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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독날 Oct 05. 2022

음주 단속 말고 배출가스 단속

○○○ 공무원이 하는 일

오수, 가축분뇨, 수질오염, 대기오염, 소음진동, 미세먼지, 악취, 토양오염, 폐기물, 공중화장실, 야생동물, 기후변화, 온실가스... 기타 법적인 테두리 안에 있지 않은 모든 민원은 환경민원?



출처 : 큰 꿈을 가진 작은 공무원



의원면직 후 같이 일하던 주사님께서 보내주신 영상이다.

이거 보고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만든 사람 최고!라고 연신 외쳤다.

각자 맡은 일 열심히 하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국에 있는 모든 환경직 공무원을 정말 존경한다.



뭐하나 쉬운 일은 정말 하나도 없다.

출장나가면 민원인과의 마찰로, 사무실에서는 관련법 협의로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오수 업무를 하다 보면 대기 업무를 하고 싶고, 대기 업무를 하다 보면 토양 업무를 하고 싶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

이래저래 바꿔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을.

알면서도 왜 그랬을까? 그나마 업무시간에 일이 끝나면 천만다행이다.

민원이 거세지 않고 적어도 야간이나 주말에는 쉴 수 있는 업무를 하고 싶을 뿐이었으니까.




운행차 배출가스 특별단속기간

미세먼지의 주범 경유차 매연.

환경부의 지침이 내려온다. 운행차 배출가스 집중단속기간.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미세먼지 배출비중이 높은 화물차, 도심 내 이동이 잦은 버스 및 학원차가 집중 단속 대상이다.  



"애들아, 내일 배출가스 단속할 거니까 늦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환경부서에 공익이 5명이다. 출장 업무에 참 많은 도움이 된다. 녀석들 근데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고 나를 얕잡아 본다. 속상하다. 어쩔 수 없다. 어르고 달래서 무사히 배출가스 단속을 마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오늘 단속 장소는 트럭이 많이 다니는 공단 내 도로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위반 차량을 많이 적발할 수 있는 곳.

준비물은 라바콘, 빨간봉, 매연측정기기



출처 : 안전샵, 세이프툴




배출가스 단속 현장

출근하자마자 서둘러 단속 장비를 챙겨 공익들과 단속 장소에 도착한다.

가장자리 차선에 라바콘을 일정 간격으로 세우고 한 명씩 빨간봉을 손에 집어 들었다.

운행차 배출가스 수시점검을 알리는 표지판을 세우고,

마지막으로 호루라기 불 준비까지 마쳤다.



입이 마르고 목이 탄다. 긴장감이 흐른다. 조용한 도로에 시끄러운 차 소리만 들리고 또 들린다.

내 목에는 공무원증과 볼펜이 매달려있고, [별지 제3호서식] 위반확인서와, [별지 제6호서식] 자동차배출가스검사안내문이 손에 꼭 쥐어져 있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안전사고는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된다. 떨린다. 빨리 하고 접자.



저 멀리서 털털털,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우회전해 들어오는 1톤 포터가 보인다.



"얘들아, 불어! 저 파란 트럭 잡자!"



호루라기를 불며 빨간봉으로 정차를 유도하는 공익들에게 인상부터 쓰는 운전자 아저씨.

난데없는 배출가스 단속에 걸리신 거다.

생계를 위해 바쁘게 달리는 차를 우리는 그렇게 억지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단속 상황을 안내하고 차량등록증, 운전면허증을 확인한 뒤, 잠시 내리시라는 말씀에 순순히 응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경유차 매연 농도 배출허용기준 초과

공익은 운전석에 올라타 기어를 P에 놓은 후, 배기관 내에 축적되어 있는 매연을 배출시킨다.

광투과식 매연측정기의 시료채취관을 배기관에 삽입한 후, 무부하급가속방식으로 매연 농도를 측정한다.



그동안 나는 운전자에게 단속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법적 기준 농도를 초과해도 문제, 초과 못해도 문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이 항상 힘들었다.

공무원 신분으로서 매연단속을 통해 노후 경유차량의 배출가스 점검을 유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미세먼지 발생을 줄여 대기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고 의무이다.



하지만 어디 미세먼지의 주범이 생계형 노후 트럭을 바쁘게 운전하는 아저씨뿐일까?

화력발전소, 엄청난 양의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고 있는 대기업의 책임이 훨씬 더 큰 게 아닌가?

난 그저 보잘것없는 지방 환경직 공무원이라 환경부에서 시키는 대로 지나가는 트럭의 매연단속만 야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 참 서글펐다.



단속에 걸린 아까 그 아저씨는 위반확인서에 사인을 하고 자동차배출가스검사안내문에따라 개선명령을 이행해야 한다. 트럭이 곧 일터인 아저씨는 바쁜 와중에 정비소에 들러서 구청 매연 단속에 재수 없게 걸린 위반확인서를 보여주며 배출가스 관련 부품을 정비 후 다시 매연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단돈 몇만 원이 그렇게 날아갈 것이다.




고생 많았어! 오늘 배출가스 단속 끝!

이렇게 하는 것이 미세먼지 절감에 정말 큰 효과가 있을까? 라며 쓸데없는 생각으로 혼자 머리만 복잡하다.

난 너무 깊게 생각해서 탈이다. 그냥 법적인 사항대로 잘했을 뿐인데...

하지만 세상의 모든 법이 현실과 맞지 않는 것도 너무 많지 않은가.



오늘의 단속 대수를 겨우겨우 채우고 표지판을 걷고, 라바콘을 겹겹이 쌓아 트렁크에 정리한다.

얼굴과 콧속, 팔, 손이 온통 새카맣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로 칼칼했던 목을 깨끗이 씻어버리고 싶다.


환경을 위해 하루 종일 도로 위에서 매연냄새와 싸우고, 트럭이 곧 일터인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들과 한바탕 할수록 내 마음은 '환경을 위해 일했다'라기보다 '법을 위한 일을 했다'라는 찝찝함이 여전히 남아있다.


이게 진정 환경을 위하는 일이 맞는 건지... 그냥 나 혼자 생각해보고 만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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