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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cellaneous Apr 15. 2022

초콜릿 가게였던 곳

Harry's chocolate shop에서 보낸 저녁

퍼듀에는 항상 붐비는 장소가 있는데, 바로 PMU(Purdue memorial union)가 위치한 Chauncy Avenue 지역이다. 이 쪽에는 무엇보다 카페와 식당이 밀집해 있어서, 식사시간이 아니더라도 학기 중에는 항상 인파로 붐비는 지역이다. 특히 그 근처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누구나 Harry's chocolate shop을 1순위로 뽑지 않을까 싶다. 

간판만 보면 정말 초콜릿 가게다,, 간판만 보면...


누구나 처음 간판만 보면, 그냥 초콜릿 가게라고 생각할 것이다. 초콜릿 성애자가 아닌 이상, 들어가 볼 생각조차도 안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가게 앞에 사람들이 항상 줄을 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때는 학기 초반이었고, 신입생들 왔다고 무슨 초콜릿 할인행사라도 하는가 보다 했다. 

사실 나도 초콜릿을 평소에는 찾아먹지 않지만, 종종 위스키와 페어링 하기 위해 초콜릿을 찾을 때가 있었기에, 한번 어떤 걸 파는지, 어떤 곳인지 찾아나 보자는 생각에 구글맵에 검색을 해봤는데, 아니 웬걸? 간판만 Chocolate shop으로 해놓고, 술을 파는 주점이었다.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니, 이곳은 생각보다 역사가 깊은 곳이었다.


Harry's chocolate shop은 1919년에 아이스크림과 음료수를 파는 곳으로 처음 이 자리에 세워졌다. 때마침 1919년 1월 9일에 미국 전역에 금주법(National prohibition act)이 제정되었으며, 이로 인해 술의 제조와 운반,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초콜릿 가게는 1층에서는 사탕과 음료수를 파는 척하며, 이곳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이 "Go ugly early"라는 일종의 암호를 점원에게 속삭이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밀주(Moonshine)와 압생트가 있는 지하실로 인도했다고 한다. 

초창기 Harry's chocolate shop의 모습


Harry's 굿즈는 University book store에서도 구할 수 있다.

여기서 "Go ugly early"의 통상적인 의미는 "클럽에서 네가 얼마나 오래 있든 말든 어차피 너는 결국 못생긴 파트너를 데리고 나갈 거다, 그러니까 차라리 일찍이 못생긴 사람한테 가라"라는 뜻이라는데, Harry's에서 통용된 이 슬로건의 진짜 의미는 각각의 단어를 반대로 해야 알 수 있다고 한다. 

바로 "Come pretty late", 즉 "꽤 늦은 시간에 와라"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밀주를 대낮부터 팔 수는 없으니 야음을 틈타 비밀스러운 축제를 벌인 모양이다. 그렇게 그 시절 암구호였던 "Go ugly early"는 지금 Harry's의 슬로건으로 자리 잡아 각종 굿즈에 자랑스럽게 프린트되어 있다.



1932년에 드디어 1종 허가, 즉 맥주에 한해서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공식 면허를 취득했고, 1933년에는 비로소 팔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진열대에서 치우고 대신 그 자리에 맥주를 올려놓기 시작했다. 1950년에는 2종 허가(2 way license)를, 1967년에는 3종 허가(3 way permit)를 취득했으며 이로써 사실상 모든 종류의 술을 판매할 수 있는 주점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Harry's는 이제 어느덧 설립 100주년을 훌쩍 넘긴 전통 있는 가게가 되었으며, 지금은 퍼듀와 Lafayette지역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전통 명소가 되었다.

역대 점주 중 한 명인 Harry Jr.의 사진이다


역시 아무리 단짠의 민족 미국인이라지만 고작 초콜릿 따위를 줄 서서 사 먹진 않았던 것이다. 리뷰 사진만 봐도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랩에 계신 포닥분께 여쭤보니, 사람이 엄청 많은 곳이고, 특히 안주가 상당히 맛있다고 하신다. 그런데 일행 없이 혼자서 쉽게 가보기는 쉽지 않은 곳 같았다. 마침 잠깐 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시게 된 선배님이 계셔서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냐는 궁극의 논리로 선배님을 꼬셔서 초콜릿 가게에 입성했다


입구에서 신분증(여권) 검사부터 한 후에 직원이


"저기 자리에 앉든 2층으로 올라가든 서서 마시든 너 좋을 대로 해 buddy"


라는 겁나 쿨한 멘트를 건넸다. 때는 6시였는데도 술집치고는 사람이 꽤 많고 시끌벅적했다. 그나마 2층은 그런대로 좀 한적한 편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웨이터가 돌아다니다가 주문을 받는다. 메뉴 가격들은 그렇게 비싸지도, 싸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미국의 웬만한 레스토랑 음식들이 기본적인 가격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평균보다는 약간 저렴한 축에 속하는 것 같았다. 


역시 버펄로 윙은 실패가 없는 음식이다


첫 번째로 주문한 것은 실패가 없는 버펄로 윙, 맛없을 수가 없는 만만한 게 버펄로 윙이다. 맥주는 IPA 종류로 추천받아서 피쳐로 주문했다. 소문대로 음식들이 꽤 맛있다. 조금 짠 감이 없잖아 있지만, 맥주를 연달아 부르는 그런 감칠맛 나는 짠맛이었다. 안주를 3개째 시킬 때쯤 되니, 우리가 앉아있던 2층에도 사람들이 제법 올라와있다. 자리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서서 맥주 한잔씩을 손에 들고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의 목소리도 상당히 시끄러웠지만, 무엇보다 음악소리가 훨씬 시끄러웠다. 다들 그 음악소리를 이기기 위해 더 큰 목소리를 내고들 있었고, 이 모든 소리가 모이고 모여서 같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끼리의 정상적인 대화조차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사실상 고래고래 소리 지름과 동시에 몸짓까지 섞어가면서 상대방의 이해를 돕고 있었다. 


나초도 가격에 비해 푸짐하고 맛있었다


그러다가 꽤나 유명한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바로 John Denver의 West virginia 였다. 한국인들에게는 어쩌면 영화 'Kingsman - the golden circle'에서 멀린이라는 인물이 죽기 전에 이 노래를 멋지게 부르고 장렬히 산화하는 모습 때문에 더 익숙한 노래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노래는 모르는 미국인이 없을 정도로 상당히 유명한 노래이다. 


멀린은 지뢰를 자기가 대신 밟은 다음 죽기 전 West virginia를 열창하며 적들을 자기 쪽으로 유인한 뒤 자폭한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마치 애국가라도 되는 마냥. 정말 재미있고 신선한 분위기였다. 한국에서는 어떤 노래가 나와야 이렇게 따라 부를라나,, 하는 생각도 들며, 20년 넘게 살아오며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걸 생각하면, 한국 사회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미국만의 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어느 정도는 가사를 알기에 기억나는 부분은 같이 따라 불러 보기도 했다. 그리고 훗날 이 노래는 내가 힘들고 지칠 때마다 찾아 듣는 위로가 되는 노래로 등극했다.


자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서서 한잔씩 들이키고 있다


10시가 가까워지는데도 사람이 줄어들기는커녕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만 늘어갔고, 완전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대체 어떻게 주문을 하나하나 받고 그걸 기억해서 서빙하는지, 웨이터가 정말 존경스러워질 지경이었다. 결국 더 이상 앉아있다가는 목청이 터질 것 같아서 그만 정리하고 나가기로 한다.

둘이서 가서 팁에 세금까지 합쳐서 대략 100달러 정도 나왔다. 계산하고 보니 음식값이 싼지는 모르겠다만, 그거랑은 별개로 신나는 분위기 덕분에 취하는지도 모르고 술을 엄청나게 마셔댔던걸 생각하면 그래도 reasonable 한 가격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또다시 가보고 싶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치고, 모든 게 무료해질 쯤에 한 번씩 활기를 되찾게 해 주며 미국스러운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갈 땐 노래 좀 따라 부를 수 있게 미국의 컨트리 팝 좀 여러 개 알아둬야겠다.


Harry's chocolate shop: https://www.harryschocolatesho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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