를 걸을 수 있는 신발들로 아낌없이 자신을 꾸미고 젊음을 회생하고 계셨다.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정성을 들여 멋을 내고 오신 그 모습들은 삶 속에서 많지 않은 외출 중의 하나인 이곳 수업에 진심을 다해 참여하고 계셨다. 자신이 선택한 가장 화려한 외출 행복해하며 커다란 의미를 두고 계셨다.


오늘은 휠체어를 타고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참석하시는 장애를 가진 문우님이 "희망을 주는 봄"이라는 글을 발표하셨다. 물론 읽는 것도 다른 분이 도움을 주셨다. 사지가 불편한 탓에 죽음을 선택하셨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신 그 문우님의 글은 한 자 한 자 볼펜을 입에 물고 컴퓨터로 작성해 온 작품었다. 글도 잘 쓰시지만 삶에 대한 강한 희망의 의지를 담은 글이기에 우리는 커다란 박수로 그분 응원했다. 불굴의 의지와 투혼으로 새봄의 햇살만큼 의 글과 삶이 농익어 가길 바란다.


한때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특수교육업무에 몇 년간 종사하면서 관련된 연수에 간 적이 었다. 의외로 장애를 가진 분이나 건강에 불편한 분들이 글쓰기를 하시면서 자신을 치유해 나가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분들의 대단한 의지력과 내면의 치유과정은 눈물 없이는 듣고 볼 수 없는 과정들이었다. 누구에게나 불시에 찾아오는 장애의 극복과정은 글쓰기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내면의 근육들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아픔마저도 단단한 근육질이 되어갔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글에는 많은 삶의 여정이 담겨있다. 희로애락도 예쁜 빛으로 승화되어 아름다운 그림으로 채색되어 나온다. 다가가지 못할 먼 나라 이야기도 하나의 희망이 되어 상상의 나래 속에서 꿈을 실현하게 된다. 갈피 속에 묻어 둔 지나간 그리움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글 속에서 웃음꽃을 피운다. 언제나 글 속에는 백의 삶의 여정이 들어있고, 언의 진실이 어 있으며. 찬란한 희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곳에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사들이 화려한 외출을 하고 있다. 리고. 그리고, 그 글 속에는 언제나 인생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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