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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 조이 Oct 07. 2020

개인의 일탈? 조직적 범죄?

프로젝트 물수제비 1탄: 5화 직장 내 성희롱과 2차 피해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 '직장 내 성희롱'.

단 한 명도 빠짐 없이 성희롱 경험을 토로할 정도로 직장 내 성희롱은 그렇게 퍼져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 케이스도 있었지만 정말 충격적인 케이스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 중에 나는 수진 선배 (가명)의 사례를 이번 글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미투'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던 2018년. ‘여직원 골프대회’로 언론의 뭇매를 맞은 모 금융기업은 이런 '미투' 논란에도 보란듯이 또 한 번 여직원 골프대회를 진행하였다. 이 금융기업은 ‘여직원 골프대회’ 뿐만 아니라 ‘여직원 장기자랑’ 등의 행사를 매년 개최하여 여직원들을 차출하여 지정곡에 맞춰 춤연습을 시키고 의상도 정해주었다. 이 기업에 근무하는 수진 선배는, 업무에 있어서는 항상 당당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크러쉬’이지만 이런 성 관련 문제에 있어서 회사의 부당함에는 겁이 나고 쉽게 나서기 두렵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서 직장 내 성희롱의 피해 여성이 오히려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2차 피해를 보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봤어. 그래서 그런지 성 관련 이슈에 있어서는 정말 위축되고 두렵더라.

이런 내 자신이 정말 싫은데, 골프대회나 장기자랑을 다녀온 여성 직원들을 조롱하는 남성 직원들을 보니까 부들부들 떨리지만 정작 입을 뗄 수가 없더라. 마치 성공을 위해서 성을 파는 여성으로 취급하고…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에 대해서 공감하려는 젠더 감수성이 전혀 없어.

다른 금융권에 근무하는 내 친구는 상사의 성폭력을 내부 고발했다가 '잘 나가는 남자 앞길 막는 야심 가득찬 X'로 몰려서 혼자 회사를 떠나야 했어. 오랜 시간 투쟁하고 싸웠는데 상처만 남기고,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기 무서울 정도라고 하더라.

그런 일들을 내 눈으로 보았는데 내가 어떻게…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내 신념과 현실의 괴리를 지금은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

망연자실 해하는 수진 선배를 보며, 과연 내가 선배의 입장이라도 홀로 이 싸움을 시작할 용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경험한 성희롱이 개인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한 일탈이라고 한다면, 수진 선배는 회사가 조직적으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우리 국민들은 영화를 통해 소위 '엘리트', '사회지도층'인 법조인과 정치인들이 술자리에서 비싼 위스키를 마시며 옆에는 항상 젊은 여성을 끼고 작당 모의를 하는 장면에 매우 익숙해진 듯 하다. 그래서일까. 정치계의 '미투'에 대한 국민적 반응은 문화계의 '미투'에 대한 그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웠다(?).


안희정 전 지사가 성폭력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일년. 최근 JTBC 뉴스룸에서는 피해자인 김지은 씨 측의 증인으로 섰던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 조명하였는데, 그 결과는 공포 그 자체였다.

어떤 증인은 여당의 유력 당대표 주자의 캠프에 들어갔지만, "항의가 심하니 숨어 있으라"는 말을 들은 뒤에 물러나야 했고, 또 다른 증인은 결국 한국을 떠났다.

법적 판단이 내려졌지만 오히려 피해자와 증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정치적 2차 피해.

JTBC 뉴스룸 중 (2020.08.31)
피해자 도와준 사람들은
낙인이 찍혀가지고 찍어내고.

가해자 도와준 사람들은
그래도 쟤네는 배신은 안 해 이러면서
계속 영전을 하고…

(인터뷰 내용 중에서, 전체 기사를 보고 싶으시면 클릭)


가해자를 도운 사람들은 신의가 깊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 본인의 눈을 가리는 행동을 한 것일 뿐, 그 어떤 것으로도 포장될 수 없다. 입법, 사법, 행정권을 휘두루는 분들의 세계에서도 이런데 어떻게 성희롱이 근절될 수 있을까...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뿐만 아니라 피해자를 도운 증인들 (증인에 대한 비밀 보장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에게도 피해가 간다면 우리사회의 정의는 어떻게 바로 설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기업 S그룹은 성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 (Zero Tolerance)’을 고수하고 있다. 끊임없이 교육을 진행하고, 그 유명한 ‘119 (1 종류의 술로 1차만 9시까지)’와 같은 내부 규칙과 시스템을 만들어 내서 성 관련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예를 들어 ‘이성끼리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도 절대 택시를 같이 타서는 안 된다, 술자리에서는 이성간 절대 서로 터치를 해도 안 되며 반드시 몇 미터 거리를 유지하고 이름을 불러라.’와 같은 것들이다.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 해도 성 관련 문제는 100% 근절되지는 않는다고 하니, 그들이 왜 이런 노력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나는 인간을 성선설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그렇기 때문에 법이나 체제로 인간 행동을 규제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 없고 결국 교육을 통한 인식 개선과 사회문화의 진화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작금의 성 문제는 행동 하나 하나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강력한 처벌이 존재해야지만 현저한 현실 개선 및 인식 개선을 가져오는가 하는 의문을 내게 던진다.

성에 대한 고착화된 관념과 문화를 어떻게 하면 다 같이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변화해 나갈 수 있을까…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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