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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무요 Dec 29. 2022

20. 젠더와 패션

(       ) wear

프랑스 파리에 있는 Institut Français de la Mode의 MA Fashion Design Pathway는 남성복과 여성복을 별도로 운영하지 않고, 모든 성별을 아우르는 일원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처럼 패션 디자인에 대해 젠더의 관점에서 새로이 접근하는 방식은 패션과 의류 산업 내에서 영속되어 온 전통적인 이분법에 도전하고, 관습에 대한 사회적 기대, 예측을 무의미하게 한다. 이미 유니섹스가 다소 지난 시대의 단어로 치부되고, 젠더-인클루시브 gender-inclusive, 젠더 뉴트럴 gender neutral과 같은 새로운 용어의 등장은 이 도전이 단순히 일시적인 추세가 아닌 업계에 전반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It is a gender-inclusive program, with no boundaries between womenswear and menswear, in which students are led to become high-level fashion design experts without being limited by any gendered considerations.
Institut Français de la Mode

하지만 위와 같은 끊임없는 시도는 반대로 패션 산업 내에 이분법적 관념이 한 번에 해체할 수 없을 만큼 공고하며, 패션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젠더에 대한 관습이 얼마나 지배적인지 설명한다. 생물학적 성을 넘어서 사회적 성은 사회와 개인이 성별에 따라 특정 행동, 특성 등을 부여하거나 기대하는 방식을 뜻하며, 의복, 외모, 행동에 대한 기대치 역시 포함하므로 이들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패션 역시 젠더 위주로 작동되어 왔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기대가 고정불변이 아니라 문화, 규범, 역사적 시기에 따라 변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지금의 통념도 결국 반드시 확정적인 것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실로 남성복과 여성복이라는 단어는 각 성별에 허용되는 의복 선택의 폭을 좁혀왔다. 분명 문화적 차이가 존재하나 성별에 따라 구속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패션 산업은 젠더 이분법적 사고를 강화하고, 전통적인 성 역할을 따르지 않거나 기존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의복, 심지어 행동양식을 제한하는 역할을 도맡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정장은 오랫동안 남성과 연관되어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지금이야 여성들도 정장을 입을 수는 있지만 남성복과 여성복 사이의 경계는 같은 정장이라는 범주 내에서도 실루엣, 주머니, 마감 방식 등 디자인의 차이로 유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문성, 공적 활동의 상징인 정장이 동시에 남성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으면서, 남성복이 위 개념에서 벗어난 채 패션 디자인에서 다뤄지지 않는 결과마저 초래했다. 마치 여성복 디자인의 발전이 남편의 재정적 과시 혹은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수단 정도로 축소되었듯, 남성 패션에서는 정장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 혹은 활동을 위한 기능성 등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고려 사항들이 소외되는 일이 일어났다.


위와 같은 역사는 남성복과 여성복이 개인과 사회에게 유해한 젠더 고정관념을 부여하고 강화해, 마치 척결해야 할 악습처럼 보이게 만든다. 나아가 모든 젠더를 아우를 수 있는 패션은 '유해한' 젠더 고정관념과 패션 산업의 다양성, 포용성 결여를 만회할 수 있는 시도로 보인다. 하지만 패션은 꾸준히 남성복과 여성복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패션은 사악할까? 젠더 중립적 패션으로 개편하지 않는 학교와 기업은 시대의 흐름에 더디게 따라가고 있을까? 개인적으로 패션이 사악하다는 점에 일부 동의를 하고, IFM과 같은 급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비교해 보수적인 패션 산업이 아직 제대로 도입하지 않았다고 제기할 수도 있지만, 여전히 남성복과 여성복의 분리를 유지하고 있는 패션 스쿨과 기업들 모두가 그저 안일하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 분명함에도 왜 맨즈웨어와 우먼즈웨어는 여전히 공고할까? 도전과 관습을 모두 유지하고 있는 영국 런던의 왕립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의 MA Fashion 프로그램을 비추어보면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Royal College of Art


그들의 세부전공 중에 다소 낯선 개념인 Humanwear를 찾을 수 있다. 이 단어에 대한 이들의 태도는 아래와 같다.

Rejecting the binary conventions of gendered fashion at a time when the unlearning and dismantling of all oppressive societal structures is absolutely pertinent, Humanwear is a platform through which to think through what it means to be human. What are our values? What are the communities we design for? Crucially: how can fashion practice be an agent of change?

Text by Annie Mackinnon, 2021.rca.ac.uk


분명 RCA의 Humanwear 개념은 도전적이다. 패션 내에서 가장 강력한 기호號sign에 정면으로 맞서기 때문이다. Humanwear는 맨즈웨어와 우먼즈웨어로 양립된 패션을 거부하고 사람 중심적 디자인, 새로운 패션 디자인을 위한 초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맨즈웨어와 우먼즈웨어 역시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시도하는 이들조차 이분법적 접근을 버리지 못하는(혹은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젠더가 사회적 구속에 의해 종결된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 - 젠더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상정된 정체성이나 주체의 원천이 아니라, 시간에 의해 미묘하게 구성되는 정체성으로 양식화된 행위의 반복을 통해 외부 공간에 조직된 것 -처럼, 젠더가 고유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과 사회의 기대를 통해 조성된 연기performance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슨 웨어이든지 (mens-, womens-, human, sculpture-...) 결국 사람의 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    ) 웨어.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결정하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닌 착용자다. 이러한 관점에서, 젠더 포괄적인 패션은 남성과 여성을 아우르는 상위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대안, 범주로 자리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젠더를 포괄하는 패션이 실현 가능하긴 할까.


Gender is not a stable identity or locus of agency from which various acts proceed; rather, it is an identity tenuously constituted in time, instituted in an exterior space through a stylized repetition of acts.

Gender Trouble (1990). Judith Butler


왜냐하면 최근 중립적인 아이템이 보편화된 점은 분명하지만, 중립적인 착용이 가능한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정의하고, 자신의 성적 표현에 부합하는 옷을 입는다. 착용자의 성별을 설명하는 요소는 디자이너와 옷이 아닌 착용자의 착용 방식이다. 개인 한 명, 스튜디오 한 곳 정도는 성별에 제한받지 않고, 젠더로부터 자유로운 작업을 전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디자이너일지라도 디자이너는 착용자의 젠더를 규정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젠더가 옷에 부여할 수 있는 개념인지도 잘 모르겠다. 개개인의 착용을 고려한다면, 똑같은 두 벌의 옷이 각기 다른 젠더에 의해 어떻게 착용하는지가 달라지는지 생각해 본다면, 젠더 포괄적인 패션도 결국 착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오브제-옷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성별에 무관하게 누구나 입을 수 있을지라도 결국 착용하는 순간 옷의 성별은 결정된다. 모든 젠더를 아우르는 패션은 어쩌면 교육과 이론만이 다룰 수 있는, 실천 불가능한 개념은 아니었을까. 되려 젠더 중립 대신 포괄적인 맨즈웨어, 포용할 수 있는 우먼즈웨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개인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판단하고, 자신의 성적 표현에 맞는 옷을 입는다. 착용자의 성별을 설명하는 요소는 고정된 디자이너와 아이템이 아닌 시시각각 변화하는 착용자의 착용 방식이며, 입고 있는 옷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아닌 착용자다.


박무요

朴無要


instagram@parkmu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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