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장애 #조울증 #양극성장애육아
"카톡!"
30년 지기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요즘은 올챙이(큰아이를 부르는 우리만의 애칭)랑 좀 어떠냐며... 안부를 물어왔다.
문자를 보자마자 한숨부터 세어 나온다.
이상하게도 큰 아이와의 관계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난 패션 전문 신문사에서 승진을 앞두고 있는 케이스였고 계획보다 너무 빨리 찾아온 아이였기에 마냥 기뻐할 수 만 없었다.
임신 3~4개월 때쯤 산부인과 의사가 아기의 초음파 사진을 심각한 표정으로 살피더니
"혹시 친가 외가 포함해 가족 중에 다운증후군 환자가 있으신지요?"라고 물었다.
"아니요, 전혀요."
"보통 18주쯤의 아기 목둘레 치고는 좀 사이즈가 커서요. 다운증후군의 경우 이런 경우가 있는데..."
다운증후군 이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런 경우 합법적으로 사산을 유도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확한 태아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체세포 검사를 받아보실 것을 권해드립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이라고 해서 다운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해서 무턱대고 아이를 지울 수는 없었다.
내게 찾아온 고귀한 생명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쳐낸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체세포 검사는 어떻게 하나요?"
"산모의 배에 긴 주삿바늘을 꽃아 태아의 체세포 일부를 떼어내 유전자 검사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럼 체세포 검사를 해보고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체세포 검사는 아무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가 아니었고 유전자 검사만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을 찾아갔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고 검사 중 생길지 모르는 태아, 산모 모두의 감염의 위험도 감내해야 하는 검사였다.
이제 막 불러오지도 않은 배를 내밀고 기다란 주삿바늘을 맞이해야만 했다.
아무리 신체발달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은 태아라고 하지만 뱃속에서도 얼마나 무섭고 아팠을까?
검사는 사고 없이 안전하게 마쳤고 2주 뒤 검사를 의뢰한 병원으로부터 뱃속의 태아가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
"그냥 맨날 똑같지 뭐... 맨날 방에 처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지..."
"너는 어떻게 지내는데?"
"나? 그냥 최대한 안 부딪히려고 노력 중이지..."
"현정아! 너 혹시 넷플릭스 보니?"
"응"
"넷플릭스에 홈랜드라는 시리즈 물이 있는데 그거 정말 재미있어, 한번 꽂이면 헤어 나올 수가 없어, 너도 한번 봐봐. 거기에 캐리라는 여자 주인공이 있는데... 암튼 일단 한번 봐봐"
"응, 알았어"
절친이 권해준 드라마를 찾아서 플레이했다.
다소 거칠고 즉흥적이며 감정의 기복이 심하지만 자기 일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CIA 요원 '캐리'라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시리즈 물이었다.
그런데 캐리의 행동들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극단적인 표현과 행동...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없는 무책임한 태도
우리 집의 올챙이와 너무 닮아있는 여자 주인공 캐리.
그리고 그녀가 앓고 있다는 양극성 장애라는 생소한 질병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양극성 장애-정신이 상쾌하고 흥분된 상태와 우울하고 억제된 상태가 교대로 나타나거나 둘 가운데 한쪽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병.
-네이버 백과사전
중학교 2학년 때 올챙이는 한 집단의 아이들로부터 오랫동안 뚱뚱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했다.
사춘기 예민한 나이에 2년 가까이 외모로 학교폭력을 받아온 아이의 마음은 병이 들었으나 집에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잠든 아이의 팔목에서 자신의 손목을 커터칼로 수없이 그은 자해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담임선생님에게 문의를 했고 학교에서 올챙이를 괴롭히는 아이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올챙이에게 무심코 돌을 던진 녀석들은 올챙이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 이에게 도 똑같은 폭력을 휘두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쪽 피해학생의 학부모는 처벌을 원치 않는다 했고 학교에서는 어머니께서는 어떻게 하시겠냐고 물었다.
이건 명백한 학교폭력이 맞다는 언질과 함께.
아이와 함께 상의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다며 담임선생님과의 전화통화를 마쳤다.
올챙이와 오랜 시간 상의 끝에 학폭위를 열기로 결정하고 그때부터 상담센터와 정신과 치료도 함께 시작했다.
정신과에서 올챙이에게 내린 진단명은 '중증 불안감'이었다.
그렇게 불안감을 덜어준다는 약을 2년 가까이 복용했지만 아이의 불안감은 나아지지 않았고 아이는 계속해서
"엄마! 약이 효과가 없는 거 같아"라고 했다.
병원 담당선생께서는 약의 용량이 적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용량이 높은 쪽으로만 계속 처방을 내려서 계속 같은 종류의 약을 먹고 있었을 때 친구로부터 넷플릭스의 '홈랜드'라는 시리즈물을 찾아보라고 연락을 받은 것이었다.
홈랜드의 시즌1을 보고, 왜 30년 지기 친구가 내게 이 드라마를 보라고 권했는지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성인이 돼서도 쭉, 결혼을 해서도 같은 동네에서 살며 나와 내 가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로서 나의 올챙이 육아를 지켜봐 온 내 오랜 절친이, 올챙이의 출생부터 지금까지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는 내 30년 지기 친구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내 아이에 대해서 만큼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넷플릭스 드라마를 권하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올챙이는 중증 불안감이 아닌 양극성 장애 일지도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