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인종차별주의 자인가?
조지 오웰이란 사람(작가)을 알았을 때 내 나이 30대 초반이었다. 좀 늦은 감도 있지 싶다. 늦게 접한 인물치곤 몇십 년 피워 온 담배 니코틴처럼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었다.
오웰이 쓴 <동물 농장>을 읽고 감동을 받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쓰기 위해 갖춰야 할 문장력과 낱말의 연결, 표현, 언어 구사력은 도대체 어느 만큼 갖고 있어야만 할지에 대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글이 좋으면 그 사람의 대해 연구하게 되고, 그 사람의 인생을 배우려고 한다. 비단 작가가 아니어도 독서 애호가라면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이 인연이 되어 그 작가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작가로 마음에 등록을 하고 모든 책을 읽게 된다.
<1984>라는 책을 읽고 또다시 감탄을 했다.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사회를 꿰뚫어 보는 타고난 안목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제국주의의 나라에서 살며 제국주의를 타도 하고, 혐오하며 약자를 향한 마음을 갖고 긍휼심을 가진 멋진 작가였다. '긍휼'이란 마음으로 작가의 본분을 잊지 않고, 글에 이기적인 자본주의와 파시즘을 비판하며 나치를 향한 날선비판은 가히 칭찬받아 마땅하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세상이나 모든 것이 넘쳐흐르는 오늘날 세상이나 부조리가 난무한 것은 매한가지라 생각하며 비판적 사고를 갖고 자본주의에 휩쓸리기보다 냉철한 사고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든 작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조지 오웰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조지 오웰이란 사람을 향한 마음이 '긍정'에서 '부정'으로 돌아서게 만든 것은 그의 수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작품을 읽고 난 뒤였다.
오웰이 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의 감정과 철학, 부정적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조지 오웰은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것을 느끼며 알게 됐다. 제국주의의 혜택을 느리며 스스로 백인이라는 것을 느끼며 즐겼다. 그가 쓴 문체에서는 분명 스스로 부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도 모르는 '백인우월주의'는 불쑥불쑥 글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특히 오웰은 자기와 다른 인종(사람)을 표현할 때 색으로 표현을 한다. 그 색도 흔히 공용된 단어인 흑인, 황인, 백인이 아닌 '노란 피부', 짙은 피부'라 표현을 한다. 버마(미얀마)에서 제국주의 경찰을 할 때는 미얀마 사람들을 '노란 얼굴들'이란 표현을 쓴다. 백인 중심적 사고방식을 하고, 백인의 중심이었던 오웰은 백인이란 단어를 가끔 쓰며 굳이 글에 표현을 하지 않기도 한다.
<코끼리를 쏘다>라는 에세이에서 조지 오웰의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강한 인상을 주는 대목이 있다. 자기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을 평가할 때면 백인은 그저 백인이며 다른 인종은 '노란 얼굴'이란 표현을 쓰며 구분을 짓는다. 제국주의에 살고 있던 오웰은 제국주의에서 오는 모든 혜택을 누리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건전하고 신성한 작가란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부조리한 세상과 옳지 않은 행동에 맞서 싸운다고 생각한다. 조지 오웰도 그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동물농장>과 <1984>는 여전히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이 좋아서 그를 좋아하게 됐지만 책에 비해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모든 인간은 완전 할 수 없다'라는 식상한 말에 동요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