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디 Apr 10. 2024

나의 일본생활 7

반말 잘하는 일본인들.

‘고이케’는 마치 계급이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 뻘인 나에게 하대를 당연스럽게 했다.  나이만 많이 먹어도 대접받고, 존댓말을 들을 수 있는 한국에서 태어난 나에게는 ‘어린 고이께’의 일방 하대, 동의 없는

반말은 나의 신경을 하루종일 곤두서게 만들었다.

저 ‘까시나’가 싸라기 밥만 처…, 묵… 고 …


나이 어린 고이케가 ‘하대’를 하고 나는 ‘높임말’을  하는 희한한 관계가  성립이 되었다.


그까짓 반말이 뭐 어때서?

존댓말을 하지 않으면 예의가 없는 것인가?

아무래도 무시 당하는 기분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 만화에도 부르부르 떠는 걸 보면 일본인들도 화가 나나보다.)


 상사의 반말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동료에 불가한 그녀의 반말은 그냥 넘겨지지 않았다.  가끔은 ‘고이께’의  반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하루종일 생각했다,



영어에서는 “you”라고 해도 “please”가 없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일어는 이상하게 기분 나쁘게 느껴진다.


일본에는 친밀감의 표시로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 있다.

20년 이상 살아본 결과 그건 아니다.


한국처럼 보통은 친밀함을 서로 느꼈을 때  서로

반말을 주고받는다.


주로  외국인, 일어가 어중간한 실력일 경우 반말 대상이 된다.

초급은 바로 반말,  중급 이상 레벨을 구사해도 어휘력이라든가 발음, 억양이 부족할 경우 대체적으로

반말 대상


금발머리 외국인이 조금 일본어를  하면 우러러

보지만, 일본인과 같은 모습을 한 동양인의 일본어는 전~혀 대접받지 못한다.


일본은 나이 많다고 대접해 주는 문화도 없다. 또한 대접을 바라지도 않는다. 늙은 것이 자랑이 아니고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음을 의미하므로 대접이 반갑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전철을 타도 곧 쓰러질 것 같은 노인이 아니고서는 새파란 젊은이들은 자리를 비켜주지 않고, 하던

전화기 게임을 계속한다.


직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일본어가 능통‘

 ‘거의 일본인’ 수준까지 오르기 전까지는 ‘반말’ 당해도 어쩔 수 없다.

방금 전까지  ‘경어체로’ 공손하던 주민센터  대머리 공무원도  버벅거리는 ‘외국인’에게는 곧바로 ‘반말‘깐다.

이거 갖고 왔어?” 담에 이 서류 꼭 가지고 와야 해! 하는 식이다.

분하면 일어를 잘해야 된다 ‘


그리고 신기한 건 ‘영어’로 말을 하면 고분고분하다는 점이다. 나는 그 점을 노려 오랫동안 일어를 못하는 척하고 영어만 하고 살았다. 하다못해 시부모님 만날 때도 쓸데없이 일어를 쓰지 않았다.

무시당할까 봐.


영어는 확실히 파워가 있다. 머리가 좋아야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 아닐까? 나는 머리가 상당히 보통이지만 영어도 일어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영어만 하고 살다 보면 내가 살아야 할 이 땅 언어가 늘지 않는다. 좀 무시를 당하면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참고로 하는 말이지만 , 한국사람들은 외국인이 ‘한국말’ 몇 마디 하면 “ 어머! 한국말 하시네요!!! 하며 진심 기뻐해 주지만,

일본은 다르다.

일본에 여행와 대접받으려면  어설픈 일어 하지 말고 ‘영어’로 말하는 게 차라리 낫다.


동료 ’ 고이께‘의 반말은 나의 고민 거리였다.


“김상, 뒤에 가서 이거 가지고 와!

“그랬어? “

“왜?” なに?

“몇 시까지 하고 밥 먹으러 가! “

“이제 알아 들었어? 뭐 이런 식이 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릴 정도로 신경이 쓰였다. 한국에서 저랬다간 ‘칼’ 맞는 수도 있을 정도의 수위였다.

이건 뭐 귀엽게 봐줄래도 한도가 있지, 막무가내다.


아이고,,, 어쩌면 좋지? 그 ’가시나‘ 고이께를 볼 때마다 내 위가 쓰라렸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오늘 ‘조져줄까? 내일 조질까? 그냥 그만둘까?  

‘나도 같이 반말 할까?

이 나이에 참 한심한 노릇이었다.  일을 배울 생각은 안 하고,  매일같이 ‘고이께‘ 처리방법만 생각했다!

어린 딸 같은 ‘가시나’ 하나 해결하지 못하다니 …


얼마 안 있어 57살의 아름다운( k상 일본인) 한분이 함께 일 하게 되었다.  


아~~ 궁금해! ‘고이께‘가 나이 많은 저분께는 어떤 식으로 말할까?


뜻밖에도 나와 똑같이  ‘하대’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외국인이 어서 그동안 반말한 게 아니었다.

그냥  누구 에게나 반말하는 인간이었다.


나이 많은 우리를 평등하게 부려먹는 ‘고이께’가

갑자기 평등주의자로 느껴졌다.

K에게 물어보았다.


저 고이께의 반말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본에는 저런 사람 많아요.

저런 애들 신경 쓰면 직장 못 다녀요… 꽤 많이 있지만 안 저런 애도 많이 있어요. 마음 상하지 말아요. 김상.  하며 웃어주었다. 천사 같은 언니다.


고이께를 ‘조져버리고 ‘ 그만두는 계획대신 ‘무시’를

선택했다.

까짓 거 나는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은가!’  겨우 잡은 이 직장을 저 정도 ‘또라이’때문에 그만둘 순 없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가시나, 고이케’는 어린 자식이 넷이나 딸린  ‘싱글 마더’였다.

그 사실을 안 순간 모든 미운 것, 그녀의 하대, 모두 용서해 주기로 했다.


“까짓거 반말 실컷 해라, 니 고생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일본 생활 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