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Qurious Apr 22. 2024

여행과 질문 - 0

<여행 전. 2024년 1월 어느 날, 서울>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가?"


담배를 사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며칠 만에 머리를 감았다. 현관문 밖 세상을 마주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드러내는 최소한의 수고로움. 무언가를 마음먹고 행동에 옮기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진다는 느낌이다.  약 2년간의 첫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퇴사한 지 약 열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게임, 유튜브 쇼츠, 웹툰, 웹소설의 자극 속에서 도파민 수용체에 의한 신체의 보상체계가 무너져가는 것 같았다(물론 이러한 내용도 유튜브에서 본 것). 머리를 감지 않아서, 마땅한 옷이 없어서, 만날 사람이 없어서, 출근을 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껏 나를 움직이게 한 가장 큰 동기는 '의무감'이었나 보다.


항상 자유를 꿈꾸며,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을 때 결국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할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었다. 목적성 없는 자유가 주어진 채로, 무엇을 할지 몰라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사람. 헤겔인가 니체인가가 노예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나였다.


제필망자(提筆忘字): 붓을 들었으나 글을 잊다.


지난 몇 년동안의 나를 설명하는 문구. 손으로 펜을 들어 글을 적은 지는 참으로 오래되었고, 직장에서도 매일 수천 단어를 읽고, 교정하고, 편집하고, 다시 썼지만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쓴 적은 없었다. 나의 의식은 그 속에서 어떻게 뭉개져왔는가?


다시 생각해 봐도 살아오며 지금껏 써온 글 들도, 쓰고 싶어서가 아닌 써야 하기에 쓴 글 뿐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쓰던, 무엇으로 쓰던, 언제를 쓰던, 언제에 쓰던, 어떠한 것을, 어떻게라도 글을 써볼 생각이다.


모든 글을 저마다 필요에 따라 적힐 일이지만, 쓸모가 없어도 읽힐 수 있는 글.


담배를 사러 나간 편의점에서 초록색 노트를 샀다. 적당한 무게와 두께감, 크기,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필압이 좋을 것 같은 볼펜도 한 자루 샀다.

작가의 이전글 그냥 살다 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