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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Jul 10. 2024

우리 모녀는 적응 중

상봉과 시드니 

 아이가 호주로 간 지 반년이 되어간다.


  아이는 처음 아는 사람이 없으니 언니가 출근했을 때는 혼자서 다른 도시로 가보기도 하고 운동도 하며 나름 하루하루를 보냈으나 진정 마음은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저녁마다 울기도 하고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며 스스로의 정체성과 이곳에 왜 왔는지에 대한 답을 찾느라 애썼다. 


 지금 아이는 언니가 퇴근해도 만날 수 없는 날들이 많아졌다. 교회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오히려 언니가 둘째를 데리러 가기도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리고 호주친구 중 한 아이가 중국 간다고 송별회도 해주는 모양이었다. 피식~웃음이 난다. 이 아이가 자신의 매력으로 사람의 지경을 넓히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특하고 용하다.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건, 개인적인 시간을 내어 만나는 사람이 생긴다는 건, 가볍게라도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건 잘 적응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딱 1년이 됐다.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퇴근해 일찍 자니 이 도시와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은 주변이 낯설고 내 동네 같은 편안함은 없다. 전에 살던 곳은 아는 사람 천지에 전화 한 통이면 나와 줄 사람들이 주변에 그득했다. 


 이곳은 전화할 사람도 가볍게 차 한잔 같이 마셔줄 사람도 없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그런 지인이 그리웠고 필요했다. 성격에 안 맞게 여기저기 기웃기웃했지만 역시나 동네지인 만들기 실패!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합류했고, 12주간을 열심히 다녔다. 그곳 분들과는 눈인사만 나눌 뿐 해야 할 것들이 많아 말 섞기도 어려웠다. 출간회를 끝내고 한 분의 주도아래 섭섭하니 만나자는 연락이 왔고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다들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 분들이라 집 앞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집 앞이라 부담도 없이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갔고 얼굴만 낯익은 분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동네 주민이라는 매력적인 이유로 꽤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음 모임 날을 잡고 돌아오면서 문득 우리 아이가 생각났다. 


 아이도 그곳에서 사회적 지경을 넓히며 적응 중인 것처럼 나도 이사한 곳에서 동네주민들을 만나 이웃의 지경을 넓히며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아, 인간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적응이라고 하는구나!


 골목이나 식당들이 내 눈과 관계를 맺으며 낯익게 되고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면서 편안해지고 비로소 내 동네가 되어가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얼굴이 낯익고 차츰 말이 섞이고 마음이 익숙해지면 편안해지는 이런 과정을 우리는 적응 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리라!


 아, 이 적응이 끝나면 또 다른 적응거리들이 생길 텐데 우리는 죽는 날까지 "적응했어."가 아닌 '적응 중'의 삶을 살겠지. 생각만 해도 한숨이 나온다.  나오려는 그 숨을 부둥켜안고 용기 내본다. 


 어디, 덤벼봐라 다 적응해 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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