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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나고 찾아왔습니다!

by 영자의 전성시대

늘 궁금했던, 가끔 생각날 때마다 기도했던 제자가 있다. 좋은 고등학교 간 뒤, 찾아와서는 자기는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며 너무 힘들어 약을 먹고 있다 했던 아이인데 아이의 눈빛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어찌 될까 봐 아이들 편에 수소문도 해보고 언제 찾아올까 기다리던 아이인데 그 아이가 드디어 찾아왔다.


퇴근하려고 서두르는데 아이가 약봉투를 들고 복도에 서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 배시시 웃으며 반기고 나는 덥석 나보다 큰 아이를 안아주었다. "선생님, 수능 끝나서 찾아왔습니다." 하며 씩씩하게 이야기하는데 아들이 있으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마치 군대 갔다 돌아온 아들을 맞는 것 같은 기분으로 아이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역시나 아이는 여전히 힘든 터널을 넘는 중이었고 똘똘했던 아이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성적의 계급이 나뉘는 사회다 보니 아이는 환경에 한번, 성적에 다시 한번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더해 불미스러운 사건까지 덮치며 아이는 진짜 나락을 경험하면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낫겠다는 체념을 선택하려 했다. 그래도 아이는 남아있는 힘을 내어 주위에 손을 뻗었고 다시 살아낼 수 있었다.


아이와 어슴푸레한 저녁, 간식을 먹으며 주위의 가벼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아주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이는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3년간의 생활을 들려주었고 상황이 변할 때마다 어떤 기분인지도 자세히 표현해 주었다. 역시 아이는 똘똘해서 자기감정의 원인과 선택의 실패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사건을 만든 것도 결국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난 온몸으로 아이를 공감해 주었고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듣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나의 생각을 아이에게 조근조근 전했다. 먼저는 어떤 것도 애쓰며 노력하지 말기. 누군가에게 혹은 나 자신에게 그럴듯한 사람이 되어보려는 이유에서 무언가 하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대신 내 영혼을 위해, 아픈 마음을 위해 해주면 좋을 경험들을 다양하게 시도하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혼자 여행하기, 혼자 영화 보기, 교회 다니며 친구 만들기 등등


아이는 진지하게 들으며 여전히 남의눈을 의식했던 자신을 깨닫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대답해 주었다. 결국 모든 선택은 내가 하고, 결과의 영향은 고스란히 내가 받는다. 그걸 피하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 보지만 나 때문인 것도 결국 스스로는 알고 있다. 이 사실을 꼭 집어 확인해 주었고, 아는 것을 피하지 말고 이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만 찾아서 다음에는 약 없이 살 수 있는 삶을 살아보자 약속했다.


돌아오는 길은 퇴근시간으로 길이 꽉 막히고 어두워 매우 깊은 밤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예전 어릴 때 키던 형광등 불빛같이 훤하다. 아이의 삶이 당장 LED전등처럼 밝지 않겠지만 이제 형광등 불빛처럼 음영이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어둠만 있던 아이의 삶에 빛도 비치기 시작한다. 아이의 눈이 빛을 찾아내고 있다. 그게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약을 줄였다며 희망을 보는 아이가 소망을 보는 아이가 되길 기도한다.


아가, 대학이나 다른 이의 눈이 아닌 네 눈에 비친 네 모습을 바라보며 잘 회복하고 성장하길 선생님은 축복하며 기도한다. 언젠가 다시 네가 찾아와 "선생님, 이젠 약 먹지 않아도 행복합니다." 하는 그날을 꿈꾸며 선생님은 기도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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