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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의 전성시대 Oct 22. 2024

전학 온 학생에게 쌍욕을 들었다

생전 처음 겪은 일

 매년마다 이상하게도 힘들게 하는 반이 꼭 있다. 초기에 반 분위기가 이루어지는데, 어떤 학생들의 그룹이 장악하느냐에 따라 학습태도며 심지어 성적까지도 좌지우지될 정도로 반분위기는 중요하다. 


 올해도 한 반이 유독 모든 선생님을 힘들게 했는데 이 중에는 전학 온 학생도 섞여있었다. 이 친구는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표정에 반항기가 느껴지는 아이였는데 어떤 친구인지 자세히 알기는 어려웠다. 1학년부터 6년을 지켜본 아이들은 내가 키운 느낌이 들지만 다 커서 전학 온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만 보기 때문에 알 시간이 부족하다. 


 전학 온  이 학생도 관찰 중에 있었는데 작은 일이 발생했고 아이의 거짓말을 확인하게 되어 꾸짖는 일이 있었다. '한 주 동안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하고 보냈는데, 다른 일정이 겹쳐 2주 뒤에나 만나게 됐다.


 3일 뒤쯤, 여학생 무리가 오더니 주저주저하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다. "뭐야?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하니 "선생님 이거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한다. 그러나 이미 입 밖으로 뱉은 말이니 어서 해보라고 했다. 그 아이가 화장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며 심한 욕을 했다며 그럴 수 있냐며 자기들이 더 흥문해했다. 


 띠로리! 살면서 처음으로 들어 본 신박한 욕이었다. 


 "뭐라고? 선생님에게 그런 욕을 했다고!" 하며 반응하려 했으나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선생님 왜 웃으세요? 더 무서워요." 한다. 사실 화가 나기보다는 내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났다. 나도 친구들과 만나면 담임선생님 욕을 그렇게도 했었다. '담탱이'라고 부르며 욕까지는 아니지만 험담을 하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이 아이도 그랬을 거다. 더구나 다른 아이들 앞에서 가오도 잡고 싶었을 거다. 또한 전학 온 지 얼마 안 돼서 나와도 깊은 라포를 형성하지 못했기에 아이는 쉽게 그럴 수 있었을 거다.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해는 이해고,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욕하는 못된 마음은 훈육해야 한다. 나는 1안부터 5안까지 시나리오를 짜고 어느 것으로 선택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수업하기 며칠 전에 스스로 찾아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대뜸 보자마자 사과를 한다. "나한테 000이라고 욕했다며? 사실이니?"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일단 아이에게 이 일이 얼마나 큰 일인지 느끼게 해주어야 하기에 교육청에 신고할 수도 있음을 명시했다. 그리고 내 기분이 어떨지, 그 욕을 들은 다른 친구들의 기분은 어떨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아이는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연신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나는 아이에게 첫째로 이 욕의 어원과 뜻에 대해 조사해 적고, 둘째로 선생님에게 욕할 때의 마음을 설명하고, 셋째로 지금 나에게 사과할 때의 심정을 1500자의 글로 적어오라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아이가 깨닫는 바가 있어야겠기에 논술적으로 접근했다. 


 아이는 다음 날 찾아왔고 "이거 쓰느라고 2시간 걸렸어요." 하며 <반성문>이라고 쓰인 글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예전에 반성문을 꽤 써본 듯 자연스러웠다. "난 반성문을 받고 싶은 게 아닌데? 진짜 네 생각이 궁금한 거야."라고 하니 아이는 눈물을 글썽인다.


  "난 네게 화나지 않았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 나도 어릴 때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며 험담도 했단다. 그런데 너의 문제점은 다른 아이들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크게 욕을 했다는 게 문제지. 그건 네 감정을 절제하지도 못하고, 어른에게 쌍욕을 하는 못된 마음에서 비롯된 거잖니? 그런 마음을 네가 고치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라고 이 과제를 내 준거야. 이해되겠니?" 


 아이는 다음 날 쓴 글을 들고 왔고, 나는 아이의 글을 꼼꼼히 읽고 용서하기로 했다. 진심이 느껴지고 당황스러운 아이의 마음도 느껴져서였다. 아마 '뭐 이런 선생님이 다 있지?' 하며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앞으로 다른 욕은 해도, 이 욕을 절대 안 할 것이다. '성적으로 얼마나 나쁜 뜻이 담겨있는지 알고 놀랐다. 다시는 이욕을 하지 않겠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슬픈 사건 속에서도 좋았던 건, 듣고 놀란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2주간 끊임없이 찾아와 고자질을 해 준 것이다. 자기들 딴에는 내 편을 들어주고 싶어서 찾아온 것인데 나는 "알고 있다고!"를 계속 계속 말해야 했다. 6년을 키운 고자질해 주는 내 새끼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살면서 제자에게 쌍욕을 들은 나는 오래 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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