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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나 Aug 02. 2024

산토리 술잔에 비친 인생

산토리 위스키

더 이상 미디어에서 볼 수 없는ㅡ

새로운 광고로 잊혀지기에는ㅡ

광고 카피라고 무시해 버리기에는ㅡ

너무나 아까운 광고 이야기


맥아 및 기타 곡류를 당화 발효시켜 증류하여 만든 술, 위스키.

위스키는 동방의 증류기술이 중세 십자군 전쟁을 통해 서양에 전래되어 후에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전파되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스키 생산지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그들의 개척지인 미국, 캐나다입니다. 그런데 세계 5대 위스키 생산지는 이 4개국과 일본입니다.

일본이 세계적인 이렇게 세계적인 위스키 생산지가 된 것은 바로바로 토리이 신지로와 타케츠루 마사타카 두 사람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환전상의 차남으로 태어난 토리이 신지로는 13살이 되던 해 위스키를 취급하는 약재 도매상에 고용살이를 하는 견습생으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찌감치 와인과 양주에 경험과 애정이 있던 그는 20살이 되는 해 자신의 이름을 딴 [토리이 쇼텐]이라는 도매상을 시작합니다. 점원으로 일하던 시절처럼 스페인산 와인을 수입해 시장에 내놨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해요. 당시 일본인에게 와인은 즐기는 술이라기보다는 약으로 먹는 낯선 사치품이라는 인식이 더 컸기 때문에 비싸고 시큼한 와인은 인기를 끌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신지로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포도주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수입 와인에 감미료, 향료 등을 조합해 1907년 포트와인 [아카다마]를 만듭니다. 오리지널 포트와인과는 맛, 향기, 색깔이 모두 달랐지만, 과일 향이 풍부하고 균형 잡힌 풍미로 완성했죠. 아카다마는 일본에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는데, 이 성공에는 맛뿐만 아니라 신지로의 마케팅 감각도 한몫을 해냈습니다. 그는 일찍부터 광고 효과에 주목했고 오사카 아사히 신문에 일본 최초 포트와인만큼이나 파격적인 광고를 게재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블로그_Jackey Yoo 싱글몰트 &칵테일

일본 최초의 누드광고가 된 이 광고는 게재와 동시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누드로 있는 여성은 흑백으로, 손에 들고 있는 새빨간 포트와인은 컬러로 처리해서 화제성과 주목도 모두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듯합니다.

기존에 의약품의 기능으로 왜곡되어 있는 와인, 그것도 낯선 포트와인을 이 한 장의 이미지로 술 본연의 감각적 기능을 극대화한 것이죠.

1922년도에 만들어진 광고인데, 지금 사용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다른 주제의 이슈들이 예상되긴 합니다…)

맛과 마케팅으로 일본 최초의 포트 와인은 대성공이었지만, 신지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위스키 공장을 짓는데 투자합니다. 이것이 바로 ‘야마자키 공장’입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어렵다는 판단을 한 신지로는, 스코틀랜드에서 직접 위스키 양조법을 배워 돌아온 다케츠로 마사타카를 초대 공장장으로 영입합니다. 1929년 일본 국산 위스키 1호 ‘산토리 위스키 시로후다’가 발매되고, 그렇게 산토리의 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렇게 시작된 산토리 위스키는 100년의 시간을 이어오면서 일본을 세계 5대 위스키 산지로 만들었고, 높은 완성도와 섬세한 풍미로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13살에 도매상 고용살이를 하던 한 아이가 오직 열정과 감각만으로 한 분야의 수준을 ‘월드클래스’로 끌어올린 이야기는 언제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드라마가 되죠.

브랜드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여서 그런지, 창업주의 남다른 광고 감각이 사풍에 짙게 배어서인지… 산토리는 위스키뿐만 아니라 광고까지 오랜 세월 사랑받아 왔습니다.



ㅡ 저 사람도 한잔 해보면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ㅡ 어서 오세요, 당신은 음악이 있는 별에 태어났습니다


ㅡ 정치학, 경제학, 문학, 연애론… 오늘 밤도 어른들의 수업이 시작된다


ㅡ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다. 겹겹이 쌓이는 것이다



수많은 좋은 카피가 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카피는 바로 이겁니다.


“별의 수만큼 사람이 있고

 오늘 밤 당신과 마시고 있다”


제가 수많은 산토리 카피 중에 이 카피를 뽑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술자리의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하죠.


자주 보던 친구끼리 버릇처럼 모인 자리

오랜만이 만난 지인과의 자리

억지로 끌려 나온 회식 자리

결정적 한 방을 만들고 싶은 썸남썸녀의 자리

불편한 이야기를 술기운에 빌려하려는 자리

술 좋아하는 가족이 모인 자리

맛있는 안주를 먹으러 찾아간 자리


어떤 술자리는 즐겁지만, 또 어떤 술자리는 지루하고 불편하죠.

하지만 어떤 기분이라도 이 카피를 읊으면 그 모든 순간이 너무나 특별해집니다.


왜냐하면…

누구와 어떤 이유로 어느 자리에 있건…

오늘 밤 내 앞에 마주 앉아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사람은

바로 별의 수만큼 수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바로 당신이니까요.


술은 외로움을 없애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외로워지기 위해 마시는 거라죠.


별의 수만큼 많은 사람 중에 선택받은…

지금 나와 술잔을 부딪히는 나의 술동무…

오늘의 술자리는 유난히 그를 위해 건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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