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 Mar 09. 2024

시댁으로 귀국했다. 3

시어머니의 선물



이제  시어머니는  탐탁지 않은 며느리인 나를  보지 않아도  된다.  그와 동시에 내 허락 없이는 함부로 내 집에 올 수도 없다.   시어머니와  우리 집의 거리는 서로의 행복을 위한 거리이기도 하다.

일본 사람이라  갑자기 ‘ 김치를’ 싸들고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예의에 벗어난 행동은 물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아무 때나 시댁을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이 집은 나의 공간이므로 벽에 사진도 걸 수 있고, 밥솥도 커서 식은 밥도 아무 때나 먹어도 되고,

시뻘건  비빔국수를 양푼이에  비벼 먹어도,

얼룩덜룩한 ‘신데렐라’‘ 이불을 세트로  덮고 자도 비아냥 거릴 시어머니가 없다.


보잘것없는 조촐한 살림이었다. 커튼도 내가 천을 끓어서 미싱을 밤새 돌려 만들고,  쿠션도 만들었다.

노르스름 한 커튼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사롭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10걸음이면 작은방. 큰방, 거실, 전부 갈 수 있는 좁은 이 집이 , 이토록 행복할 수 있을까!  

집 평수는 행복의 척도가 아닌 게 분명하다.

나는 아무도 부럽지 않았다. 우리는 건강하고, 맑은 하늘과, 비 오면 비 안 맞을 집이 있으니 됐다.


얼마 안 있어 시부모님이 우리 집을 보러  오셨다.

시어머님이 두 팔에 ’ 보따리 ‘같은 것을 소중하게 들고, 내 얼굴을 보는 것이 반가운 듯 ‘ 잘 있었냐며 ‘ 인사와 함께 정중하게,


내 두 팔에  보따리를 소중하게 옮겨 주시면서,  ‘ 이건 쓰던 전기담요 란다‘ 혹시 필요할 것 같아서 같고 왔어!  

나는 이상한 물건은 안 사! (고급 물건 이란 뜻) 

그리고 ’ 히로가‘ (남편) 어릴 적 쓰던 ’ 크리스마스‘ 장식 전구다’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니까, 애기를 위해 쓰면 좋을 것 같아서…


네’ 감사합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간 후 ‘ 보자기를’ 열어보았다.

얇디얇은 전기담요가 접혀 있었다.

지금은 파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는 ‘ 전설적인 ‘

무색으로, 전깃줄이 손으로 만져져서, 덮으면 몸으로 전기가 들어올 것 같은 무서운 담요와 20cm도  채 안 되는, 짤뚝한 크리스마스  전기불 장식 (30년 전 물건)이었다.  앤티크도 ‘급’이 있다.

전구가 검게 변한 것이었고, 전깃줄도 흰색은 더 이상 흰색이 아니었다.


분명 시어머니가 생각하는 나의 나라‘ 한국은’ 전쟁 후 처참했던 한국의 모습에 멈춰있음이 분명하다.


저런 걸 주고도 미안하지 않나? 어이가 없어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 역시’ 시어머니여~~.

셀러브리티 시어머니가 준, 고귀한 물건을 남편에게 보여 줬다.



여보  ‘“지금 쓰레기통에 버리고 와줄래”?

남편이 눈을 껌뻑 거리며 조금 생각하는 척하더니

“내일  버리자’ ”

우린 함께 웃었다.



분가 후 일본에서 맞는 첫 새해가 다가왔다.

내가 아무리 싫어도, 이날만큼은 시댁을 가야 하는 날이다.

‘딱’ 저녁만 먹고 돌아오기로 남편과 약속했다.  

시댁은 새해에 특별히 음식을 하거나, 도울 일은 없었다. ‘오세치 요리’도 백화점에서 사서 먹었고, 식사는 ‘초밥’를 주문해 먹으면 끝이었다. 많은 가정이, 전통요리를 사 먹는다.

         하나하나 의미가 있는 음식이다.

저 아름다운 음식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생을 하겠나

상당히 단맛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예쁘니까 하나씩 먹는 정도이다.


여자들이 음식 만들기로 고생하는 한국 명절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음식 부담이 없기 때문에 ‘새해‘는 편하다.

도착하고 보니 ‘큰댁’ 식구 4명이 먼저 도착해  30년 된 갈색 가죽소파에  비비고 앉아 있었다.

서로 형제 가족이 만나도록 시어머니가 억지로 만든 자리였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했고, 스몰 토크’도 살짝 했지만 ,  잘난 시아주버니의 쌀쌀맞은 태도에 나도 기분이 언짢아졌다.



출세를 하신 형님네가  보내준 결혼선물은 잊을 수 없다

손바닥 만한 흰 사진 액자 하나와,  결혼 축하합니다 ‘라는 글이 프린트되어 있는 카드에, 이름만 손으로 직접 쓴 ’ 결혼 축하 ‘카드였다.  

(외국에는 많이 판다)

 동생 결혼이 아무리 탐탁지 않아도 그렇지..,

손바닥 만한 사진 액자가 결혼 선물이라니….

‘부조’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 받기도 민망한 결혼선물 이라니…

우리의 결혼이 한 줄 축하 메시지를 쓸 가치조차 없단 말인가?  어른 둘, 애기 둘의 이름만 써진 카드를 시어머니가 형님네에서 온  선물이라며  나에게 전달해 주었다.

결혼반대를 이렇게도 하는구나 …..

직접 대놓고 말하는 것보다는 덜 아프다.


일 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출세한 큰 아들이, 자신의 집을 오늘 하루 방문해 준 게 너무 좋아서 아주 행복해 보였다.

자주 전화 하고, 방문하는 둘째 아들보다, 연락 한번 없이   깐깐한  큰 아들이, 이렇게 딱 한번 방문해 주면 세상을 얻은 듯 좋은가 보다.

가식 쩌는, 손님 접대용 목소리로, 무서운 큰 며느리와 관심 없는 주제를 흥미로운 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 집에 있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가족은 무슨 ….. 껄끄럽기만 하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 형님’ 은 남편이 출세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언제나 똑같은 옷을 입고 시댁을 왔다.

종아리까지 오는 검정 양말에, 무릎 청치마를 입고, 염색 안 한 씨커먼 검은 머리에, 노르스름한 촌스런 머리핀을 그날도 꽂고 왔다. 일부러 저러나?  

화장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딱 세 번 밖에 보지도 못했고,  말을 하면 허공에다 대화하는 느낌으로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그런 사람 많지만 그녀도 그중 하나였다.

집을 지었다지만 가 본 적이 없고, 시 부모는 집은 구경했지만, 밥 한 끼 못 얻어먹었다고 했다.


무슨 큰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한데,  시부모는 자식이 자신들에게 쌀쌀맞은 이유를 몰랐다.












작가의 이전글 시댁으로 귀국했다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