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 휴학의 결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2학기가 시작됐고, 부모님께 휴학얘기를 꺼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숙사 1층 컴퓨터실에서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전화기를 붙잡고 아빠께 전화를 걸던 장면..
이제껏 스스로 뭘 해달라거나 도와달라고 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휴학을 허락 받는게 무진장 떨렸었다. 그 후로는 기억이 잘 나질 않는데, 아무튼 첫 번째 무계획 휴학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휴학 후 고향으로 내려와 일단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나의 첫 아르바이트는 패밀리레스토랑 애슐리였다. 당시엔 애슐리가 손님이 많았을 때라 헬알바로 유명했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은 분들이어서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참 우물안 개구리인 소리지만(지금도ㅋㅋ) 그냥 중고대학교 졸업-취준-회사취직 이라는 루트만 있는 줄 알고 살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내가 알던 것만 길이 아니라는걸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마음을 열 준비가 되었기 때문에 그제서야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보였던거 같다.
음악과 작곡을 좋아하는 공대생,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 뷰티블로거, 알바에서 직원으로 승진해 이랜드 입사를 하려는 사람 등.. 각자 좋아하는 게 있고 고유한 '나'라는 특색이 있다는게 내 눈엔 정말 빛나고 멋있었다. 그래서 내가 기존에 살아오던 방식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표현하는 그 무리에, 그 중 한 명으로 속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갈 쯤 휴학을 연장하겠다고 했다. 이때는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를 받아야 했다. 내가 느낀 저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왜 그 안에 있고싶은지 나조차도 말로 정리할 수 없었어서 그냥 '학교 안다니고 이렇게 살겠다!!' 라고만 했다.ㅋㅋㅋ 부모님 억장 와르르..
지금은 당시 부모님의 반대를 이해한다. 내가 어떻게 보였을 지 너무 상상이 잘 된달까. 영리하지 않았고 전략도 없었고 스스로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만 앞서있었다.
내 마인드의 변화는 이러했다.
'그 길만 알긴한데 학교는 가기 싫어' 에서
'그것만 길이 아니니까 학교 안 가' 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표현하질 못하니 아무도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줄 수 없는게 당연하고 겉보기엔 똑같은 고집이었을 뿐이다.
어느 날 엄마께서 분위기 좋은 식당에 나를 데려가 앉혀 놓고 진지하게 말씀을 하셨다.
졸업만이라도 하라고.. 눈감고 딱 4년..
그 말은 친구에게도 똑같이 들었다. "그래도 졸업장은 따야 되지 않냐"는 그 말이 나는 참 마음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설득력이 없는 대사였다.
대학교 졸업장은 필요한 사람이 따면 되고 노력한 사람이 그만한 박수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난 4년이라는 시간을 버틸 자신도 없고, 이유도 모르고, 필요하지도 않을거 같고, 필요해지면 그때 공부할거고, 누군가 그걸로 나를 얕본다고 상상해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저사람은 졸업장이 없으면 무시하는 사람이구나.. 이 생각 이상으로 타격감이 들지가 않는걸.
선택의 폭이 좁아질거란 얘기도 들었는데 그럼 그건 애초에 다른 사람의 기회인 것이고, 내가 선택한거니 나는 나를 펼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속마음은 이러했지만, 호기롭게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는데 버텨서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한 학기만에 복학을 한 것이다. 자유와 다시 멀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