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브런치 활동이 뜸해졌다. 이유야 대면 많겠지만, 솔직히 말해 '취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나는 '취직'이라는 것이 낯설고 무섭기만 했다. 내가하고 싶은 것들만 했던, 내가 잘 할 수 있던 것들만 했던 프리랜서 생활에서, '직장'이라는 규칙적이고 딱딱해보이는 단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또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직업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수없이 고민했다. 자소서를 쓰면서도, 취업 사이트를 보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취직이 안 돼서가 아닌, 취업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막상 취직을 '하면' 어떻게 될 지, 내가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던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큰 기우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직장생활이 내게 큰 타격을 주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다. 정말 직장은 '오직 일만을 하는 곳'이었던 것이다. 일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었고, 나는 그곳에서 '생활비'를 벌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다. 누가 화를 내도 그건 내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 내가 한 결과물에 대한 것이다. '그깟 잘못된 일 때문에 박이름, 스스로까지 절망으로 가지 않아도 된다.' 는 생각에 눈에 보이지 않던 불안, 공포 같은 것들이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현재 2주차를 마쳤다. 일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은 단순하다. 일로 혼나면 그 일을 조금이라도 더 잘하면, 내지는 개선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만약 '나 스스로'를 깎아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범죄니, 그만두거나 신고하면 될 것이다. 꽤 라이트한 생각을 가지게 되니 어느 정도는 손이 탄력을 받아 일을 쳐내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래서 본업으로 할 '극단'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것 역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당연히 이것 역시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여태 프리랜서 일을 위해 플렛폼을 깔짝대긴 했지만, '직장','극단'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극단 역시 2차 면접을 통해 '워크샵 참여'를 하게 되었고, 이 워크샵이 끝나면 극단원으로써 활동도 가능해지게 된다.
이렇게 내 근황을 장황하게 이야기 한 것에는 이유-브런치 활동에 대한 반성도 섞여 있다-가 있다. 직장은 대기업이 아니기에 박봉이고, 극단 또한 거의 돈을 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성공'을 맛봤다. 작고 보잘 것 없더라도 '성공'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필요함을 느꼈다. 여태 떨어지기만하고, 그것 때문에 한껏 위축되어 선택하는 것이 무서워졌던 나는, 바쁜 2주를 지낸 후에야 비로소 뭔가 알 것 같다. '그때 고민하고 선택했던 모든 선택지는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후회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사실, 의미가 없었던 것임을 말이다. 앞 일을 알 수가 없는, 동등한 위치에 위치한 우리들은, 분명 후회를 안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같은 상황이 돌아왔을 때 내가 더 지혜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성공'임을 나는 두 개의 직업을 가진 후에야 알게 되었다. 남들의 성공은 부럽지만, 남은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의 성공을 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나는 회기의 어떤 카페에서 극단에서 쓸 대본을 쓰고 있다. 여덟페이지 남짓의 대본을 쓰는 데도 5시간이 걸렸고, 꽤 힘든 작업이었다. 그러나 나는 스스로에게 "잘 해냈고 고생했어. 너는 잘했어."라고 이야기해줬다. 결과가 어떻든, 한 페이지도 못 썼든, 최선의 선택과 노력을 했다. 그것부터 시작이다. 아메리카노의 맛이 왠지 모르게 더 깊어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