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청춘연가, 김유경
청춘연가는 막 한국으로 오게 된 선화와 하나원에 같이 있었던 탈북자 여성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겪었던 고난과 자립해나가며 정착하는 모습을 담은 장편 소설이다.
주인공은 선화라는 나름 엘리트 집안의 여성으로 그녀가 북한과 중국에서 겪었던 과거와 대한민국에 와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선화를 중심으로 그녀 주위의 경옥, 복녀 등등이 자리하면서 또 다른 상황에 처해있었던 그들의 과거를 보여준다.
탈북자들의 대립과 연대
인물들이 하나원이 있는 초반 서사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부분은 경옥과 미선의 싸움이었다. 미선은 상당한 지위에 있었던 인물로, 다른 하나원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미선이 인터뷰 중 ‘탈북자들이라 해서 다 돈에 팔려 다닌 것은 아니다. 수치스럽다.’라는 내용의 말을 던지면서 돈이 있어 편히 들어온 사람들, 고생을 하다 들어온 사람들의 대립 구조가 나타난다. 이 대립을 보면서 이 둘은 서로 주지 않아도 될 상처를 주고 있다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이 두 사람의 경험은 운명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괴롭거나 좋은 것은 상대방의 탓이 아니다. 미선의 부유함이나 경옥의 성 착취 생활이 서로 혹은 자신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이야기다. 또 이 둘은 그 점을 알고 있다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로 인한 발언과 차별 점을 두고 싶어 하는 미선의 모습이 이 부분에서 잘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미선과 그들의 가족이란 인물로 우리는 그들의 고난들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님을 더 강하게 자각할 수 있다.
이러한 대립이 나오는가 하면 연대도 나타난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가족 없이 혼자 온 이들이 많다. 그중 경옥과 선화 복녀, 그리고 청이는 마치 한 가족들처럼 지낸다. 그러던 중 그들과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강화영과 미선에게 일이 생긴다. 강화영은 남자에게 사기를 당했고, 미선은 아버지의 실종을 겪는다. 둘 모두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선화와 복녀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을 내민다. 선화는 강화영에게 자신의 방을 셰어하고 복녀는 미선의 어머니를 가게에 채용한다. 미선 또한 복녀의 딸인 청이를 돌봐준다. 과거에는 자신들의 가족이나 자신 혹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혼자서 해쳐나가야 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이끌고 도와나가며 잘 되기를 빌어주는 모습이 굉장히 순수하게 보였다. 독자의 이 소설 안 인물들이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고, 어떤 말을 했든 응원하게 되는 마음에는 이들의 연대가 큰 영향을 준다 생각했다.
새로 태어나려면 먼저 죽어야 한다.
북한에서 온 인물들이 한국에 적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정치사상부터 하나하나씩, 다른 곳에서 한평생 살다 온 사람들이 한국에 완벽히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했다. 버리기 쉬운 것이 있는가 하면 어려운 것이 있고, 그런가 하면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복녀는 자신에게서 나타나는 북한의 요소들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장점으로 만들어 나간다. 미선과 미선의 어머니는 높은 지위에 있었다는 자존심을 버린다. 그중 선화는 한국 적응을 가장 잘해나가는 인물로 표현된다. 선화의 경우 글을 쓰게 되면서 북한 사회 몽매함에 깨달아 가게 된다. 과거 교수이던 아버지가 만들어왔던 업적과 명예를 떠올리고 그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과거를 부정함으로써 달라진다. 경옥은 어린 나이에 맞게 초반부터 사상의 변화를 보이는데, 성 착취 당한 과거를 잊지 못하고 성매매를 한다. 하지만 복녀와 선화의 이끎으로 점차 변화해 나간다.
탈북 여성들의 성 착취와 그 이후
탈북 여성 중 대부분은 중국을 통해 왔는데, 대게 인신매매로 중국인 남자에게 팔려온 이들이다. 특히 선화는 중국인 남자에게 강간당할 뿐만 아니라 중국인 남자의 빚 대신 그의 형에게까지 강간당한다. 동물만도 못한 일종의 사물처럼 취급받은 것이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은 슬프지만 글을 읽는 독자가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이전보다 더 관심을 가지게 된 쪽은 탈북 한 여성들의 성매매 문제였다. 소설 안 경옥은 탈북 이전에도 성매매를 하던 여성이다. 선화와 복녀의 만류로 성매매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지만 결국 성매매를 다시 하게 된다. 경옥이 다시 성매매를 하게 된 이유는 단순히 돈을 쉽게 벌겠다는 그런 단순하고 편리한 이유가 아니다. 경옥은 과거부터 해온 성매매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또다시 성매매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지로 자각하지 못한 성매매는 성 착취와 다를 바 없다.
이런 면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 받는 교육에는 실생활 관련만 있을 뿐, 이러한 점을 일깨워주는 교육은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또 교육 이후에도 제도적으로 이러한 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돕는 지속적인 관리가 있어야 한다 생각한다. 실제로도 높은 비율의 여성들이 다양한 이유로 성매매 업소로 흘러들어가고 있고, 그렇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소설 안 화영도 사기를 당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그러한 고충을 겪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성매매를 하는 사람을 없애는 것만큼 좋은 대처 방법은 없겠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여전히 성매매의 수요와 공급을 중단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그들이 대한민국으로 온 이상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고, 그들을 보며 북한이란 편견에 휩싸여 혀를 차거나, 먼발치 서 바라보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점을 고쳐나간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행동해야 한다.
북한의 이미지
인물들은 대부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되는데, 대부분 가난으로 인하여 중국 남자에게 팔렸었다. 그중 강간을 당하기도 하고, 진짜 사랑을 얻기도 하며 다양한 양상을 보여준다. 과거 인물들이 겪은 북한 문제들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것과 별도로 중국과 연관된 문제나 고생들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의견을 내보이지 않은 점이 좋다 생각했다. 사실은 전달해도 왜곡 가능한 이미지에 대해서는 치우쳐 보이지 않게 하시려고 작가님이 노력하신 것 같다 느꼈다. 한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폭넓지 않다. 주로 키워드로 머릿속에 각인되곤 한다. 이러한 단편적인 것들로 단정 지으면 안 됨을 집어주는 부분이 있었다. 북한에서 왔다 말할 때 한국 사람들의 태도 변화와 인터뷰 때의 말이 그러했다. 한국 사람들이 나쁜 의도를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이미지만 가지고 탈북자들을 대하는 것은 실례되는 일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독자가 인물에 이입했기에 느끼게 되는, 인물이 듣는 말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잘 이용했다 생각했다.
북한, 남한 한국
이 소설을 읽으면서 좋다 생각했던 점은 북한과 남한을 한국이란 단어로 묶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의 시작이 한민족은 맞다 하지만 이렇게 긴 세월이 지나 많은 것이 달라진 이상 과거처럼 하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0.5+0.5로 1이 되려 하지 말고 1+1로 2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다. 가장 남한과 다른 복녀는 내심 선화가 남한 사람으로 진화하기를 바란다. 진화란 뜻은 보통 상황에 맞게 생존에 더 적합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선화가 완전히 진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복녀라는 인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복녀는 조력자 위치에 있는 인물로 자신이 북한에서 왔음을 숨기지 않고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어내 자신의 가게를 지닌 사장님이 되고, 북한에서 온 사람을 채용해 도와나간다. 복녀의 북한 요소들은 손님들에게 친숙해져가고, 가게는 번성한다. 복녀란 인물을 보며 하나의 나라에 집착하기보다는 북한과 동반자적 입장으로 함께 할 수 있다면 좋을 거란 생각의 변화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