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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Jun 17. 2022

한강에서 뺨맞고 월가에서 눈흘기기

혼자서 뉴욕 여행하기 3일 차

고된 이틀을 보내고, 벌써 3일 차의 아침이 밝았다. 2일 연속 하루에 10km씩은 걷다 보니 잠은 정말 푹 자는 것 같았다. 앞서 2일 동안은 계속해서 센트럴파크 남단 중에서도 Houston street 위쪽을 주로 맴돌았는데, 오늘은 꼭 세계 금융의 중심지, Wall street(월가) 인근 지역을 구경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나마 2일 차까지 가장 멀리 가본 남쪽 지역이 Soho(소호) 지역이었고, 아직 그 아래쪽은 발조차 못 디딘 곳이었다. 뉴욕의 지리에 익숙지도 않을 수 있는 독자분들을 위하여 내가 여행 내내 사용한 구글맵을 보여드리는 게 어떨까 한다.

5일 동안 뉴욕에서 꼭 가보겠다고 찍어둔 웨이포인트(파란색) 들이다. 뉴욕은 맨해튼만 보더라도 정말 가볼 곳이 많다.


그렇지만 월가만 보기에는 사실 하루를 다 쓰기가 아까웠다. 물론 월가 인근에 있는 박물관이나 이런저런 기념물들을 자세히 본다면 하루도 충분하거나 모자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곳은 금융의 메카이지 전형적인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에, 오전에는 맨해튼 중부와 북부지역을 더 다니다가 오후에만 봐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Saint Patrick's Cathedral(성 패트릭 대성당)이었다. 뉴욕의 유명한 미술관이나 박물관들이 보통 이른 아침부터 열지 않고, 오전 10시나 11시부터 열기 때문에, 동선이 조금 복잡해지더라도 미술관이 열기 전까지는 남쪽에 위치한 성 패트릭 대성당을 구경한 후에 다시 북부에 위치한 Metropolitan Museum(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가기로 결정했다.


천주교 신자로서, 성 패트릭 대성당을 가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선택이었다. 참고로 이 성당의 이름 앞에 Saint Patrick(성 패트릭)이 붙는 이유는 이 성당의 수호성인이 성 파트 라치오이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매년 3월 17일에 초록색 옷을 입고 파트 라치오 성인을 기리는 Saint Patrick's day의 주인공, 바로 그 Saint Patrick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성 패트릭 대성당, 웅장함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이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을 사진이 제대로 담아내질 못해서 아쉬웠다.
성 패트릭 대성당의 내부 모습이다. 건물 안팎이 차라리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높다란 아치형 천장과 길게 길게 뻗은 기둥들이 고딕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성당 입구와 작은 성전들 앞에는 촛불을 켜고 기도를 드릴 수 있다. 2달러에 판매하는 건 아니지만 기부를 권장하고 있다.
성인들의 조각상, 벽체에 한 땀 한 땀 새겨진 조각,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까지, 그 순간만큼은 신보다도 이걸 만들어낸 인간 존재에 경외심이 들 지경이었다.

성 패트릭 대성당은 1858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1878년에 비로소 완공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고딕 양식을 적용하였으며, 건물의 재질은 화강암이다.

정해진 공식 미사 시간만 아니라면,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간단한 보안검색만 마치면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곳이다.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오른쪽 외벽에는 예수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성전들이 있으며, 각 성전마다 관광객들을 위해서 박물관처럼 설명이 적혀있기도 하다. 나는 오디오 가이드까지 사용하면서 설명을 들으려 해 보았지만, 워낙 종교에 관련된 용어들이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결국은 보면서 많이 느끼고, 아쉬운 대로 사진으로 많이 담아가기로 했다.

 

워낙 웅장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간과하기 쉬우나, 벽에 새겨진 작은 조각들, 기둥머리의 장식들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으로 섬세하게 제작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이 성당은 건축되었다기보다 하나의 작품으로서 탄생되었다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천주교 신자이고, 이곳은 성당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실현시킨 인간 존재에 대하여 경외심이 들었다.




성스러우면서도 인상 깊었던 경험을 뒤로하고, 웅장한 성당문을 나서기 전 뒤를 돌아 성호경을 긋고 예를 표한 뒤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근처에 록펠러센터가 있었고 빌딩 앞 Lower plaza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길래 또 몇 장 찍어보았다. 어제 전망대를 올라가려고 들리긴 했지만, 낮에 보는 건 역시 또 다른 모습이었다. 

역시 웅장하다. 이 커다란 녀석을 마주하고 있으면 골리앗을 마주한 다윗이 된 느낌이다.
가장 높은 빌딩인 컴캐스트 빌딩 앞 광장에는 Lower plaza로 불리는 광장이 있으며, 저 황금빛 동상은 간을 무한 재생시키기로 유명한 프로메테우스이다.

센트럴파크 동쪽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탑승했는데, 이참에 앞에서 미뤄두었던 뉴욕 지하철 이야기를 꺼내보겠다. 


뉴욕 지하철, 그것은 또 하나의 모험
뉴욕 지하철 노선도의 일부이다. 복잡하지 않은 듯하면서도 한 색깔에 여러 노선이 다니는 것을 보면 마냥 익숙하지만은 않다.
뉴욕 지하철 내부의 승객들, 2022년 6월 기준으로 뉴욕은 아직도 지하철, 버스, 박물관 등 인구밀집지역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고 있다.

뉴욕 지하철은 한국 지하철에 비해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도, 간단하다면 간단할 수도 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냥 차이가 존재할 뿐이지, 무엇이 더 어렵다 복잡하다 할만한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하철을 줄곧 타 왔던 지라 지하철 마니아라 생각하는 나 마저도 뉴욕 지하철에서 낯선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 지하철 방향

내가 가장 많이 이용해 본 서울 지하철에 한해서 보면, 어떤 입구로 들어가든 상행선 하행선을 모두 탈 수 있다. 하지만 뉴욕 지하철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일 수도 있지만, 지상에서 입구로 들어갈 때부터 지하철 방향이 적혀있다. 만약 그 방향을 안 보고 무작정 호선만 맞춰서 탔다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가는 수가 있다. 내가 주로 이용한 1,2,3호선(위 노선도에서 보면 빨간색 선으로 된 노선) 기준으로 보면, 북쪽으로 올라가는걸 Uptown & Bronx 방향이라 하고, 남쪽으로 내려가는걸 Downtown & Brooklyn이라고 칭한다. 타임스퀘어처럼 큰 역은 어느곳으로 들어가나 양방향으로 자유롭게 접근이 가능하나, 많은 역들이 반대방향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다시 지상으로 나갔다가 반대편 입구로 들어와야 했다.

역으로 내려가는 지하철 입구에서 찍은 것이다. 지하철 방향 안내가 입구에 표시되어 있다.


두 번째, 역 표시를 안내방송으로만 해주는 경우가 있다

이것도 사실 노선마다 다르긴 하나, 내가 주로 이용한 1, 2, 3호선은 지하철 역 안내를 보통 방송으로 해준다. 가끔 이용한 4, 5, 6호선이나 A, C라인은 LED 안내판이 있어 한눈에 개략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방송에서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그 찰나의 시간에 지금 역이 무슨 역인지, 다음 역은 무슨 역인지, 몇 호선으로 환승 가능한지를 거의 웬만한 래퍼 뺨치는 수준으로 빠르게 흘려 말한다. 5일 동안 뉴욕에 있으면서도 한 번조차도 이 방송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고, 가장 확실한 것은 기둥마다 표시된 역 정보를 지하철 창문 밖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역 표시가 이렇게 벽면이나 기둥에 있다. 지금 어디 역인지 잘 모르겠으면 방송에 귀 기울이지 말고 그냥 차창 밖의 플랫폼을 보는 게 제일 정확하고 편리하다.


세 번째, 역 이름이 도로명으로 되어있다.

그나마 유명한 곳은 도로명 + 지명으로 되어있기는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이고(타임스퀘어의 경우도 Time sq-42nd street라 되어있다), 126th street, Cathedral parkway, Cypress Avenue 등이 기본 작명 형태이다. 한 가지 애써 좋은 점을 꼽자면, Street 숫자가 증가할수록 뉴욕 지하철 시스템의 중심부(월가와 브루클린 다리 인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숫자의 증감을 보고 대충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지금이라도 바꿔 타야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안 좋은 점은, 아무리 유명한 곳을 가려고 해도 역 이름이 인근 명소의 이름으로 명명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보니,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도착지의 역 이름을 확인해야 한다. 


네 번째, 한 플랫폼에 여러 노선이 온다.

이것도 처음 겪으면 상당히 골 때리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면 서울 지하철도 종착역이 다른 여러 지하철이 플랫폼에 진입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비슷하다. 무슨 말이냐 하면, 공통 구간은 동일하게 가다가도 어느 역을 기점으로 다른 아예 다른 루트로 가는 노선들이 공통 구간에 속한 역에서는 같은 플랫폼에 진입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2,3호선이 모두 정차하는 역의 한쪽 플랫폼에 서있으면, 그곳에 1호선도 왔다가 3호선도 왔다가 하는 꼴을 볼 수 있다. 만약 도착지점도 공통 구간 내에 있다면 어떤 걸 타도 상관없으나, 그렇지가 않은 경우엔 차량에 써진 노선정보를 잘 보고 타야 한다. 한국은 종착역이 다른 걸 타도 가다가 중간에 내리는 정도지만, 뉴욕은 같은 플랫폼에 온다고 아무거나 잘못 탔다간 뜻밖의 여정을 떠나는 수가 있다.

타기 전에 한 번 더 차량 바깥에서 보이는 노선번호를 제대로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뉴요커들은 이게 생활이지만, 여행객이나 나 같은 이방인들에게는 낯설기 마련이다.


다섯 번째, 대체로 시설물이 깨끗하지 않다.

한국의 지하철은 상당히 깔끔하고 정비가 잘 된 편이다. 배관이나 철골구조가 드러나 보이는 경우도 요즘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철로에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건 요즘들어 본 적도 없을뿐더러 대부분의 역에는 스크린도어가 도입되어 철로 난입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한국의 지하철은 현대화가 정말 많이 진행된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반면, 뉴욕 지하철은 일단 기본적으로 더러움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 기둥에 기대고 있다가 물방울이 머리나 어깨 위로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게 빗물인지, 누수인지, 노숙자의 오줌인지, 쥐오줌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스크린도어는 당연히 기대한 적도 없고, 철로 바닥 부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탁한 색의 액체와 쓰레기들이 많이 나뒹굴고 있다. 당연히 냄새도 고약하다.


아무튼, 개통 연도가 1904년인 뉴욕 지하철은 어느덧 그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좋든 싫든 뉴요커들에게는 러시아워를 포함한 24시간 동안 발이 돼주는 매우 소중한 존재이자 삶의 일부이다. 이러한 이유로 낙후된 시설물과 불편한 시스템에도 뉴욕의 상징으로 남아있는 뉴욕 지하철이 아닐까 싶다.




지하철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야기를 해보겠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술이나 예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이곳을 세계적인 명소로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물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후기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정말 크고 다양하고 웅장하고 등등의 모든 수식어와 강조 어구를 갖다 붙여도 크다"이다. 진행되고 있는 특별전도 한두 개가 아니고, 구역별로 층별로 정말 다양한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지도를 보고 다니면서도 조금만 예술작품에 심취해서 "내 시선과 마음과 발이 가는 대로~~" 다니다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시공간마다 전시의 순서가 방향이 일방적이지 않고, 각 방마다 길이 여러 방향으로 뚫려있기 때문이다. 건물은 지하 1층에서 5층까지 있었고, 전시가 있는 곳만 치더라도 1층부터 3층까지이다.(어쩌면 그래서 다행일 수도 있다)

가장 메인이 되는 1층 지도이다. 평균적으로, 빨간색으로 표시된 한 개 구역이 한국에서 열리는 웬만한 미술관의 전시 한 개 규모와 거의 맞먹는다고 보면 된다.

거의 영국의 대영박물관을 떠올리게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 기준으로 말이 '미술관'이지 사실 세상 삼라만상을 다 갖다 놓은 '박물관'에 가까워 보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이집트, 서부 유럽, 아시아, 그리스 등등 세계 각지의 예술품과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미술품만 보더라도 국내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들인 고흐, 르누아르, 마네, 모네 등의 작품은 당연히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어렵사리 특별전 정도는 해줘야지 살면서 한번 볼까 말까 한 작품들을 요 며칠 만에 다 보게 된다니 영광일 수밖에 없었다.

In America: An Anthology of Fashion이라는 타이틀의 특별전을 하고 있었다. 짧은 미국의 역사 속에서도 역동적으로 변해온 전통의상들의 연대기를 보았다
전시실 하나하나가 정말로 알차다 어느 하나 놓칠 작품이 없다. 잭슨폴록의 액션페인팅은 MoMA에서 본것과 비슷한게 여기에도 있었다.
르누아르 작품에서 보이는 저 투명한 피부표현이 난 마음에 든다. 한편 전시실 한가운데에 놓인 고흐의 자화상도 볼 수 있었다.
이집트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페르넵의 무덤, 페르넵은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수행원이었다.


나는 미술사나 세계사에는 완전 문외한이라 사실 가슴 깊이 울림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이쪽 분야에 전문가이신 분들에게는 이만한 천국이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는 그저 "이런 것도 있었구나""정말 없는 게 없구나", "미국의 국력이 이렇게도 나타나는구나" 정도로 끝나거나, 그나마 아는 작품이 나오면 "어! 이 작품 원본을 여기서 보네?" 하는 정도였지만, 이 분야의 배경지식이 충분한 사람들에게는 매 순간순간이 흥분을 자아내는 공간일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아쉬운 시간이기도 했다. 상징적인 몇 가지 전시품만 자세히 보고, 그나마 좋아하는 현대미술과 본적 있는 유럽 미술 위주로만 본 다음 나머지는 그냥 눈으로만 흘깃흘깃 본정도였는데도 4시간이 훌쩍 지나버렸고, 내 관절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를 제대로 뜯어보려면 내 기준으로는 족히 1달은 필요할 것 같았다.

4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나오면서 바라본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정면, 관람하다가 잠시 나와서 다리 좀 풀어주고 2차전 3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여행 3일 차의 메인이었던 Wall street(월가)였다. 월가가  관광지도 아닌데 뭐 볼 게 있냐고들 하겠지만, 그래도 한 마리의 서학 개미로서 한 번쯤은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증권거래소 간다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사모은 내 미국 주식의 손실이 복구되진 않겠지만 말이다(서학 개미는 오늘도 웁니다, 쓰으으읍). 정말 "한강에서 뺨 맞고 월가에서 눈 흘긴다"가 딱 맞는 표현이다.


월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그때가 출퇴근 시간이 아니라서 그런지 내가 생각했던 그런 분주한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뉴욕 중심가보다 한산하다는 게 특징이었다. 하지만 이 지역 랜드마크라고도 할 수 있는 황소동상 앞에서는 제법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황소 동상의 뿔이나 X알을 만지면 부가 찾아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만져댔는지 누가 일부러 광을 낸 거 마냥 번들번들 광채가 난다.

이것이 바로 월가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는 황소 동상, 어쩐지 다른 곳은 텅텅 비었는데 사람들이 죄다 여기 모여 있었다.
저 황소동상의 뿔이나 X알을 만지면 부가 찾아온다는 미신이 있다고 한다. 다들 '특수부위'를 만지면서 인증숏 찍어보겠다고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바로 뉴욕 증권거래소(NYSE)이다. '겁 없는 소녀 '동상 뒤에서 찍은 뉴욕 증권거래소를 보니 마치 겁 없이 미국 주식을 주워 담던 한때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왼쪽에 위치한 것이 바로 연방준비은행 건물이다. 운영이 끝났을 시간인데도 경비원들이 2명씩 붙어서 출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길이 워낙 좁아서 건물 전체를 담지는 못했다.

New York Stock Exchange(뉴욕 증권거래소)와 Federal Reserve Bank(연방준비은행)은 건물만 슬쩍 보고 오는 정도로 그쳤다. 사실 내부를 들어가 볼 기대를 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세계 금융의 중심지에 갔다 와봤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한다.




다음으로 가본 곳은 월가 남부지역의 해안과 맞닿은 곳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꼭 보고 싶었던 것은 Universal Soldier Monument라는 이름의 한국전쟁 추모비였다. Memorial Day가 지난주여서인지 추모 화환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미국, 한국을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캐나다, 콜롬비아, 이탈리아, 인도 등의참전국 군인들 중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 의 수를 각각 기록해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참전국 22개국의 국기가 기념비에 새겨져 있으며, 기념비 둘레의 바닥 부분엔 참전군인 중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의 수가 국가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즐거운 여행 중에도 잠시 숙연해지며 선배 전우들의 넋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평화가 세계인의 희생 덕에 아직도 영속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큰 기대는 안 하고 빨리 나온다고 해서 주문한 건데 나름 퀄리티가 괜찮은 피자였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고, 3일 차의 마지막 목적지인 High Line Park(하이라인 파크)를 가려던 찰나, 배꼽시계가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이라인 파크가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갈 계획이었는데, 아무것도 안 먹고 끝까지 갔다간 탈진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어, 하이라인 파크 입구 근처의 나름 리뷰가 괜찮은 피잣집을 찾았다. 나름 맛집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게다가 야외에 마련된 자리까지 만석이라서, 결국엔 테이크 아웃해서 인근 박물관 계단 앞에서 쭈그려 앉아서 Peroni 맥주와 함께 흡입했다. 지는 저녁노을을 보면서 먹는 이탈리아식 피자맛은 썩 괜찮았다. 자본주의의 도시 뉴욕에서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고도 살아남은 레스토랑들은 저마다의 생존 비결이 훌륭한 맛에 녹아있다.





하이라인파크는 지상으로부터 7.5m 위에 위치한 고가도로공원이다. 때문에 입구 쪽에서는 이렇게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배도 채웠으니, 슬슬 하이라인 파크의 입구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이라인 파크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공원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이 공원은 뉴욕 시내를 가로지르던 화물열차의 고가철도를 하나의 기다란 공원으로 조성한 곳으로 길이는 총 2.3km에 달하며 지상에서부터 7.5m 높이에 위치해 있다. 서울역에 가면 있는 '서울로 7017'과 비슷한 녀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텐데, 사실 하이라인 파크가 서울로 7017의 모델이 된 곳이다.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면서, 스카이라인을 빛내고 있는 뉴욕 고층빌딩들 사이사이를 지나며 선선한 밤바람과 함께 고가도로를 걷는다는 것은 참으로 낭만적인 경험이었다. 특히나 좋았던 점이라면, 뉴욕 도심을 걸을 때와는 달리 느린 속도로 여유 있게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걷기에 좋은 곳이었다는 것이다. 


허드슨 강 쪽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뉴욕의 밤을 여유롭게 음미하기 딱 좋은 곳이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뉴욕의 도심을 걸을 때에는 모두가 주변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발맞춰 걷게 된다. 그렇게 모두가 빠르게 걷는 것에 익숙해져 있고, 그게 뉴요커들의 삶의 속도이고 방식인 것 같았다. 특히 인디애나주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온 나에겐 하나의 문화충격이었다. 길가다가 사거리에서 구글맵 좀 본다고 잠시 멈춰 서면 옆에서 갑자기 걸어오는 사람이 애써 피해 가거나 종종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 하이라인 파크에서는 마치 모두가 약속한 듯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모든게 바삐 돌아가는 도심에서 잠시 한발짝 물러서서 템포를 늦추고 그 모든것을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한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역시 인생은 멀리서보면 아름답다. 

원래 있던 철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위에 나무와 풀이 자라고 있다.
고츨빌딩 사이사이를 관통하는 공원 덕분에 아름다운 야경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하이라인 파크는 1일 차에 갔던 Vessel 근처에서 끝이 났다. 낮이나 주말에는 북적거리는 인파 때문에 더욱 천천히 지나게 되다 보니 1시간이 넘도록 공원에 있기도 한다는데, 평일 밤이다 보니 워낙 한산해서 40분 정도만에 꽤나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남길 수 있었다. 뉴욕에는 센트럴 파크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공원들이 있지만, 전형적인 공원과는 색다른 인상을 주었던 하이라인 파크였다.




3일차부터는 허리가 조금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대학원 생활 1년동안 의자에 앉아서만 시간을 보냈더니 운동부족이 온게 분명했다. 걷다가 1시간에 한번씩은 머리가 무릎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주어야 통증이 일시적으로 사라졌는데, 이걸 10번넘게 반복하다 보니 집갈때가 된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이면 나도 서른이고, 이젠 내 몸을 여행에 맞추는게 20대 초반 시절처럼 마냥 쉽지는 않다는걸 느꼈다. 그래도, 더 늙기 전에 이 환상적인 도시에서 욕심나는 만큼 더 열심히 돌아다닐수 있었다는게 행복했다.


보스턴 일정까지 생각하면 4일이나 남은 여행을 이상없이 마치기 위해, 3일차는 비교적 일찍(밤 10시)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며칠 묵었다고 숙소에도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뉴욕의 가장높은 전망대와 함께한 4일차 여행기로 다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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