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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Oct 05. 2023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는 즐거움


  요즈음 새 글을 쓰지 않은지 꽤 되었다. 바쁨을 핑계삼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비록 몇 명 읽지 않는 나의 글은 브런치란 공간에서 변두리에 위치한 수많은 작은 글 중 하나지만, 멀리멀리 먼 길을 굳이 찾아 돌아와 준 분들에겐 나의 글도 꽤나 쏠쏠하게 읽힐지 모른다. 요즘은 쓰기를 멈추고 내가 그간 써왔던 글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가? 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가? 이런 말은 왜 한 것인가? 다만 몇 자의 글자를 향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며 지난날의 나를 탐구하고 있다.


  그러던 중 하나 발견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린 모두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며 사는 존재란 것이다.



  내가 글을 쓴 이유가 별 것 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매거진, [주제넘은 음대생의 개똥철학]을 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의 글들은 모두 오글거리며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말들이다.

  노랫말을 쓰기 위해 감정을 선명히 봐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적어야 했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구름 같던 말들을 한 움큼씩 움켜쥐어서 글 위에 옮겨 붙일 때 내 감정은 읽을 수 있는 지도가 됐다.


  그리고 나는 해야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어머니의 전언에 따르면 나는 15개월 즈음해서 말문이 트였다고 한다. 어린것이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면 돌이 지나자마자 말을 한단 말인가?




  바쁨은 나에게서 거울을 빼앗아갔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 왜 슬픈가? 왜 기쁜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거울이 없으니 뭐가 묻었는지도 알 수 없어 닦아낼 수도 없었다.

  적지 않으니 도망갔다. 종이 위에 구속되지 않은 감정들은 난잡하게 생각을 흩트려 놨다. 슬픔의 이유를 모른 채 슬퍼하고, 불안의 이유를 찾지 못한 채 두려워했다. 만약 감정에 이유가 없다면 그것은 분명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 수 있다는 즐거움을 아는가? 기쁘면 기쁘다, 슬프면 슬프다 말할 수 있는 즐거움을 아는가? 노래하는 사람 다윗을 본다. 그는 언제나 말한다. 나아가 노래한다. 기쁨 속에서 찬미하고, 슬픔 가운데 읊조렸다. 그의 시와 노래는 편편이 묶여 성경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마주해야 보인다. 적어야 보이고 말해야 들린다.


다윗


  우린 빛나는 태양 아래서 죽음을 보는 카뮈가 될 수도, 어두운 동굴 속에서 환희로 가득 찬 노래를 부르는 다윗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 될지는 오늘의 내가 선택할 일이다.


  나는 그저 앞으로도 낙서장이라는 놀이터 위에서 글자로 모래 놀이를 하는 어린아이로 남으려 한다.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노래말 - 전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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