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충동 #수면장애 #양극성_장애
"자살 마렵다."
똥이 마려운 것도 아니고 오줌이 마려운 것도 아닌 자살이 마렵다고 말하는 올챙이.
그 말을 들은 내 심장이 또 한 번 철렁 내려앉는다.
어떻게 심각한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올챙이의 상처를 후벼 파는 게 아닌가 싶어 말을 아낄까 하다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싶어 한마디 더 건넸다.
"얼마나 그런 생각이 자주 드는데?"
"글쎄... 그때그때 다른데 어쩔 때는 하루에 몇 번씩 들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나마 아닐 때가 있다는 말에 의지가 됐다.
"오늘은 왜 자살이 마려웠는데?"
"그냥..."
차마 에미에게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나 보다.
최근, 아이가 읽고 있는 오디오북을 보게 되었다.
서재에 담겨있는 책의 제목은 '자살 일기(파블로 다니엘 지음)'
제목만 보고 또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필 읽어도 왜 이런 책만 골라서 보는 건지...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듯했다.
얼마큼 태우고 더 태워야 자살이라는 단어와 결별할 수 있을 런지...
나 자신이 자살이라는 단어에 대해 점점 무뎌질까 봐 걱정이 앞서다가 그래도 한편으로 올챙이가 이런 표현이라도 하는 게 어딘가 싶기도 했다.
진짜 죽을 요량이었으면 저런 말을 내뱉지도 않고 속으로 삼켰을 테니...
올챙이의 정확한 병명을 알기 전 거칠게 말하고 특히 식구들을 향해 날선반응을 하다 보니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아빠에게 크게 혼나고 올챙이가 집 밖으로 뛰쳐나간 어느 날 전화도 받지 않던 올챙이를 찾아다니다가 아파트 옥상 연결 통로에서 몇 번 찾아낸 경험이 있는지라 자살에 대한 불안감이 늘 따라다녔다.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자살에 대한 충동.
자살 마렵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것에 무덤덤할 수만은 없었다.
들어주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 소리를 올챙이의 동생이 오롯이 듣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아이에게 내가 느낀 그대로 말해주었다.
엄마가 듣기에 너무 힘들다고... 너무 불편하다고...
그러나 David J. Miklowitz 박사가 지은 '조울병 치유로 가는 길'을 읽으며 생각을 바꿨다.
자살에 대한 효과적인 예방책으로 의사, 혹은 믿을 수 있는 친구, 가족들에게 자살 생각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자살 생각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 마냥 터부시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양극성 장애의 특성 중 두드러지는 문제가 바로 수면장애이다.
두 살 무렵에서 다섯 살 무렵까지 매일 새벽 2시부터 4시~5시까지 영문도 모르게 대성통곡을 해댔던 올챙이.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가끔씩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을 이루지 못한 그다음 날엔 어김없이 위경련이 발생한다.
그러면 또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수액을 맞아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왔다.
수면장애와 양극성 장애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이 증상인 동시에 원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주 양육자인 내가 좀 더 기민하고 예리한 사람이었다면 아이의 병명을 이렇게 늦게 알지는 않았을 텐데...
좀 더 일찍 올챙이의 병을 알았더라면 극단적인 행동들이 병에서 기인한 것이고 그렇게 까지 아이와 갈등할 일이 아니었을 것을... 후회가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