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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Jul 29. 2022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혼자서 뉴욕 여행하기 4일 차(후반부)

"The city never sleeps, better slip you an ambien"

"이 도시는 잠들지 않아, 수면제 하나 먹는 게 좋을걸"


Jay-Z가 부른 Empire state of mind라는 유명한 노래 가사의 일부이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미국의 밤은 상당히 조용하고 위험한 편이다. 미국의 밤거리를 밖에서 거닌다는 건 한국과는 천양지차이다. CCTV도 주변에 많지 않고, 조명이 없는 곳도 많아 위험을 자처하는 꼴이다. 그런 탓에 미국에 온 이후로 나는 한국에서와 같이 온갖 간판과 네온사인으로 메워지고 인파가 들끓는 요란한 밤거리를 누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뉴욕 맨해튼의 밤거리는 미국의 전형적인 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으슥하고 인적이 드문 곳은 위험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하는 큰 도로들에는 항상 불이 켜져 있었고, 곳곳에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고, 나의 뉴욕 여행 일정에는 여태까지 잊지 못할 야간행군이 잡혔다.




뉴욕의 밤거리를 한껏 느끼겠다는 즉흥적인 생각에서 시작된 내 행진의 시작점은 Dumbo(덤보)였다.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Dumbo, 두 벽돌 건물 사이로 Manhattan Bridge가 보인다.

브루클린은 뉴욕에서 가장 위험한 동네로 알려져 있어 Dumbo 말고는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사실 Dumbo 덕분에 브루클린을 스쳐 지나가기라도 했다. 내가 나온 사진을 꼭 담겠다는 굳은 의지 덕분에 제대로 된 사진 몇 장을 건지는 데 성공했다. 사진 명소라는 것 외에는 딱히 볼 것이 없던 곳이라 긴 여정을 앞두고 저녁 한 끼 하기 위해 한 피자 레스토랑을 찾았다. 


피자 레스토랑의 이름은 Front Street Pizza, 허름해 보였지만 평점 4.4점에 리뷰 1,300개에 빛나는 곳이라 믿고 들어갔다. 상당히 배가 고팠던지라 0.1초의 망설임 끝에 Whole pizza pie를 주문했고,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앞자리에 4명이서 한판을 나눠먹던 미국인 일행이 나를 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우며 그들이 나눠먹던 피자 한판을 혼자 클리어한 나를 경이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배고픈데 한 조각을 주문할 수는 없어서 한판을 주문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강을 건너기 위해 향한 곳은 Brooklyn Bridge 였다. 바로 옆에 Manhattan Bridge도 있지만, 유독 Brooklyn Bridge가 유명하고 멋진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바로 단조로운 철골 구조물이 아니라 다리 기둥 부분이 벽돌로 되어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1883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세계 최초의 철제 교각이라고 한다. 

철제 교각이지만 바닥 부분의 나무데크와 기둥 부분의 벽돌 구조물 덕분에 전형적인 철제 교각의 단조로움을 피했다고 생각한다.

Manhattan 방향으로 향하는 발걸음 아래 놓인 Brooklyn Bridge는 나를 노을이 지는 뉴욕의 스카이라인 쪽으로 인도하였고, 그 절경에 나는 매료되고 말았다. 1883년부터 한결같이 이 자리에 있는 Brooklyn Bridge는 이 아름다운 노을이 오늘날에 오기까지 변해가는 과정을 묵묵히 보아왔을 것이다.

 노을을 뒤로한 채 밤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월가의 건물들
월가에서 지고 있는 노을, 지는 순간까지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Brooklyn Bridge를 지나서 도착한 곳은 월가 한복판, 이미 내 다리는 오전부터 계속된 여행에 지쳐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내 두 눈은 이 소중한 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담고 싶어 했다. 계속해서 GR3와 아이폰의 셔터를 눌러대며 나는 무쇠의 뿔처럼 혼자서 갔다. 



월가에서 조금 더 걸어서 도착한 곳은 China town(차이나타운)이었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뭔가 시끌벅적하고 붐빌 것을 예상했지만, 인파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내가 이상한 도로로 들어온 건가 싶어서 계속 지도를 보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곳이 가장 큰 도로였댜. 그 흔한 대마 냄새조차도 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 냄새만이 사방을 채우고 있었다. 오늘이 중국의 휴일이라 이런 건 아닐까 하는 마지막 추측을 세운 채 그곳을 황급히 떠났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왜일까?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Little Italy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촌이었다. 입구부터 허공에 걸린 "Welcome to Little Italy"라는 문구가 반갑게 여행객들을 맞고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서 자리 하나씩 잡고 술을 마시고 있었고, 혼자 외로운 여행을 하고 있는 나에게도 그들의 넘치는 행복과 온기가 조금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곳곳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었고, 건물 사이사이에 수 놓인 조명이 이 거리의 밤을 더욱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었다. 

Little Italy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초입부터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혼자서 여행하다 보면 가끔 이들 속에 섞여서 동화되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술을 적당히 즐기는 나에게 혼자서 이런 음식점이나 펍에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상당한 단점 중 하나이다. 한국이나 학교 인근에서는 혼자서도 잘 먹고 잘 마셨는데, 이렇게 텐션이 높은 곳에서는 혼자서 밥 먹는 것이 되려 불편해지기까지 하는 걸 느꼈다. 혼밥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나중에 일행과 함께 다시 찾고 싶은 Little Italy 였다. 




Little Italy를 지나 Nolita(North of Little Italy의 줄임말)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니 이제는 제법 어둑어둑 해졌다. 하지만 잠들지 않는 이 도시는 어둠과 함께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Macy's 였다. 낮에는 예쁜 백화점 건물이었는데, 밤이 되니 건물에 조명이 비추고 간판에도 LED가 들어온 모습이 사뭇 달라 보였다.  

밤이 되니 조명이 켜진 Macy's 백화점 아름다운 건 어느 나라나 공통적인 모습인가 보다.




Macy's를 지나서 더 올라가다 보면 대망의 Time Square(타임스퀘어)가 나온다. 타임스퀘어는 낮보다 밤에 본모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곳 중 하나이다. 해가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타임스퀘어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낮에도 켜져 있던 전광판들은 밤이 되면 더욱 신난 듯이 광고를 송출한다. 

온갖 인간 군상이 모여있는 타임스퀘어, 야경은 더할 나위 없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앉아 쉬면서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게 안으로 끌어드리려는 간판들과 상인들, 그 인파 속에서도 구경거리를 만들어 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 이러한 혼돈의 도가니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노려서 사진을 찍어주고 푼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대마를 팔아 푼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자유를 염려스러운 듯이 쳐다보는 경찰들, 이러한 인간 군상이 모두 모여 어우러진 Time square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목적을 달성해야 하고, 그렇게 할 자유가 용인되는 이 나라의 특색이 돋보이는 곳이다.




Time square를 지나 Broadway를 타고 대각선 방향으로 쭉 걸어 올라가다 보면 Central Park(센트럴 파크)가 나온다. 밤의 센트럴파크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없었다. 낮과는 달리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했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다가 갑자기 적막한 곳으로 이동하니 살짝 두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사람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공원 안쪽에는 경찰도 순찰을 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그러게 뭐하러 이런 위험땨위를 감수했던 것이냐!!!)

야밤의 센트럴파크는 가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적막하다.




센트럴파크를 관통하여 쭉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 숙소에 거의 도착했다. 발엔 이미 물집이 잡혀버렸고, 무릎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다가 이젠 자지러져버린 듯했고, 주인을 잘못 만난 허리뼈가 고생을 하고 있었다. 숙소 인근에서는 한 그라피티 아티스트가 벽에다가 열심히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정식으로 돈 받고 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작업하며 예술혼을 불태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뭔가 대충 그리는 것 같은데 터치 한번 할 때마다 작품이 되어가는 것이 신기했다.


긴긴 여정 끝에 결국 13km가 넘는 거리를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하러 가서 뭔 고생이냐고 들 할만한 엉뚱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걷는 그 순간의 나는 행복했다. 분명 다리와 허리에서 고통은 느껴졌고, 열대야 때문에 갈증이 계속되었지만, 찬란한 뉴욕의 밤을 한껏 느끼고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하고 싶었다. 걸을 때마다 뉴욕의 새로운 모습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것을 마주하는 건 내게 큰 기쁨이었고, 나를 계속 걷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최단거리가 13km에 달한다. 센트럴파크도 좀 더 누볐으니 이보다 더 걸었을 것이다.




고단한 몸을 달래고자 맥주 몇 캔을 사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의 맥주 맛은 뉴욕에서 보낸 어느 날보다 시원하고 청량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나만의 엉뚱한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과, 이를 얻기위해 지쳐버린 육신은 나를 엔돌핀에 취한 채 잠들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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