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남독녀인 나는 사람 많은 곳으로 시집가길 원했다. 명절마다 북적이는 집들을 보면 꽤 행복해 보였고, 멀리 시골로 가는 집들을 보면 왠지 따뜻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결혼을 한다면 내가 며느리 인지도 모를 만큼 식구가 많은 집의 남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남편은 막내다. 위로 형이 단 한 명 있는 막내. 모두 모여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아주버님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뒤로, 나는 외며느리와 외딸 노릇을 해야 해서 우리 집으로 부모님까지 오셨지만 10명이 안 되는 소가족이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며느리와 딸의 노릇을 야무지게 해야만 했다.
평소 안 하는 음식부터 청소와 2박 3일을 무얼 하며 지낼지 계획을 세우는 것까지 진두지휘해야 했다. 추석에는 토란국을 끓이기 위해. 설날에는 떡국 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고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의 메인 요리는 어떤 걸로 할지 고민하고 혹여나 양가 부모님이 무료하실까 드라이브를 가거나 산책을 유도하고, 저녁 식사가 끝나면 평소 부모님들이 못 드셔 봤던 디저트를 생각해서 준비하면 하루가 갔다. 그리고 밤에는 코를 골며 잠이 들었으리라.
이번 추석은 달랐다. 형님이 잠시 한국에 들어와 계시고, 부모님이 아프셔서 못 오시는 바람에 가까스로 5명이 만나 명절을 보냈다. 대신 영상통화로 미국과 호주로 연결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안 되는 식구들이 글로벌하게도 흩어져 있어 아주 조촐했다. 음식도 단출하게, 한 차로 이동해서 바람도 쐬고 돌아왔다. 나머지 시간은 집에서 쉬는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니 쉬고 있는 어색한 지금도 좋고, 정신없이 명절을 보낸 그때도 좋았다. 1년에 두어 번 정도 양가 부모님을 모셔서 우리 집에서 나의 요리를 대접하는 것, 그분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은 보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네가 아니면 내가 이걸 어디서 먹겠니?”라든지, “어우, 이것 참 맛있다.”, “이렇게 바람 쐬니 너무 좋구나.” 등등 이런 소리를 들으면 작은 효도를 한 것 같아 뿌듯했었다. 그래서 힘은 들지만 마음은 힘이 났다.
지인이 나에게 물어왔다. “이번에는 쉬어서 너무 좋았겠어요?”
나는 “네, 좋았어요. 그런데 예전도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