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예수님,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행복'에 대해 논한다면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요? 예수님은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을 겁니다. "행복이란, 마음이 가난한 자들의 것입니다. 행복은 신의 축복이지요." 그러자 아리스토텔레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겠죠. "행복은 자신의 덕을 실현시켜갈 때, 즉 자신의 인생이 충만해지는 과정입니다." 에피쿠로스가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유쾌하게 덧붙입니다. "행복은 말이죠.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의 교제, 인생의 소소한 즐거움, 멋진 시와 음악을 통해 얻는 것이랍니다!" 당신은 어떤 행복을 지지하시나요? 여기서 쓰인 행복은 모두 다른 그리스어랍니다.
상산수훈의 마카리오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에피쿠로스의 헤도네
헤도네는 에전글에서 '무행복증'이란 병명에서 한번 다루었지요.
1. 마카리오스(Macarius) : 축복받은 상태
- 주로 신들이나 사후 세계의 축복받은 상태를 묘사
- 외부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행복을 의미
- 종교적, 신학적 맥락에서 자주 사용됨
"Μακάριοι (Blessed) οἱ (the) πτωχοὶ (poor) τῷ (in the) πνεύματι (spirit), ὅτι (for) αὐτῶν (theirs) ἐστιν (is) ἡ (the) βασιλεία (kingdom) τῶν (of the) οὐρανῶν (heavens)." - 매튜 5:3
그 유명한 예수님의 산상에서의 설교에 말씀, "마음이 가난한자는 행복하도다", 여기서 사용된 그리스어가 마카리오스 입니다. 마카리오스는 '축복받은',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신의 은총이나 운명의 호의로 인한 행복을 나타냅니다. 산상수훈에서 행복은 내가 가난해질 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는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조건에 의해 내가 느끼는 행복이 아닌, 절대자에게서 주어지는 은총으로서의 행복감! 생각만 해도 최고의 행복의 경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2.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 : 인간의 번영
- 덕(arete:본질적 가치)을 실천하며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삶
- 윤리학의 핵심 주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
에우다이모니아는 단순한 행복을 넘어선 '인간의 번영'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덕(아레테)을 실천하는 삶을 통해 달성됩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적 웰빙'이나 '자아실현'의 개념과 연결 짓습니다. 에우다이모니아적 관점에서 보면, 진정한 행복은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에서 옵니다.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가치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것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삶의 과정을 통해 얻어지는 행복감이 에우다이모니아에요. 에우다이모니아의 개념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자기 성찰과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덕의 실천에서 오는 충만감이라고 할수 있지요.
3. 헤도네(Hedone): 즐거움과 쾌락
- 감각적, 육체적 즐거움을 주로 의미하지만, 정신적 즐거움도 포함
- 즐거운 인간 관계, 예술을 즐김, 정신적 고양을 강조
헤도네는 즐거움이나 쾌락을 의미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헤도네적 행복은 종종 소비주의나 즉각적 만족의 추구와 연관됩니다. 우리말에서 쾌락과 영어의 pleasure만 해도 느낌이 좀 다른데요. 여성 손님의 코트를 받아든 웨이터가 땡큐라는 말에 'My pleasure' 란 말대신,'제 쾌락입니다' 라고 답한다면 상당히 변태스럽겠지요? 이 처럼 특히 한국어에서 쾌락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쾌락을 중요한 삶의 목표로 보았다고 하는데, 이는 한국어에서 쾌락이 아니라, 그리스어의 헤도네입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헤도네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한 육체적 쾌락을 넘어서, 지적 즐거움, 예술적 감상,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기쁨 등이 중심이 됩니다. 가장 오해받는 철학자가 에피쿠로스라고 생각해요, 실제 에피쿠로스의 삶은 절대로 막나가는 무절제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나, 그가 말한 헤도네는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정신적 평온(아타락시아, ἀταραξία)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무분별한 쾌락이나 욕망의 추구가 오히려 고통을 초래한다고 보았으며, 궁극적인 행복은 고통의 부재와 불안에서의 해방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절제와 지혜로운 선택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 것을 강조합니다. 실제 그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그 안에서 소소한 즐거움, 예술적 고양감등을 극대화 하면 살았던 철학자입니다. 현대인들에게 헤도네는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장기적 만족과 균형을 이루는 것의 필요성을 제시합니다. 현재 쾌락이라고 부르는 무절제한 육체적 즐거움의 추구는 키레네 학파(Cyrenaic school)와 유사합니다. 키레네는 지역이름인데, 키레네의 아리스티포스(Aristippus)라는 사람에 의해 이끌어졌습니다. 아리스티포스는 쾌락이 인생의 궁극적 목표라고 주장했으며, 그는 육체적 쾌락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와는 다르게, 아리스티포스는 순간적이고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며, 쾌락을 경험하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유체적 쾌락을 목적으로 한 사람들은 디오니소스 추종자들(Dionysian 혹은 Bacchantes)이 있습니다. 이들은 철학학파가 아니라, 양아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술과 향락, 축제에 빠져 지냈습니다. 특히 마이나드(Maenads)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신도들로, 음란과 방탕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이들은 '광란의 여성들'로 불렸습니다. 마이나드들은 종종 동물 가죽을 입고, 머리에 뱀을 두르며, 손에는 티르수스(θύρσος)라는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들은 또한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때로는 야생 동물을 길들이거나, 자연 현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요약하자면,
- 마카리오스: 주로 종교적, 신학적 맥락, 외부적 조건에 의한 축복받은 상태
- 에우다이모니아: 덕의 실천과 잠재력 실현, 윤리학과 인간 번영에 관한 철학의 중심 개념
- 헤도네: 즐거움을 주는 활동이나 경험의 추구, 쾌락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
진정한 행복은 마카리오스, 에우다이모니아, 헤도네의 균형에서 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면서(마카리오스),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하고(에우다이모니아), 동시에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헤도네) 균형 잡힌 삶을 지향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겨질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헤도네와 에우다이모니아는 주는데, 마카리오스는 잘 모르겠네요. 당신의 인생에서 좀더 추구해야할 행복은 어떤 행복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