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무요 May 19. 2022

07. 뎀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Demna Gvasalia, CD of Balenciaga

1.
작금의 캐주얼웨어는 미래에 격식 있는 자리에서나 입는 옷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가 정말 미래라면, 몇 가지 특수한 상황들을 제외하고 나면 현실에서 옷을 차려입는 일이 아예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흐르던지 정장은 점점 자리를 잃을 것이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지금의 정장이 편한 복장이었던 시대도 있었다. 그 시대에 사람들은 그들의 옷을 시간과 상황에 맞추어 하루에도 수차례 갈아입어야 했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행위들을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더 이상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행병은 사람들이 셔츠를 다리는 행위조차 본인들의 삶에서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는 시간을 단축시켰다. 예측과 기대보다 빠르게, 사람들은 스웻 셔츠, 후드티와 함께 근무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결국 사회는 정장을 대부분의 영역에서 몰아낼 것이다. 그리고 대체할 것이다. 역시 다음 질문은, 무엇이 새로운 캐주얼이 될 것인가.



뎀나 바잘리아는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부활과 함께 앞서 이야기한 사회상을 담아내었다. "스트릿과 명품의 결합"이라는 문장보다 오트 쿠튀르에 등장한 후드티가 주는 이미지는 훨씬 직설적이다. 뎀나는 보란 듯이 아뜰리에조차 앞으로 만들게 될 옷들은 이런 부류라고 설명하는 듯하다. 뿐만 아니라, 이 오트 쿠튀르는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도 던진다. 오트 쿠튀르에 등장한 청바지와 후드티는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래서 우리의 기대에서 벗어났다.) 저 후드티를 과연 세탁기에 집어넣을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인 듯싶지만, 이미지만 놓고 보면 일상에서 거부감이 들지 않을 옷들이다. 심지어 실제로 길거리에서 저걸 입고 다녀도 문제가 없을 듯하고, 길에서 사진처럼 입은 사람을 보고 발렌시아가를 떠올릴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역시 발표와 동시에 인스타그램 계정은 이것이 오트 쿠튀르인가의 내용으로 분노와 조소가 뒤덮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성은 스트릿과 명품의 결합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제시할 수 있다. 거리 문화가 명품 브랜드에 편입되는 것과 명품, 그중에서도 쿠튀르가 거리로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르다. 가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절대적 위치의 누군가가 대다수 사람들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특이한 무언가를 디자인하고 지휘하는 엘리트주의적 패션 디자인을 파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 그리고 그 엘리트주의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 직접 실행에 옮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이미 후드티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나도 만들 수 있겠다와 같은 농담을 곁들였으리라. 사람들이 오트 쿠튀르가 주는 신비함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멧 갈라에 후드티가 등장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특권은 쉽게 파괴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러나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특권이다. 그는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이미 선봉에 섰다.


2.
반항은 뎀나 바잘리아가 베트멍부터 줄곧 유지해오고 있는, 그에게는 평생의 과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가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는 정신이다. 이케아, DHL, 포트나이트, 심슨 등 그가 함께하고 선보이고 있는 요소들은 꾸준히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하이패션과 괴리가 상당하다. 그는 지속적으로 하위문화적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차용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패션 업계에서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럭셔리 하우스들에게 이들을 주입시켜왔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은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즐거움만 줄 뿐, 휘발성이 강한 이슈 정도로 그쳐 베트멍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신선함은 더 이상 유지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순간마다 이미지만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메시지를 계속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지루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품 업계가 거리 문화를 대대적으로 수용함과 동시에 맞물리며 일어난 그의 시도들은 사실 그렇게 순간의 반짝임으로 위장하여 자신의 급진성과 정치적 메시지를 성공적으로 숨겨왔다고도 볼 수 있다.

뎀나 바잘리아의 디자인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메시지가 언어로만 전달되었다면 그는 이미 숱한 논란에 휩싸여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여전히 건재하고, 주류는 그의 시도들을 하나의 이벤트 정도로만 소비할 뿐 위협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뎀나는 자신의 미학을 구축했다. 더 이상 하위문화는 하위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그들은 명품의 파트너이자, 하이패션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다만 이 현상도 위험성 내지 한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흐름이 탈중앙화로 이끌지, 단순한 이분법으로 주류를 양분화하는데 그칠지는 조금 더 지켜볼 문제가 아닐까. 기존 명품 업계가 가격과 그들의 역사를 활용해 접근성의 벽을 높였듯이, 명품과 결합한 하위문화적 요소들이 단지 이미지만 소비한 채 전통적인 명품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기존의 패션 미감에 일부러 트집을 잡는 듯한 반항적 패션은 모두 일종의 안정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일종’이라고 말한 이유는 개인은 위태로울 수 있더라도 적어도 사회의 기반 시스템은 단단하고 안전해 보인다는 믿음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 박세진 / fashionboop
출처: https://www.fashionboop.com/2256 [fashionboop]


3.
역시 요즘 세상의 패션에서 중요한 것은 옷이 아닌 모양이다.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옷보다는 이름, 소재보다는 이야기를 중요시 여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름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등을 찾아다니지 옷의 만듦새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만듦새는 옷 그 자체를 좋아하거나, 옷을 만들고 있는 사람의 문제일 뿐,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논외다. 과정이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이든 간에, 저렴한 옷들도 생산 과정에서 어느 정도 균일한 품질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에 특수한 목적을 가지는 옷이 아닌 이상 만듦새 따위를 따지고 있는 것이 과연 합리적 인지도 의문이다. 2022FW 발렌시아가도 역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잘 이용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https://youtu.be/NTXbCdS5hdY

Balenciaga Winter 22 Collection

'Ukraine' 정도만 겨우 또렷하게 들리는 내레이션이 나오고, 자막은 제공되지 않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의 무지를 탓하면서도 동시에 영어 자막 정도는 제공해줄 수 있지 않나 싶었지만, 그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정확한 이해 역시 불가하다. 생각해보면 뉴스로만 우크라이나 소식을 접하고 있는 지금의 나와 무엇이 다른가. 쇼가 시작되고, 우리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는 무대에 모델들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바라본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눈보라 속에 있으면 앞은 제대로 보일까 싶을 정도로 위태로운 배경이다. 사람들은 안전한 유리 칸막이 뒤에서 이를 '감상'하고 있다. 런웨이 바닥에 물을 채워놓은 바람에 앞에 앉은 사람들은 꼼짝없이 튀어 오르는 물을 맞아야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눈보라가 무슨 대수인가 싶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역시 그렇게 구분을 해야 현실에 가깝다. 유리 뒤에서 눈보라를 헤집고 걸어 다니는 모델들을 감상하고 있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액정으로만 보고 있는 현실과 무엇이 다른가. 당연히 모델들이 입고 있는 옷은 좋은 소재와 만듦새요, 아름다운 옷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저 무대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것들 따위 눈보라 앞에서는 모두 바람에 휘날려 펄럭거리기만 하는 천에 불과하고, 모델들은 비틀거리며 자신의 임무를 다할 뿐이다.


뎀나는 자신의 메시지와 현실을 이번 쇼를 통해 은유적으로 잘 그려내는가 싶더니, 피날레를 우크라이나 국기로 장식하면서 결국 그는 직접 소리를 지르기로 결정했다. 모델들이 한 번에 걸어오는 전통적인 방식의 피날레도 선보이지 않는다. 역시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준비한 옷을 모두 선보였지만 지나간 옷과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눈보라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눈보라뿐이듯, 변하지 않는 것은 현실뿐이다.


The war in Ukraine has triggered the pain of a past trauma I have carried in my home country and I became a forever refugee. (…) Because in a time like this, fashion loses its relevance and its actual right to exist. Fashion week feels like some kind of an absurdity. - Demna


2022FW 컬렉션에서 등장한 후드 티셔츠 - Be different가 적힌 문구와 베어 물지 않은 사과 - 에서 보이듯, 뎀나는 Think different에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달라질 것을 요구한다. 과연 패션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 06. 수행의 마지막은 감상이 아닐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