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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Dec 23. 2022

19. SSENSE(에센스): Post-Arcade?

에센스는 온라인 편집샵에 불과할까?

21세기 패션은 누가 주도하고 있을까? 분명 오트 쿠튀르는 과거의 지위를 상실했다. 그들은 패션의 중심이 아니며, 유행을 주도하는 집단도 아니다. 되려 그들은 제안을 수용하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더 이상 캣워크는 백스테이지에서 거리로 나아가는 무대가 아니다. 반대로 거리의 대중들이 디자이너의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통로일지도 모르겠다. 패션에서 탑-다운은 유명무실한 개념이 되었다.


그렇다면 패션은 바텀-업일까? 사실 패션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전파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Peter Braham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다수의 패션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Braham, P. 2017. Fashion : Unpacking A cultural production. Fashion Theory, 351–372.) 즉 쿠튀르가 유행을 선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지위를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쿠튀르는 지금도 '하우스'이자 동시에 레디-투-웨어의 핵심적인 참가자들이며, 이들이 구성하고 있는 프랑스 패션 산업의 영향력은 분명 본인의 상상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지금의 영국 패션 교육의 지위를 형성한 수많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프랑스 산업에 침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프랑스 산업이 패션계의 재능을 모두 흡수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처럼 패션이 아무리 다원화되었더라도, 영국의 교육과 프랑스의 산업이 패션 시스템 내의 거대한 두 축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찰스 프레데릭 워스라는 영국 디자이너가 프랑스 쿠튀르를 창립한 순간부터 이어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다수의 패션 시스템은 '하이'와 '서브' 사이의 지위뿐만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지위까지 뒤흔들고 있다. SSENSE 이전에, 유럽, 미국과 비교해서 캐나다가 지금껏 패션 업계에서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캐나다뿐만 아니라 몇몇 특출 난 디자이너 개인이 아닌 하나의 시스템 혹은 조직이 유럽/미국의 밖에서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적이 있었나? 하지만 앞으로의 복식사에서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몬트리올의 SSENSE는 소매업을 통해 다수의 패션 시스템에서 한 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패션 상품들이 정통성, 헤리티지 같은 고귀한 수식어와 무관하게 소매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영리하게도 유럽의 디자인 헤리티지에 맞서지 않고 소매업에서 그들의 헤리티지를 새롭게 쌓아가고 있다.


디자이너의 레디-투-웨어, 새빌 로우Savile Row의 테일러링, 하우스의 쿠튀르, 심지어 거리에 쏟아지는 무분별한 카피 제품들까지. 결국은 제조업인 만큼 모든 옷은 판매가 관건이다. 주문 제작의 영역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소매 개념과 거리가 있겠지만, 쿠튀르 내에 'Vendeuse(=saleswoman)'이 고객과 쿠튀리에를 연결하고, 테일러들이 중심가의 고급 매장들 곁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역시 방법과 형식의 차이일 뿐 소매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패션이 디지털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패션 소매 역시 새로운 방식이 등장했다. 지난 세기에 도시의 중심가에 소비 공간들이 집결하면서 '아케이드'를 구성하고, 그곳을 돌아다니는 '플라뇌르flaneur'가 존재했다면, 지금은 몇몇 인터넷 플랫폼에 브랜드들이 입점하고, 그곳을 탐색하는 '브라우저browser'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 아케이드는 도시의 '스펙터클'을 형성하는 주요 공간이었고, 패션에서는 소비를 활성화하는 공간이었다. 패션 산업에서는 아케이드 내에서 이루어지는 거래가 곧 현대적인 거래의 시작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케이드라는 공간 덕분에 소비자는 생산자를 마주할 일이 없었고, 주문한 고객이 아닌 소비자로서 중개인을 통해 즉시 거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케이드와 백화점은 그저 공간을 배회하는 사람들도 뒤섞인 곳이 되면서, 패션의 소비는 단순한 결제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패션 소비는 구매뿐만 아니라 이미지 소비 역시 포함하고 있지 않은가?) 앤트위슬Joanne Entwistle은 나아가 소비한 아이템들은 물건이 아니라 상점 자체의 스펙터클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직접 걸어 다닐 수 없고 눈으로 훑어볼 뿐인 웹사이트 기반 소비에서 우리는 '스펙터클'을 경험할 수 있을까? 중심가로의 진입, 직원의 환대, 매장의 인테리어와 유명 백화점의 이름까지. 인터넷은 패션을 소비하는 여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을 삭제했다. 심지어, 당연한 결과이지만, 백화점과 같은 유명 소매업체들 역시 브라우저들을 수용할 준비를 마치면서, 그들은 디지털 내에서도 그들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SSENSE는 어떻게 그들의 영역을 구축했을까?


SSENSE는 심리적으로 기성복의 소매와 맞춤복의 소매를 교묘하게 섞으면서 웹사이트라는 가상공간이 중개'인'으로 보이도록 했다. 그들만의 진열 방식은 웹 상에서 스펙터클의 구현을 증명한다. 그들의 웹사이트는 산책하는 공간 없이도, 탐색만으로도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획일화된 진열은 이미지로서 옷을 부각해 웹이라는 장소의 한계를 삭제하고 이미지만으로도 소비를 이끌어내도록 한다. 혹은, '획일성'을 강조하는 듯한 그들의 진열 방식은 수많은 디자이너들의 옷이 혼재함에도 불구하고 몸의 통일성을 구축해 마치 쿠튀르의 고객 마네킹, 테일러링의 채촌처럼 하나의 몸처럼 보이도록 하고, 소비자의 동기화를 유도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누구보다 유행에 적합한 기성복을 취급하는 전문 소매업체이면서 동시에 맞춤복 산업 내의 고객 커뮤니케이터처럼 작동한다.

SSENSE Spectacle

하지만 SSENSE는 패션 소매업 내에서의 독자적인 지위 확보로 그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패션 산업 내 궁극적인 목표는 유행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3가지 축; 디자이너, 바이어, 저널리스트를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이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상류 패션을 포함한 누구도 더 이상 트렌드를 결정할 수는 없다. 유행이 형성되기까지 취향의 전파는 복합적이고, 흐름과 기원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그럼에도 컬렉션을 구성하는 디자이너, 컬렉션이 시의적절한 지 판단하는 저널리스트, 트렌드 예측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구매를 이끌어내는 바이어, 이들의 역할이 여전히 결정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SSENSE는 이미 바이어이자 저널리스트이며, 디자이너의 역할까지 자처하기 위해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 세 영역을 모두 점령하고자 한다.

*파페치의 오프화이트 인수도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된다면, SSENSE와 같은 기업들은 머지않아 디지털 아케이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아케이드가 단순히 물건 구매를 위한 장소가 아닌 교류의 장이자 유행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었듯, 이들 플랫폼 또한 앞으로는 소비하는 곳이 아닌 트렌드가 형성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은 옷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생활 속의 모든 오브제들과 기기들을 취급하며, 매거진처럼 텍스트를 통해 새로운 패션 콘텐츠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전환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거대한 쇼핑센터, 백화점보다 더욱 확실한 익명성과 자유로운 소비를 보장하고 물리적인 제약 또한 확연히 덜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진단을 단순히 비약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다.


글을 끝맺기 전 마지막 사견을 더하자면, 개인적으로 이들의 움직임은 마치 아케이드를 넘어 새로운 파리의상조합의 시작을 보는 듯하다. "파리"처럼 지역에 국한되지 않으며, 쿠튀르 다음 레디투웨어들의 새로운 조합. SSENSE가 광범위한 품목과 브랜드를 취급함에도 불구하고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SSENSE 입점이 어떠한 등용문처럼 되어간다는 점, 앞으로 유행을 주도할 가능성 등을 미루어보아 그들의 취급 기준이 앞으로는 특별한 지위의 상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앞으로 디지털 세계 내에서 우리가 주문 제작 시스템조차 구현 가능하다면, 정말 새로운 쿠튀르 조합은 이들에게서 나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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