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비아 카사리아 - 5. 인사까

by 땀에젖은개발바닥

봉사자들의 하루는 종종 인사까에서의 모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인사까(Insaka)는 잠비아에서 공동체가 모여 논의를 하는 장소이며, 벰바어(현지 언어)로 “모이는 장소”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형태는 여러 나무 기둥이 원형으로 초가를 지지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초가는 마치 베트남 전통 모자인 “논”과 비슷합니다. 이는 개미산(개미가 수백 년간 쌓아 올린 구조물) 위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작은 언덕 위에 올라간 듯 느껴지기도 했으며, 따라서 이곳에 올라가 이따금씩 일몰 미사를 드리고, 일출을 구경했습니다.

숙소 바로 맞은편에 인사까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주로 저녁 미사 이후 하늘이 진하고 선명한 감색으로 변했을 때, 인사까로 올라갔습니다.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옷을 한 두 겹 더 껴입고 외출을 합니다. 계단을 올라 고개를 숙여 인사까 입구를 통과하면 세 개의 모닥불을 중심으로 의자가 빙 둘러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저녁 모임을 주관하셨고, 봉사 첫날, 카사리아를 떠나기 하루 전 날 등 가끔 이곳에 앉아 지난날의 소회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는 의도적으로 휴대폰 빛을 차단하고 서로의 목소리와 타오르는 숯불에만 의존했습니다. 상대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각각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지금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봉사를 하며 무엇을 느꼈는지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밤에 타오르는 차콜과 다음날 새벽까지도 여전히 꺼지지 않은 불

낮과 저녁, 주어진 일을 수행하는 것 외에 이와 같은 봉사자들만의 시간 속에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함께하셨던 분들의 연세는 대부분 황혼 무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리하시는 분, 인생의 새로운 챕터로 넘어가시는 분, 본격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신 분 등 삶을 통튼 여러 사연과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가 생각지 못한 산전수전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까지나 단편적이지만, 지나온 시간과 기억하는 것들을 긍정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하루에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떠올린 것은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이 때문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침 인사까 모임 다음날이 아빠의 생신이었습니다. 함께 있지 못해 선물을 드리거나 파티를 함께하기 어려워 어떤 방법으로 축하를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그 “표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였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와이파이가 되는 존으로 달려가 아빠께 보이스톡을 걸었습니다. 민망함에 그리 좋은 말투는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큰 용기를 내서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단어를 고르자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저는 당시 그 순간을 기적이라는 단어로 기록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매년 버킷리스트 1번에 적어두기만 하고 미루기만 하던 표현을 단번에 할 수 있었으니까요.

전화기 너머로 이제껏 들어왔던 아빠의 웃음소리 중 가장 기쁘고 커다란 웃음이 전해졌습니다. 아빠의 반응이 한동안 맴돌아 아무도 없는 방에서 잠시 펑펑 울었습니다. 괜한 미소가 자꾸 지어지고 너무 행복해서, 올해 아빠께 좋은 선물을 드린 것 같다는 뿌듯함이 뒤섞여 폭발한 감정이었습니다. 곧 아침 식사를 하고 팝콘을 튀겨야 해서 재빨리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관성 때문인지 귀국 후에는 다시 표현을 어려워하고 있지만, 그래도 확실히 아빠와 나 사이의 대화의 온도가 따끈해졌습니다. 뜨겁게 끓어올라 터져 버리거나 냉소적으로 차갑게 식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졌습니다. 점점, 나름 괜찮아지는 관계가 마음에 듭니다.

자, 이야기의 마무리입니다. 한참 스토리 공유를 하다 보면 타오르는 차콜 아래 묻어둔 감자와 고구마가 노릇노릇 익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운 감자를 베어 물며, 오늘 일기에는 무엇을 적을지 고민하며 이야기 나눔을 마칩니다.

모두에게 따뜻한 감자처럼 포근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의 이전글잠비아 카사리아 - 4. 일하러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