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입지란 무엇인가. 성남과 분당.

by 카리타

가락아파트에서 살다가 이사를 가게 된 곳은 성남시 수정구에 위치한 신흥주공 아파트였다.

부모님은 신흥주공이 8호선 입구바로 옆에 있어 교통이 좋고 산과 마주하고 있어 자연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집을 매수하셨다.

가락아파트는 단지의 시작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단지였다. 단지 내에 언덕도 거의 없었고,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동도 없었다. 신흥주공 아파트도 정말 큰 대단지 아파트였는데 평지가 주를 이루었던 가락아파트와는 달리 신흥주공은 산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집에 가려면 끝도 없는 계단을 올라가거나 언덕길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가야 했다. 계단은 최소 100 계단이 넘었다. 나는 송파를 떠나고 싶지 않았는데, 울고불고했지만 내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성남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너무 싫었고, 낯설었고,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적응하는 것이 힘들었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집만 100 계단이 아니었다. 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신흥 초등학교도 만만치 않은 계단수를 자랑했다. 오르막길 경사는 최소 60도는 넘었다. 계단수가 99개라는 말도 있고 100개가 넘는다는 말도 있었다. 아파트 바로 옆에 위치했지만 중간에 산이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아파트의 100 계단을 내려와서 평지를 3분 정도 걸어간 다음 다시 고지대에 위치한 학교를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자동차가 가기 위한 오르막길로 올라가나 계단으로 올라가나 짜증이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귀찮아서 정확한 계단수를 세어보지는 않았었지만, 졸업 때까지 고지대에 위치한 학교에 올라가기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신흥주공 아파트는 위례신도시를 지나 성남으로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내가 결혼 전까지만 해도 위례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의 지역은 흙바닥이었고, 길거리에 오리고기 음식점 같은 남한산성에서 이어지는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있는 그런 곳이었다. 데이트하면서 음식점에 들어가서 외식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가끔 지나가다 보면 너무 달라진 모습에 우리 둘 다 놀라곤 한다.


신흥주공은 영장산 바로 옆에 위치한 아파트이다. 아파트와 영장산은 바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약수터가 있어서 우리 가족은 약수를 떠서 식수로 사용했다. 1시간 정도 걷기 좋은 산이어서 집에서 바로 나와 산을 한 바퀴 돌면서 건강관리를 하기가 매우 좋았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물가에 들어가 놀기도 하고 단지가 커서 친구들이 많았던 단지였다. 여름밤에는 뻐꾸기가 울고 에어컨이 필요 없을 만큼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가을은 단풍, 겨울에는 눈이 산을 뒤덮으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내가 그곳을 떠날 때 즈음에 신흥주공의 위상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성남은 분당신도시가 완성된 이후로 그전보다 더 심하게 소외당했던 지역이었다. 성남시에 속한 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당 사는 사람들은 분당에 산다고 하지 성남에 산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성남에 사는 사람들도 굳이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신흥주공만은 약간 예외였다. 신문에 신흥주공은 성남의 강남이라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물론 강남 사람들은 인정할 수 없었겠지만 성남 구도심에서 그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은 없었을 만큼 장점이 많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워낙 대단지였고 단지 울타리를 벗어나면 바로 산성역이 위치해 있었다. 성남 초입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서울로 진입하기도 쉬웠고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잠실까지 20분이면 도달하는 8호선은 매우 편리했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 시간이 지나고 뒤돌아 보니 그 당시 성남 구도심이 인정받지 못했던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다. 위치상으로는 서울까지 분당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신분당선이 생기기 전까지 분당으로 진입하려면 복정이나 모란역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입지상으로는 성남이 더 유리한 위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교육 환경이 위치의 장점을 받쳐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성남시 초중고의 면학분위기는 잘 조성되어있지 않았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던 친구들은 분당 쪽 고등학교로 넘어갔다. 그 당시 서현고는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학교였는데 서현고에 입학했다고 하면 정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분당고, 이매고, 중앙고 등이 명문학교로 인식되었다. 성남 구도심에는 학원가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았고 성남 지하상가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쇼핑과 먹거리, 유흥가가 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학교를 가는 길에 사창가 골목이 있었다. 나는 그 길을 지나갈 때면 무서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다녔다.


결혼 후 그 집을 매도하고 떠난 후로 신흥주공은 산성역 포레스티아로 재탄생했다. 이사 후에 신흥주공에 다시 가보지 않았는데 최근에 네이버 거리뷰로 본 아파트는 놀라웠다. 언덕이 모두 사라지고 평지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게 바뀐 모습이었다.

중학교 고학년 혹은 고등학교 입학 후쯤부터 시작된 재건축은 내가 결혼을 한 후에 완공되었다. 대략 20년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그곳에서 재건축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부모님이 그냥 가락동에 계속 살았었더라면 내가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중학생 때 분당에 있는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봤어야 했는데라고.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는 가락아파트를 팔지 않고 모두 가지고 있었더라면 지금의 내 삶이 좀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또 한 가지 더하자면 어머니가 신흥주공이라도 팔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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