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사양>을 읽고
밖은 늦은 시간도 아닌데 이미 어둑어둑해진다. 가을이라고 새벽녘과 늦은 오후에는 이미 저녁같이 어둡다. 더구나 비가 오는 가을날은 종일 스산하니 어두컴컴해 불을 켜두어야 한다.
이런 날은 일하지 않고 종일 집에서 뒹굴며 자고 난 뒤 나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파자마를 입고 식사보다는 한잔의 차와 책을 읽는 상상을 한다. 그럴 때 당연히 내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책일 것이다.
우연찮게도 두 개의 독서 동아리 책의 작가가 다자이 오사무라 <인간실격>과 <사양>을 읽으며 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몇 년 전에 <인간실격>을 읽고 이미 다자이 오사무의 팬이 되었고, 그 이후로 <만년> <단편선> <내 마음의 문장들> <다자이 오사무 비평> < 사양 >등 내 책장은 작가의 책들로 채워져 간다.
너무나 유명한 <인간실격>을 읽으며 주인공 요조의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 인간 모두가 힘겹게 살고 있음이 위로가 됐었다. 내용이 시종일관 어둡고 잔잔하게 고백조로 이어짐에도 너무 재밌어서 마치 내가 그 속의 여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으로 안타깝게 읽었다. 이해할 수 없는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곱씹어 생각하며 인간에도 기준이 있어 내 기준은 무엇일지,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실격을 당할 인간이 참으로 많음을 한탄했다. 서늘하지만 참 따뜻했다.
<사양>을 손에 들고 가슴이 설레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나에게 잠깐의 휴식 같다. 책이지만 그냥 아주 천천히 가라는 신호이자, 세상엔 이런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런 생각을 하는 민감한 사람도 살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부드럽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차분히 설득한다. 나는 이런 문체가 너무 좋다.
자칫 잘 못 읽으면 '같이 죽자'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데 주인공 가즈코의 살아내겠다는 의지와 혁명을 통해 치열하더라도 '살아내자'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가즈코의 동생 나오지를 통해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내적 갈등과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결국 나는 죽음을 선택했다는 자신의 죽음의 당위성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지도 않고 저러지도 않는 목적과 방향성을 갖겠다는 목표를 갖는다.
가을을 타는 사람,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고 자책하는 사람, 마음이 울적한 사람, 상처로 인해 마음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 좀 더 분명한 인생관을 갖길 원하는 사람, 내 삶에 대해 성찰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계절에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