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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Apr 22. 2022

포기한 것들에 대한 잔상 2

포기하는 데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2019년 후기에 교사 신분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큰 뜻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친한 부장님이 젊을 때 빨리 다녀오라고 하신 말을 듣고, 마침 원서 접수 기간이어서 타이밍 좋게, 갑자기,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추가되었다. 그래! 대학원 졸업해서 가방끈 늘리고, 논문도 한 번 써보자! 정도의 마음이었다. 일반대학원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의 수업도 아니어서 그냥저냥 잘 다녔다. 그리고 논문 학기가 시작되자 잠이 안오기 시작했다.


2021년 2월. 논문 데이터를 모으기 위해 매주 논문 세미나를 시작해야 하는 시기였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심한 성대결절이 왔었고, 새 학기 준비와 논문 세미나를 모두 병행하는 것이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또, 첫 담임의 역할을 준비하고 있었다. 며칠을 울면서 꾸역꾸역 버틴 교사 겸 대학원생은 결국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다음 학기를 휴학하기로 결정했다.


2021년 7월. 시간이 빠르게 흘러 다시 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그 해 여름에 나는 1급 정교사 자격 연수를 받았기 때문에 홀가분한 마음 상태는 아니었다. 1정 연수와 논문 세미나 준비를 동시에 하려니 힘들기는 했지만 그때 당시 남자 친구가 있어서 그에게 의지하면서 잘 버텼다. 오후 5시까지는 연수를 듣고, 저녁에는 논문을 읽었다. 남자 친구를 만나서도 논문 이야기를 하며 내 불안함을 진정시켰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많이 힘들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고, 새벽에 여러 번 깨고, 무서운 꿈을 꿨다.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고, 살이 빠졌다. 가만히 있으면 눈물이 흐를 정도로 막막했다. 무엇이 날 그렇게 부담을 줬는지, 답도 없고 끝도 없는 논문의 세계는 나를 깊은 구멍에 빠트린 것 같았다. 방학을 꾸역꾸역 버텨내고, 2학기가 시작되자 그 깊은 구멍은 더 깊고 어두워졌다. 우리 반에 감정적으로 어려운 사건들이 자꾸 터졌고, 퇴근 시간까지 미친 듯이 업무를 끝내고 나면 곧바로 퇴근해서 논문을 검색했다. 그렇게 일주일을 준비해서 논문 세미나에 가면, 내 주제를 논문으로 현실화시키기가 어려워 다시 원점이 되었다. 그즈음 내 불안하고 어려운 감정들이 함께 뒤섞여 많이 좋아하던 사람과 이별을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논문을 포기했다. 논문을 쓰지 않아도 논문 대체제도를 통해 석사 학위 취득은 가능하지만, 내가 논문이라는 선택지를 놓지 않았던 건 단순히 나 자신 때문이었다. 사실 박사 학위를 따고 싶은 욕심이 있거나, 교사가 아닌 연구자의 길을 갈 거라면 논문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내 미래에 저런 모습들이 없기 때문에 논문이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욕심이 났다. 남들 다 쓰는 석사 학위 논문인데, 왜 내가 이걸 못하지? 내가 이 정도로 힘들 수가 있는 걸까? 왜 이렇게 힘들지? 내가 무언가를 포기한 적이 있던가?


어떤 일을 시도하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포기하는 것에도 아주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껴버렸다. 논문을 쓰지 않았을 때 혹시 내가 아쉬움이 남지는 않을까, 언젠가 갑자기 변한 내 진로 속에 논문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여전히 논문 생각이 나는 걸 보니 나는 여전히 포기가 힘든 사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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