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cellaneous Jul 14. 2022

그들의 분노와 슬픔에 공감했다

혼자서 뉴욕 여행하기 4일 차(전반부)

벌써 뉴욕에 온지도 3일이 지났다. 이제는 숙소도 익숙해져서 자고 일어나도 새롭지가 않다. 2일 차까지 구름 끼고 비가 오더니, 3일 차부터는 날씨가 개기 시작하여 4일 차부터는 이제 덥기까지 했다. 오늘은 다닐 곳이 많아서 하루 종일 걸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Panda express에서 Bigger Plate로 든든한 아점을 먹었다. 늘 먹듯이 Chowmein과 Rice를 반씩 넣고, Orange chicken과 Beijing beef를 Entree로 선택했다. 칼로리와 맛은 비례하는 법.


가장 먼저 간 곳은 Guggenheim museum(구겐하임 미술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특징이라면 나선형으로 말려 올라간 건물의 형상을 들 수 있겠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현대미술 작품인 곳이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외부에서 찍은 모습이다. 마치 종이를 길게 오려서 나선형으로 말아 올려놓은 것 같다.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의 모습, 범상치 않은 건물 외부에 걸맞는 실내전경이 펼쳐진다.

미술관이 입구부터 뱅글뱅글 돌면서 말아 올려져 있는 모양이다 보니, 계단 없이 계속해서 오르막길을 오르며 전시를 관람하는 모습이 되었다. 때마침 갔을 때에는 러시아의 추상미술작가로 유명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칸딘스키는 추상화만 그린 작가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초기 작품들은 마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추상화와는 거리가 먼듯한 느낌이었다. 한 인물의 또 다른 면모를 보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밖에도 고흐, 피카소, 세잔, 르누아르, 드가, 마네, 모네 등등의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도 군데군데 아무렇지 않게 전시되어 있었다. 앞선 일정에서 MoMA와 Metropolitan Museum에서도 훌륭한 작품들을 한 번에 보고 와서인지 이제는 그들의 작품들을 한 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놀랍기보다는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배때지가 불렀구나). 구겐하임 미술관은 규모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어서, 비교적 빠른 시간(3시간) 내에 만족스러운 감상을 하고 나올 수 있었다. 




다음 목적지는 Wall street에 위치한 The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Museum (9/11 테러 기념관)이었다. 사실 미디어에 많이 노출된 것은 기념관보다는 두 무역센터가 위치해 있던 자리, 바로 Ground zero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미국인들의 눈물을 상징하는 의미에서 조성한 폭포 연못인 9/11 Memorial Pools 일 것이다. 다른 미술관을 갈 때도 줄을 안 섰는데, 여기는 입구가 아닌 매표소에서부터 줄을 서게 되었다. 이날 희생된 자들의 유가족들은 이곳에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입구에서는 마치 공항 보안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의 철저한 출입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보였다.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는 미국인들의 눈물을 상징하는 Memorial pools가 자리하고 있다. 동판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척 보면 공항 보안검색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만큼 어떠한 박물관, 미술관보다도 삼엄한 출입절차가 진행된다.

이 기념관은 테러가 발생한 2001년 9월 11일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는 2011년 9월 11일에 개장하였다. 기념관이 지어진 장소는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인 1번, 2번 건물 사이이며, 땅 밑에 아직 남아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의 지하구조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마치 기념관의 일부처럼 스며들어 있었다. 각각의 구조물들에는 당시에 적용되었던 토목공학적 원리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다소 낯설고 해괴해 보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기념관 지하의 한쪽 벽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거대하면서도 괴상한 구조물은 세계무역센터를 건축할 때 사용한 Slurry wall이라는 이름의 지하 토류벽이다.
비행기 충돌지점에 있던 세계무역센터의 철골 구조물이다. 그토록 강한 건설자재가 휘어지다 못해 찢어져 버렸다.
지면 인근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의 기반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 위에 세계무역센터가 솟아 있었던 것이다. 그날 전까지


무심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는데, 세련된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처참히 파괴된 계단이 있었고, 알고 보니 그 계단은 테러 이후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버티며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던 탈출로였다. 이 계단을 비롯해서 그날을 기억하게 하는 수많은 잔해들이 그날의 아픔을 안은채 정지된 시간 속에서 방문객들의 앞에 놓여있었다.

이 계단이라도 남아있던 덕에 그나마 수많은 생존자들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구조작업에 동원되었다가 완파된 소방차(왼쪽), 추락한 엘리베이터 구동모터(중앙), 꼭대기에 있던 안테나(오른쪽)

주 기념관 바깥에는 이렇듯 다양한 구조물과 잔해, 그리고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기념관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이 기념관이 방문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주 기념관에 들어가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주 기념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희생자들을 기리며, 이 비극을 단순한 구경거리로 두지 않겠다는 의미에서인지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테러 전후로 같은 시각 하늘과 땅에서 각각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2개의 큰 타임라인이 벽에 붙어있었고, 각종 미디어에서 타임라인 위 특정한 시간에서의 상황을 생중계한 자료, 그리고 핸드폰 카메라의 보급이 지금처럼 보편화돼있지 않던 시절이라 몇 남아있지 않아 처음 보기도 하는 희귀한 영상 기록물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수업 참관 중 비서관으로부터 테러 사실을 보고받은 부시 대통령, 이 때는 이미 2번째 비행기가 다른 건물에 충돌한 이후였다.

첫 번째로 인상 깊었던 기념물에서는, 수많은 희생자들의 사진과 그들의 프로파일이 같이 띄워지며, 이와 동시에 떠나간 그들을 회상하는 유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의 회고록이 인터뷰 녹음파일로 흘러나왔다. 많은 방문객들이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밀려오는 슬픔의 파도를 이기지 못한 채 주저앉아 동행자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고개를 차마 들지 못하기도 했다. 이들을 위해 곳곳에는 눈물을 닦기 위한 티슈가 구비되어 있기도 했다.


제 1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이 있었으나, 제 2 세계무역센터는 안전하니 다들 대피하지 말고 건물에 대기하기 바랍니다.


실제로 제 2 세계무역센터 내부에서 흘러나왔던 안내이다. 첫번째 충돌 직후에는 또다른 충돌이 있을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단순한 사고로 생각한 부분도 있어 어찌보면 시민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제 2 세계무역센터에도 비행기가 충돌하였고, 시간이 있었음에도 대피하지 않은 탓에 사망자가 더 늘어나고 말았다. 


두 번째로 인상 깊었던 기념물에서는, 당시 구조작업에 뛰어든 소방관들의 무전 내용이 시간 순서대로 흘러나오며, 무전을 보낸 소방대원들의 위치가 건물에 표시되었다. 그들의 위치는 당시에 비행기의 충돌지점 인근이었으며, 두 건물 모두가 붕괴했으므로, 영상의 시작과 동시에 그들은 결국 모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무전 내용은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고, 건물이 결국 붕괴될 거라는 잔혹한 미래는 모른 채 그저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사명감만으로 죽는 그 순간까지도 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것을 방문객들에게 각인시켜주었다.


나는 살려고 아래로 대피하는데, 그들(소방관)은 죽음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이밖에도 일반적인 화재나 건물 붕괴에서는 목격될 수 없는 비행기의 랜딩기어, 비행기용 안전벨트 등이 발견 당시의 사진과 함께 보존되어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아스팔트 한복판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비행기 바퀴의 사진은 충격적이면서도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실 당시에는 4대의 여객기가 납치되었다. 2대는 세계무역센터, 1대는 펜타곤에 충돌하였으며, 백악관으로 갈 예정이었던 1대는 승객들의 저항 끝에 지면에 추락했다.

전시의 마지막은 알 카에다가 2000년 1월부터 알 카에다 소속의 테러리스트 19명을 순차적으로 미국에 입국시키며, 비행훈련과 공항 답사 등등 철저한 계획을 세운 끝에 4대의 항공기를 하이재킹 하여 테러를 계획대로 감행한 내용을 시간 순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Pentagon이라고 불리는 미 국방성 건물에 비행기가 충돌한 사실은 모르거나 세계무역센터 붕괴와는 별개의 사건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모두 같은 날에 벌어진 같은 사건의 조각들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머지 1대는 승객들이 테러리스트를 저지하는 데에 성공하여 당시 표적이었을 걸로 추정되는 백악관이나 국회의사당에 충돌하는 대신 펜실베이니아 주의 벌판에 추락했다. 물론 그 1대에 탑승했던 승객과 승무원도 전원 사망하였다.


첫 번째 충돌로 모든 이들과 미디어의 이목을 집중시킨 가운데, 보란 듯이 두 번째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효과적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공포심을 선사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진정 최악의 테러였다. 그들의 실체와 영향력을 입증하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를 테러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사건이었다. 이 테러로 인해 총 2,977명이 사망하였으며 이 숫자는 테러범 19명은 제외한 숫자이다.

테러가 일어났던 2001년 9월 11일 아침의 하늘 색깔을 기억하면서, 희생자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를 전한다.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나 역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영상에서 보이는 뉴요커들의 절규, 좌절, 슬픔, 분노에 더욱 가슴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내가 앞선 3일 동안 뉴욕을 거닐며 이곳저곳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화려하고 자유롭고 북적이는 자본주의 성지의 상징과도 같은 랜드마크에 비행기가 충돌하고 무너져 내리다니. 20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믿기지가 않는데, 당시의 뉴요커들이 느꼈을 감정은 어떠했을까?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꿈과 자유의 도시였고, 누군가에게는 화려한 여행지였던 이 뉴욕에게 남겨진 상처가 미국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다가왔을지 조금이나마 눈물과 함께 짐작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기념관을 나와서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원래 세계무역센터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건물 중 하나인 Oculus(오큘러스)에 갔다. 내부는 사실 지하철 역과 연결되는 쇼핑몰인데, 건물의 디자인이 상당히 특이했다. 마치 거대한 척추동물의 시체에서 뼈대만 남은 모습을 보는 듯했다.

오큘러스의 내부, 마치 거대한 갈비뼈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큘러스의 내부, 다양한 브랜드들이 입점한 쇼핑몰이며, 모든 지하철 노선으로 통할 수 있는 환승센터이기도 하다.


오큘러스의 한쪽 복도를 걷다 보니, 어떤 영화에서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역시나! 바로 존 윅 2의 촬영지였던 것이다. 영화에서 존 윅이 킬러의 추적을 피하면서 지하철에 탑승하는 장면이 있다. 물론 영화의 설정 탓이지만, 주변 사람들이 유유히 지나가는 가운데 소음권총으로 몰래몰래 총을 발사하며 걸어가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다. 아무리 재미를 위한 설정이라지만 존 윅 팬들마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여 비난을 받았던 그 장면을 찍은 곳이 바로 이 오큘러스이다.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서 기억에 선명히 남은 탓에 촬영지에 와서도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나는 저 킬러가 존 윅을 내려다보며 총을 쏘는 2층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오큘러스에서 뜻밖의 적중에 희열을 느끼고, 다음 목적지인 One World Trade Center의 전망대로 이동했다. 건물은 오큘러스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5분 만에 걸어갈 수 있었다. 첨탑 높이까지 더하여 총 541m에 달하는 이 건물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하다. 줄여서는 1 WTC라고 부르며, 별칭은 Freedom Tower라고 한다.

오큘러스와 그 옆에 위치한 One World Trade Center. 크고 아름답다.
하늘로 높게 솟아 있으면서도 마치 하늘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모습이다. 정말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표현이 걸맞다.
반대쪽에서는 Brooklyn bridge와 Manhattan bridge의 모습도 보인다.
월가의 높은 빌딩들을 내려다보다니,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의 초석을 닦은 애덤 스미스가 이걸 봤어야 한다.

워낙 엘리베이터의 속도가 빨라서인지, 전망대까지는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뉴욕은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땅에서 높은 건물들을 올려다보기만 하다가, 그 높은 건물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그것들을 내려다보니 마치 신이 된듯한 기분이었다. 완벽한 날씨가 아름다운 스카이뷰에 화룡점정을 이뤘다. 차마 내려가기가 너무나도 아쉬워서 전망대에서 발이 묶인 채 2시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있었던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고 아무리 사진을 찍어보아도 그 광활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기만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배고픔이 나를 1층으로 내려보냈다.




9/11 테러라는 참담한 비극을 겪어내고도 이렇게 보란 듯이 아픔을 딛고 성장하여 자국의 건재함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모습에서 미국의 국력에 감탄할 수 있었던 만족스러운 여정이었다. 2001년 9월 11일, 당시 천진난만한 초등학생 1학년이었던 나에게 별다른 의미로 와닿지 않았던 이 사건은 20년의 세월이 지나 드디어 내 가슴 깊이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브루클린에서 맨해튼 북부에 위치한 숙소까지 13km에 달하는 뉴욕의 밤거리를 걸으며 야경을 즐겼던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강에서 뺨맞고 월가에서 눈흘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