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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태 May 16. 2022

리더는 외로워야 한다

나는 스스로 소외되기로 마음먹었다.

 4년 전, 나는 열심히 다니던 교회의 고등부를 스태프의 직분으로 봉사를 했던 경험이 있다. 지금보다 미성숙하고 더 어렸었던 나에게 그때 당시 경험했던 사건들과 시간들은 나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끔 하면서도 동시에 '리더의 조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끔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때 경험했던 공동체에는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병폐가 하나 있었는데, 고등부를 섬기던 스태프들이 자기들과 친한 특정 아이들만 챙겨주는 것이었다. 그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났는지 모르겠다. 일명, '끼리끼리' 문화는 고등부를 담당하는 전도사님이 다른 분으로 바뀌어도 변할 기미가 없어 보였고,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발 벗고 나서는 사람조차 없었다. 어렸던 나는 '나라도 나서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봤지만, 나 역시 어렸기 때문에 비판만 할 줄 알았지 구체적이고 지혜로운 해결방안을 찾아내지는 못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존에 계시던 목사님께서 떠나시고 새롭게 또 다른 목사님께서 고등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 목사님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꽤 유별나신 분이었다. 첫 회의를 잡은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 고등부를 위해 어떠한 계획과 기조를 잡아야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목사님께, "막말로 어차피 목사님도 1~2년이면 이곳을 떠나실 수도 있는데 목사님에게 맞춰진 틀이 아닌, 목사님이 떠나시더라도 남을 틀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매우 경솔했다.) 그런데도 목사님께서는 이 말을 계속해서 기억하셨다. 겨우 이걸 가지고 그분이 유별나신 분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 나는 나만의 고집과 분노에 가득 차서 같은 공동체 사람들 앞에서 '불편한 목소리'를 유독 많이 내던 사람이었다. 명확한 해결책을 들지도 않고, 이것이 잘못되고 저것이 잘못됐다는 말만 늘어놓을 줄 알았다. 이것이 내가 같은 공동체 사람들에게 미움을 샀던 이유기도 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내가 당신에게 있어서 극히 불편한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자존심을 건들 수 있는 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그 말들로 스스로를 돌아보시는 분이셨다. 나는 지금 내 편을 들어줬기 때문에 그분이 좋은 사람이 분명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절대 아니다. 그분은 내가 아닌 누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기억하고 노력하셨다. 사실 그분이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 누구의 지지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어딘가 외로워 보이셨다. 아이들과 스태프들을 지극정성으로 챙겨주시면서도, 절제가 느껴졌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다.


"리더는 철저하게 외로워야 한다. 리더가 공동체 분위기의 중심에 있기를 즐기면, 그 중심 밖에서 겉도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리더는 그 중심이 아닌, 공동체를 넓게 바라볼 수 있는 바깥에 홀로 있어야 한다."


이 말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박혀있는 까닭은, 나에게 그 말은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리더라는 존재는 공동체를 주도하고 이끌면서, 모든 곳의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그런데 철저하게 외로워야 한다니! 목사님께서는 공동체를 이끌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다. 방향을 제시하고, 갈등이 생기면 나서서 해결하시고, 문제를 나서서 해결하는 등 리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셨다.

다만, 그분은 스스로 외로우셨다. 고등부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끼리끼리' 문화에서 걸어 나와 스스로 소외된 곳에 머무셨다. 어쩌면, 상처받았던 친구들이 한 명씩 돌아왔던 것과 결국 돌아오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이 그 목사님에게만큼은 마음을 열었던 것도 이 때문이리라.


최근에 나는 운동과 음악으로 여러 가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는 작은 팀들을 두어 개 꾸렸다. 모두 나와 친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인데, 시간이 지나며 이 공동체가 방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과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나는 평소 같았으면 편하게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내 고민을 나눌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때로는 공동체의 기강과 분위기를 위해서 내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기억조차 못할 희생을 치러야 했다. 때로는 내 진심과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을 해야 했다. 해주고 싶은 말이나 이야기가 있어도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나는 누구보다 친했고,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던 고민들을 이 친구들에게조차 더 이상 나누지 못하게 되었다. 비즈니스로 이 친구들과 관계를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가지 않기 위해, 내가 먼저 스스로 이 친구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친하지만, 친하지 않다. 누군가와 너무 가까우면,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멀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외롭다. 그리고 스스로 소외되기를 자처했다.

최근에 이러한 나의 모습을 보고, 4년 전 그 목사님이 떠올랐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외로움이란 이런 걸까. 나의 외로움이 그때 당시 목사님께서 느끼셨던 외로움과 같은 걸까.


스스로 소외되기를 원했던 목사님은 결국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개인적인 일들과 고등부의 문제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리더로서 안아야만 했던 말 못 할 무게들. 목사님은 그렇게 외로운 리더를 자처하며 고등부를 이끄셨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것이 최선이었다는 것만 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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