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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Jun 03. 2022

09. 패션 디자인에서 학위는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전부 선택의 문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학부를 졸업한 지 석 달이 겨우 지난 시점임을 밝힌다. 패션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하는 글을 쓰기에 앞서, 정작 작성자 본인은 논문은 고사하고 논문으로 작성할 법한 연구 경험도 전무한 상태임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또한 석, 박사 과정을 진행하면서 의견을 수정할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사실 수정하지 않을 리가 없다고 해두는 편이 더 옳을 듯하다. 새로운 의견 게재 및 수정은 추후 읽기에 다소 불편할지라도 모두 이 글 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각 수정 별 시점 또한 함께 기록될 것이다.


훗날 글을 고치고자 다시 돌이켜본다면 얼마나 부끄러울지 벌써부터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지만, 학생이 시도해볼 수 있는 자유 정도로 덮어두고 우선 써 내려갈 생각이다. 내가 그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을 뿐, 지금도 패션 연구를 수행 중인 사람들이 분명히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수가 점점 증가할 것이라 믿는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자 하는 당신들에게 자신감과 위안을 전해주었으면 한다. 안타까움과 분노가 밀려올 수도 있으나, 어쩔 수 없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분노도, 자신감도 좋은 원동력이 될 터이다.

 

학위: 학문을 전문적으로 익히고 공부하여 일정한 수준에 오른 사람에게 대학에서 주는 자격(출처: 표준국어대사전)


패션 디자인에서 학문은 무엇인가. '패션디자인과', '의류학과'에 들어온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패션 디자인의 학문에 뜻을 두고 입학했을까. 표현의 완곡함에 차이가 있을 뿐, 학교를 먼저 다녀본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대학 기관의 무용함과 그로 인한 회의감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 같은 시간을 '현장'이라고 하는 곳에서 보낸 사람의 실무 지식을 학생들이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육, 연구 시스템과 산업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이다. 역시 학위만으로는 이 업계에서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을까. 옷을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옷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저마다의 뜻을 품고 들어온 대학에서 보낸 시간은 당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그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 무의미해지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1980년대에 세계의 아트 스쿨들은 각각 패션 학부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학생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의복 디자인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시도들을 하며 자신감을 얻어갔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자 자연스레 패션의 제작, 프레젠테이션, 프로모션 등에 있어 새로운 방식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출처: 예뻬 우겔비그, 『패션워크 1993-2018 25년의 패션 예술』, 남은욱, 남현지, 서종근, 이지혜 옮김, 다다서비스(2022), p.61


당신들 본인만 이해할 수 있을 법한, 패션에 관심 없는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교육 현장에서 태어난 옷들은 알게 모르게 관습에서 탈피해왔고, 새로운 디자인을 개척해왔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행해온 실험적인 디자인들은 패션 디자인이 어디까지 가능한가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기에 실무 현장과 교육 현장의 시간은 그저 다를 뿐이지, 섣불리 밀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의미 있는 시간들을 꼭 대학에서 보내야 하는가 하면 여전히 아리송하다. 학생들의 이러한 실천적 연구에 대한 교육 기관의 역할이 단순히 학생 개인들의 작업에 대한 주기적인 피드백 외에 무엇이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가장 중요하기도 한, 학생들이 이러한 역할 - 패션 디자인의 영역 확장- 을 원하는가에도 의문이 앞선다. 논문, 학위와 무관하게 먼지보다 작은 크기일지언정 업계가 그어놓은 한계선을 넓히는 사람들이라면 그분들이 연구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학생들이 이 업계의 연구자를 원해서 학교에 머무르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물어볼 시점이다.


달리 말하면, 대학은 본인만의 연구와 수행에 대한 필요성이 전제되어야 의미가 있는 기관이지만 이 전공에 들어온 사람들에게만큼은 진정으로 그러한지 확신하기 어렵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돈을 투입한 만큼 유의미한 교육과 연구를 대학에 기대할 수 있는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실제로 과거에 비해 학생들이 대학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대학에 대한 의구심은 유학이라고 비켜갈 수 없다.


패션 산업이 과거부터 서양의 주도 아래 발전해왔고, 그만큼 유명한 패션 스쿨들이 특정한 몇몇 국가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에 패션 교육 현장에서 유학은  비중을 차지해왔다. 과거에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학부 단계부터(혹은  이전부터) 서양의 교육을 수용하는 것을 필수에 가깝던 시기도 있었다. 또한  시기에는 그만큼 패션 업계에 뜻을 두고 있는 학생들의 눈높이를 충족할  있는 시장이 서양에만 존재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패션 스쿨은 교육, 연구 기관뿐만 아니라 유학생들이 타국에서 자리잡기  안전하게 소속되어 자신의 실력을 쌓을  있도록 하는 전진 기지의 역할로써도 기능했다. 하지만 패션 업계의  지리적 비대칭성이 사라져 가면서, 해외 패션 스쿨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현장' 자국 내에도 존재하고, 자국 패션 산업이 나날이 성장해가고 있는 상황에 굳이 해외 학교를 베이스캠프로 삼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https://www.businessoffashion.com/education/rankings/2017


물론 유학은 말 그대로 새로운 장소에서 이뤄지는 만큼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사람에 대한 가능성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 남아있는 비대칭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균형을 맞추어 오는 동안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 것은 아니기에, 기회비용을 계산하기가 무척 어려워졌다. 그만큼 본질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결국 학생 비자를 받고, 학생 신분이다. 학생의 신분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학생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교육 기관에 소속되어 보장받은 시간 동안 자신만의 실천적 연구를 전개해보고, 현장의 바깥에서 비판적으로 업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담론을 탐색하는 정도일 것이다. 다만 불행하게도, 이를 위해서는 업계 전반에 새로운 담론들이 제안되고 있는지부터 돌이켜봐야 한다. 산업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가. 과거에야 옷이 필수소비재 정도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경기소비재다. 심지어 사치재로써의 옷도 그 파이가 커지고 있다. 이는 그만큼 사람들이 옷을 대충 소비하지 않고, 이 산업이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음을 설명한다.


달리 말하자면 패션은 개개인의 취향을 투영할  있는 도구에 그치지 않고 동시대 자체를 담아내고 있는 거대한 그릇이 되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변화를 쫓아올 만큼  업계에서 학문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패션디자인과', '의류학과' 과연 패션에 대해 학술적으로 접근할  있는 곳인가. 적어도 본인의 얕은 , 간접적 경험으로는 옷의 생산, 사업적 운영, 기타 각종 실무적 지식과 관련된 교육에 치중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디자인의 한계를 넓히면서도 동시에 이들 요소들과 균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도  산업의 최전선에 자리 잡고 있다고   있다.


하지만  나아갈 수는 없는가. 대학에서 패션의 사회적 역할 혹은 패션과 연관된 사회적 현상을 다룰  있는 프로그램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디자인도, 실무적 지식  기술 훈련도 좋지만,  과정들은 시대를 바라보기보다는 지나치게 스스로에게만 몰입하도록 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어떻든 간에 최소한 학술적 접근이 가능하도록 여지는 두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공계가 아니면 전부 죄송하다고 빌며 살아가는 시대에 종합대학이라고 연구에 초점을 맞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기획과 예술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역시 실무에 집중해야 할 것만 같은 이 전공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만큼 대학의 바깥에서 이 업계의 문제와 현상에 대해 꾸준히 비판하고 새로운 담론을 불어넣고자 하는 시도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오히려 대학 내에서의 패션에 대한 연구는 영화, 문학, 사회학 등 다른 학문들에서 더 다양한 접근을 이뤄내기 위해 차용하는 소재의 경우에서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대학은 대학이고, 전공은 전공이다. 업계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고, 대학은 연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야 할 책무가 있는 기관이 아닌가.


확실히 지금과 같은 시스템 속에서 패션을 '연구'한다는 것은 스마트폰은커녕 나침반도 없이 숲 속을 방황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갈수록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회의가 우선시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동경해온 디자이너들의 상황도 더하면 더했지 지금보다 나았을 리는 없다.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한계를 넓혀온 사람들이고, 기존에 없던 패션을 실천해온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션 자체를 의심하기에는 그들도 우리도 모두 각자 선택한 길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 일에 대해 더 배워보겠다고 대학에 들어온 것조차 온전히 스스로의 결정이다. 왜냐하면 이 업계는 환상만 제공해줄 뿐, 아무것도 보장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전공에서 학위는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일자리도, 일정 수준의 소득도 그 무엇 하나 보장해준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다 같이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환상을 무작정 쫓기만 하다 보니 이 산업은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을 야기해왔다. 더 이상 각자의 한계선만 넓히고 있을 수는 없다. 환상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시간도, 사람도 필요한 지금이야말로 대학과 학위의 역할에 대해 재정립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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