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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Mar 28. 2023

문진영, 『두 개의 방』

공간과 기억


문진영두 개의 방

공간과 기억       

  

서론     


  건물을 세우는 시간과 무너뜨리는 시간 중 어떤 것이 더 오래 걸릴까? 아마 세우는 것이 더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다르다. 한순간의 기억이 평생 함께하기도 한다. 공간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파괴되어 터만 남지만 그 공간에서 쌓은 기억들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은 종종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뜨겁게 하기도 한다. 두 개의 방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과거 기억과 공간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과거를 추억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한다. 특히 술과 일상의 공간이 아닌 장소라는 점을 이용해 몽환적인 분위기와 사람이 평소에는 말하지 못하는 솔직한 감정을 드러낸다.   


두 개의 방 줄거리     

 

  ‘나’는 편집자로 책의 저자인 ‘그’를 만나기로 한다. 장소 조율 과정에서 둘은 서로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고,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중간지점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 곳으로 둘은 절로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과정 중 그는 술 산책 (아무 곳에나 들어가 술을 마시고 다시 돌아다니며 술집 찾기를 반복하는 산책)이라는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우리 둘은 취기와 함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나는 학생 때 은미와의 기억을, 그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작품분석  

   

술 산책 

  술 산책은 그가 나에게 제안하는 행위로 아무 술집이나 들어가 술을 마시고 나와 또 술집을 찾는 일이다. 이는 술로 하여금 인물들과 읽는 이들의 감정적 거리감을 줄인다. 또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환경을 구성해 과거와 현재를 반복하는 서술 구성을 자연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구성 속에서 나는 고등학생 때 은미와의 기억을, 그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초반부에는 얕게 나왔던 이야기가 술에 취할수록,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깊게 드러나는 모습은 산책이 여정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특히 앞에서 과거의 추억에 아무리 젖어도 나와 그는 폐허(그의 과거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술 산책이라는 소재는 이런 식으로 앞에서는 현재와 과거를 합쳤다가 결말부에서는 효과적으로 분리해 내고 있다.

 

걷기와 낮잠

  소설 안 나는 계속 걷는다. 그와 만나기 위해 걷고, 술집을 찾기 위해 걷고, 회상에서도 은지를 찾거나 은지의 방에 가기 위해 걷는다. 그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들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은지는 누운 형태를 대게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세탁소집 주인과 그의 백구, 전집 주인아저씨 그리고 아침에 늦잠을 잔 은지같이 말이다. 걷는 것은 어떠한 장소를 향해 이동하는 행위이다. 현실 세계에서 멈추고자 하면 걷지 않으면 되지만, 시공간을 모두 고려하면 우리는 결코 멈출 수 없다. 나와 그의 걷는 행위는 어떠한 상황을 겪던 멈추지 못하고 삶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애에게서 어떤 냄새가 난다면 

그것은 어른의 냄새진짜 생활의 냄새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23P     


  앞선 걷기와 다르게 누운 것은 휴식의 의미를 뜻한다. 특히 은미와 나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고등학교 때 나는 부모님이 학비를 지원해 줬지만 은미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은미는 갈빗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런 어느 날 재워달라고 자신을 찾아온 나를 은미는 자신의 방에 가있으라고 말한다. 이때의 은미는 학업과 돈을 위해 걷는 중이었다. 걷고 돌아온 은미가 나와 함께 누워 잠드는 모습은 둘이 서로의 휴식이 될 수 있었음을 나타낸다.

  나와 그는 결말부에서 그의 과거 공간인 폐허에서 담배를 피우기 위해 걸터앉는다. 이는 걷지도 눕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이다. 이는 추억을 회상하며 휴식을 취하는 나와 그를 의미한다. 둘은 여전히 삶을 걸어 나가는 위치이지만, 술과 추억을 통해 잠시 과거의 세계와 동화된다. 그러한 이도 저도 아닌 둘은 독자에게 추억에 대한 어떤 이미지도 심어주지 않는다. 특히 나와 그의 기억에 대한 가치관도 다르기에 독자의 기억을 한 측으로 유도하지 않으며 자유롭다. 이런 나와 그의 모습으로 읽는 이들은 자신의 추억을 되돌아보고 그 추억이 어떠하든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위로감을 얻는다.

 

두 개의 방 (은미의 방과 아버지의 방)

 

 그치만모두가 잊어 버렸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건 아니지 않을까요?”

  아뇨난 아니라고 생각해요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없었던 일이나 마찬가지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18P     


  나와 그는 똑같이 과거를 추억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추억에 대한 태도는 서로 다르다. 나는 내가 기억하지 않아도 은미와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고, 그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믿는다. 이 둘의 차이는 은미와 아버지의 기억으로 생겼다. 은미의 방은 원래 나의 공간이 아니었다. 은미의 호의로 들어가게 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방은 처음부터 그와 그의 아버지의 공간이었으며 재개발로 뺏기고 만 공간이다. 그렇기에 은미의 방, 공간 자체는 현재 살아남았지만 그의 공간은 살아남지 못해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한편으로 과거-현재가 이어지는 추억 공간은 내게 영화관이고, 그에게는 성냥불이다. 이때 성냥불은 성냥불이 소녀의 환상적 의미가 첨가되어 있다. 둘 모두 어둠에서 시작해 잠시 동안 어떤 상황을 보게 해준다. 영화관의 경우 공간은 지속적이고 영화 필름만 바뀌는 반면 성냥불은 연소 기간도 짧고 타고나면 사라진다. 이는 둘의 기억 추억 방식의 차이를 그대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로 둘이 갈등을 빚거나 그렇지는 않다. 결국 똑같이 추억하는 입장이고, 불이 꺼지고 나면 함께 현재라는 어둠 속에 남기 때문이다. 어둠은 과거에는 그들을 위협하고 괴롭히는 것이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일상적인 것으로 나와 그는 같은 입장의 서로를 이해하고 비로소 폐허를 떠나 해장국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결론 

  소설의 내용은 극적이지 않다. 결말 또한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이 두 개의 방을 읽는 동안 우리는 진짜 누군가의 과거를 훔쳐보는 듯 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대같이 끊임없는 변화와 적응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견디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래서 과거의 일들이 쌓여 나라는 존재가 생긴다는 것이 종종 잊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현대 사람들의 과거 찰나를 포착해 기록했다. 또 생성과 소멸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두려움, 그리움 같은 공통 감정들을 나와 그라는 인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이렇게 생성도 소멸도 평화로운 소설이 끝나고 나면 읽은 이는 절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방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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