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cellaneous Oct 22. 2022

미국에서 배우는 긴축학 개론

고환율 시대의 실전 긴축재정정책

환율이 좀처럼 달러당 14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022년 10월 기준). 유학생들에게는 보릿고개가 따로 없는 요즘이다. 나 역시도 하루하루를 버틴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요즘이다. 이번 여름에 신나게 여행을 다닐 때만 해도 환율이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가파르게 오르더니 이내 1400원을 돌파해버렸다. 분명 미국에 들어올 때(2021년 7월)만 해도 1100원대였는데, 거기에 양적완화의 영향으로 먹거리와 생필품 물가까지 치솟아버리니 1년 만에 모든 게 2배로 비싸진 느낌이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시절 1553원 이래로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동안은 다음 여행을 위해서 평소에 아끼자는 생각이었지만, 요즘은 다음 여행 생각할 겨를도 없고 한국에서의 적금만 깨지 말자는 생각으로 일상에서의 긴축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어떤것들을 줄일 수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지출의 성격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눠보았다.


사실상 줄이기 힘든 고정지출로 나가는 것들을 보자면, 월세, 보험료(의료, 자동차), 통신비(인터넷, 핸드폰) 정도가 있고, 이것들은 줄일래야 줄일 수가 없이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것들이다. 물론 1년 치나 6개월치를 일시불로 내버린 것도 있지만, 월별로 나누어서 고정지출에 넣을 수 있는 것들이다. 월세를 반으로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를 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보았지만, 완벽한 타인과 내 생활을 공유하는것 만큼은 견딜수가 없었기에 감수하기로 했다.


변동성이 있고 노력으로 아껴볼 수 있는 변동지출은 전기세, 기름값, 식비 정도가 되겠다. "그래도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라고 하면서도 제일 줄이기 만만한 게 식비라는 게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변동지출을 줄이기 위해서 실전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첫째, 집에 있지 말고 최대한 연구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에 계속 있게 되면 당연히 전기세가 늘어난다. 특히나 월세를 아껴보겠다고 이 동네에서 가장 싼 반지하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부터는 집이 쌀쌀하고 습하다. 이걸 막아보겠다고 집에 있으면서 제습기와 전기난로 혹은 공조기를 틀기 시작하면 전기세 폭탄을 면할 수가 없다.


어차피 연구실은 가야 하는 곳이고, 갈 때 기름 써서 갔으면 올 때도 기름 써서 와야 하는 법이다. 어차피 써야 될 기름값, 쓰는 거라면 더욱 효과적으로 쓰는 게 현명하다. 


둘째, 살기 위해 먹을 뿐, 맛으로 먹지 않는다.

가장 줄이기 만만한 비용이 식비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식비를 줄인다고 해서 영양을 생각하지 않으면 빠른 시일 내에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 것이다. 탄단지의 적당한 비율을 맞추면서 적정량의 나트륨과 일정량의 야채를 섭취하자는 게 내 식단에 있어 최소한의 목표였다.


일단 아침은 12개에 3.28달러에 판매하는 Maruchan 라면(한 봉 지당 27센트)으로 시작한다. 라면만 먹기엔 부족하니 계란(개당 16센트)은 2~3개 정도 넣는다. 당연히 맛이야 한국 라면이 훨씬 맛있지만, 한국 라면은 월마트에서 조차 1개당 거의 1달러에 육박한다. 나트륨 섭취 제한을 위해 국물은 과감히 버린다. 포만감을 유지하며 부족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아침식사의 마무리는 땅콩버터 2스푼(17센트)으로 마무리한다. 

참치캔, 계란, 라면, 그리고 하루 한 끼 맥도날드는 내 식사의 양대산맥이 되겠다.

늦은 점심으로는 맥도날드를 먹는다. 점심도 요리하기 위해 다시 집을 가기엔 기름값이랑 시간이 아깝다. 캠퍼스 근처의 맥도날드에 가서 맥치킨(1~2달러) 하나와 맥더블(2달러) 하나를 집으면 대략 3달러선에서 점심을 싸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다. 모은 포인트나 Deal을 활용하면 1달러나 2달러에도 가끔 해결이 가능하다. 빅맥(4~5달러)이나 쿼터파운더 치즈(4~5달러)는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연구실에서 나와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가면 밤 10시 정도가 된다. 운동을 끝낸 후라 무진장 배고픈 상태가 되는데, 이때는 샐러드 한 봉지(1.78달러)와 참치캔(1달러) 하나를 뜯어서 먹으면 낮은 칼로리에 적당한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다. 밥을 안먹다 보니 김치조차 안 먹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야채를 먹어줘야 한다. 나트륨 섭취와 칼로리를 제한하기 위해 드레싱 따위는 뿌리지 않는다.

세척까지 되어있어 바로 먹을 수 있는 샐러드다. 한봉지당 1.78달러다.

운동할 때를 빼곤 하루 종일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리다 보니 사실 많이 먹을 이유가 없기도 하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이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많이 먹었지만, 요즘은 활동량이 워낙 적어서 이렇게 먹고도 체중조절을 위해 매일 운동을 할 정도이다. 



셋째, 기름은 무조건 싼 곳에서

창고형 마트로 한국에는 Costco(코스트코)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미국에는 Walmart의 자회사인 Sam's club(샘즈클럽)이 있다. 미국의 이런 창고형 마트들은 당연히 회원제로 운영되고, 회원들에 한해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주유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마냥 저렴한 건 아니지만 보통 갤런(3.78L)당 20~30센트 정도가 저렴하다. 

샘즈클럽 주유소의 짠내 나는 풍경과 대조를 이루는 훌륭한 날씨

하지만 이마저도 우리 집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기름만 넣으러 가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래서 갔다 하면 무조건 유통기한이 길어서 대량 구매할 수 있는 것들(생수, 참치캔, 땅콩버터, 라면 등)을 최대한 쓸어 담아 오곤 한다.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여파로 기름값이 치솟다 보니, 갈 때마다 샘즈클럽 주유소에는 자동차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넷째, 외식은 특별한 날에만

미국의 외식물가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날아올랐다. 정말 맥도널드가 땅 파서 장사하는 자선사업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렴한 것이다.(근데 자선사업가도 햄버거 가격은 올리더라). 웬만한 레스토랑에 가서 15%의 팁7%의 세금(인디애나 기준)까지 내고 나면, 사실상 메뉴판에 표시된 가격의 1.2배를 지불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패스트푸드 브랜드를 제외하고서는 아무리 저렴한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괜찮은 식사 한 끼 하려면 1인당 20불 정도에 육박하는 금액을 지불하게 된다. 1달러가 아까운 마당에 팁이라는 게 상당히 아까운 요즘이다. 차라리 팁도 못 내는 어글리 코리안이 될 바에는 그냥 안 가고 만다. 그렇게 팁이 아깝다면 팁을 주지 않아도 되는 곳을 가거나, 팁 걱정 없이 집에서 먹는 게 현명하다고 본다.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짠내 나는 일상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싶다. 옛날엔 그래도 세이브해둔 달러에 아껴둔 원화를 환전한 걸 합쳐서 간간이 여행 다닐 생각으로 버티면서 아끼고 살았는데, 요즘은 그런 기대마저도 좌절되었다. 


훗날, 이렇게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망각하고, 날마다 커지는 욕심에 절여진채로 일상의 감사함을 잊고 살아가는 날이 온다면, 이 글을 읽으며 반성하면 될 것 같다. 그치만 나 같은 처지의 유학생은 더 없기를 빌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모두에게 힘내라고 외치며 나도 힘을 내볼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 가게였던 곳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