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것은 잔소리뿐이요 얻을 것은 친구들이니
(2) 외국에서 아저씨들과 술 친구하기 - 독일
독일 아저씨와 예거, 그리고 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를 거쳐 디에고와 함께 도착한 베를린.
대부분은 평일에 일을 했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다시 현지 친구들의 추천을 받아 동네의 술집을 찾아갔다. 전형적인 독일 비어하우스였다. 우리는 눈치껏 바 한 귀퉁이에 앉았다. 평일치고는 제법 사람들이 벅적였으나, 대부분 연령대가 있었다. 디에고와 나는 손님들 중 단연코 가장 어려 보였다.
바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담배를 태우며 맥주를 들이켜고 있었다. 애연가인 우리 두 사람은 반가운 마음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무엇을 주문할지 고민했다. 디에고는 베를린에 왔으니 단연코 맥주를 마셔야 한다는 주장이었지만, 뼛속까지 소주파인 나는 뭔가 샷을 먹고 싶었다. 메뉴판에 참이슬이 있었으면 분명히 시켰을 기분이었다.
디에고는 아직 초저녁이라며 나에게 작은 핀잖을 주었고, 나는 가볍게 진토닉을 시켰다. 다행히 중년의 바텐더 아주머니는 우리의 영어를 알아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는 적잖이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비록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그 이후로 우리 주변만 묘하게 조용했거든.
'단발머리 동양인 남성'으로 여행기간 이미 과도한 관심에 익숙해진 나와는 달리, 디에고는 조금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괜스레 어색한 분위기에 술잔을 기울이고, 줄담배를 태우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뒤로 맥주와 진토닉 몇 잔을 마시며 30분 정도가 지났다. 나는 가라앉은 분위기와 연이은 여행으로 초저녁임에도 졸음이 쏟아졌다.
잠을 깰 무언가가 필요했고, 바 옆 미니 냉장고에 든 레드불이 눈에 들어왔다. 바 찬장에는 예거마에스터도 보였다. 나는 당연하게 바텐더에게 '예거밤' 하나를 주문했다. 그런데 그녀는 못 알아 들었다. 예거밤은 영어로도 예거밤, 한국어로도 예거밤, 독일어로도 예거밤이다. 그럼에도 못 알아 들었다는 것은 여기 사람들이 안 마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예거마에스터 한 잔과, 레드불 한 캔을 주문했다. 이윽고 샷 잔에 담긴 예거마에스터와, 레드불 한 캔이 나왔다. 나는 얼음 몇 개 넣은 온 더락 잔도 요청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고, 디에고는 '그냥 대충 먹어'하는 눈치였다.
얼음잔에 예거마이스터를 옮겨 담고, 레드불 캔을 따 잔을 가득 채웠다. 가볍게 원샷하고, 남은 레드불 캔도 비웠다. 바텐더 아주머니가 "This is Jager-bomb?"하고 물어봤다. 나는 "Ja! Das ist Jager-bomb!"하고 답했다. 주변 손님들이 깔깔거렸다. 적당히 미소 지은 다음 담배를 마저 태웠다.
내 옆에 앉아있던 독일인 아저씨가 걸걸한 목소리로 라이터를 빌렸다.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 재킷, 검은색 두건과 귓불이 늘어진 피어싱. 목소리도 걸걸하고 매우 펑키한 비주얼이었다. 그는 내게 독일어로 뭐라 얘기했지만, 당연히도 독어를 전혀 못하는 나와 디에고는 영어로 몇 마디 답했다. 그는 가볍게 '흠'하고 콧바람을 내쉬더니, 담배를 마저 태웠다. 처음으로 독일어를 못하는 게 아쉬웠다.
줄담배를 태우던 우리는 곧 담배가 떨어졌다. 디에고는 바 안쪽에 구식 담배 자판기가 있다고 했고, 나는 2유로짜리 동전을 몇 개 챙겨 자판기로 향했다. 자판기를 대충 만지작 거리면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파악하고 있는데, 펑키한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나와 다가왔다. 그는 "시가렛?"하고 얘기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손에서 동전을 하나 집어 들더니 자판기 투입구에 어떻게 넣는지 보여주었다. 곧 담배 한 갑을 뽑았고, 나는 그에게 답례로 담배 한 까치를 건넸다.
그는 씩 웃으며 담배를 받아들였다. 이 동네는 담배가 무진장 비싸다. 그래서 대부분 실담배와 종이, 필터를 따로 사서 말아 피운다. 그래서인지 체감상 담배 한 개비 건네는 것을 비교적 큰 호의로 느끼는 것 같다. 자리로 돌아왔는데, 디에고는 어느샌가 옆 자리에 새로 앉은 다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유창하게 영어를 하기에 가볍게 인사를 하니, 그 아저씨는 자신을 이곳에서 일했던 바텐더라고 소개했다. 바에 앉은 지 두 시간 만에 처음으로 영어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술이 더 고팠던 우리는 보드카를 주문하려 했다. 독일에서 가장 싼 보드카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바텐더 아저씨와 펑키 아저씨가 동시에 "고르바쵸프!"하고 답했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곧바로 네 잔을 시켰고, 두 사람에게도 한 잔씩 권했다. 우리는 "Oi! Prost!"하고 함께 술잔을 부딪혔다.
펑키한 아저씨는 궁금한 게 많았는지, 통역해 줄 사람이 나타나자마자 우리한테 이것저것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베를린엔 무얼 하러 왔느냐, 두 사람은 연인이냐 친구냐 등등. "우리는 게이일 정도로 쿨하지 못하다."라고 마지막 질문에 우선 답변하니 두 아저씨도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내가 '코리아'에서 왔다고 대답하니, 'South or North?'하고 예상했던 후속 질문이 나왔다. 나는 '알려줄 수는 없지만, 내 라스트네임은 Kim이다'하고 말해줬더니 곧바로 'Supreme Leader?'하고 반응한다. 펑키한 아저씨는 본인이 동베를린 출신이라며 "North Korea! Not bad!"하고 껄껄 웃었다. 아저씨들 개그코드는 어딜 가나 비슷하다.
그 뒤로 한참 동안 술잔을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주크박스를 신기해하니 동전을 건네며 선곡해 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이름 모를 40도짜리 독주도 대접받아보고, 뒤늦게 술집에 나타난 로컬들과 테이블에 모여 앉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혀가 말릴 때까지 떠들었다.
그날 밤의 파장은 펑키한 아저씨가 술집 앞에 구토를 하며 막이 내렸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날 밤 구토를 했다. 독일인, 이탈리아인, 한국인 모두 술 앞에는 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