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호텔에 부모님 가시라 예약해 드렸는데 하필 이날이 메밀꽃 축제라 아빠가 일하러 가셔야 해서 우리 가족이 대타로 가기로 했다. 호텔이라 우리 집 금쪽이인 알콩이는 엄마에게 맡기기 위해 평창에 들렀다 가야 했다. 7시 되기 전에 출발해 열심히 달렸더니 9시 전에 도착했다. 이날 딱 맞게 효석 문화제의 일환으로 백일장과 사생대회가 열리는데 시간이 9시였다.
나는 되든 안되든 글쓰기 대회 나가는 걸 즐긴다. 글 쓰는 것도 좋고 잘 쓰면 상도 주고 상금도 주는 아주 재밌고 신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쌓이니 시인도 되고, 시장상도 타고, 어느새 두 권의 책을 낸 작가도 되고, 여러 번의 상금을 타서 쏠쏠하게 기부도 하고 플랙스도 해봤다. 무엇보다 상을 타게 될 때의 희열이 좋다. 물론 늘 상을 받는 건 아니지만 이런 기회를 열어놓는다는 것이 매일의 인생에서 작은 낙이다.
시간 맞춰 갔는데 아무도 없고 주최 측도 없고 물어볼 데도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에잇, 시골이라 준비가 영 허투루 하는구먼!'하고 생각하고 돌아가려는데 가족들이 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기다리라 한다. "왜 그래, 시간 안 맞으면 안 해도 된다니까!" 아무리 말해도 안 들리나 보다. 어찌어찌 엄마네 갔다가 다시 가서 아이가 현장 접수하고 이동한다길래 아무것도 준비 못하고 쫓아갔다.
심지어 볼펜은 각자가 준비하라는데 내 손엔 덜렁 핸드폰 밖에 없어서 엄마가 아시는 분께 볼펜을 빌려 '일반부 백일장'이라는 팻말을 따라나섰다. 팻말을 따라 줄을 서서 이동하는데 시골장터를 돌아 길을 건너 생전 처음 보는 면사무소까지 가게 되었다. 다 큰 어른들 50명 정도가 줄을 나란히 서서 가는 것이 너무 귀엽고 우스웠다. 글쓰는 장소인 회의장 한쪽 벽엔 역대 면장님의 사진들이 옛날 대통령 사진처럼 쭉 걸려있어서 이질적이고 너무 옛스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원고지를 받아 적으려는데 "앗!" 이번엔 볼펜이 말썽이었다. 나오지 않는 펜을 주신 거다. 조용히 손을 들고 펜을 빌려달라니 하나도 없단다. 에효, 이번 글쓰기는 하지 말아야 하는 거였다. 뭐가 이리도 정신이 없는지! 다른 참가자가 여분의 볼펜을 빌려주셔서 감사하게 가져왔건만 잘 나오지 않는 펜이었다. 이거라도 감사히 받아 열심히 적었으나 글씨는 엉망이었고, 커피도 안 마시고 글을 쓰니 머리는 지끈 지끈이었다. 글 쓰고 밖으로 나오니 살짝 어지러운 게 빈혈 오는 듯 극심한 배고픔을 느꼈다.
이거지! 이게 글 쓰고 난 뒤의 후유증이자 뿌듯한 한 그 무엇이지! 이 기분을 느끼려고 빛만 보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글쓰기만 보면 달려드는 나였다. 가족들이 모인 곳으로 와 아이스 라테를 완샷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다들 시상에 어찌나 관심들이 많은지, 되면 좋고 안되면 안 좋은 거다. 나는 지금 이날 이 시간 이 기분을 느끼니 이미 상을 받은 것 같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면 고단 뿐이지만 좋아하는 일하며 돈을 버는 건 보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상을 받기 위해 글을 쓰는 건 부담이지만 글을 쓰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은 뿌듯함의 상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시골 백일장에 참가했지만 시종 우습고 재미있는 경험이자, 90세 나이 드신 분까지 신청한 대회를 보며 전국에 글을 사랑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는 걸 알게 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