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요 Feb 21. 2024

메추리알의 절규

메추리알이 간장 그 자체가 된 건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설탕과 케첩을 듬뿍 올려 만든 일명 "계란피자"를 시작으로, '오이, 통깨, 햄, 떡갈비' 등등 어린 나이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재료를 활용한 주먹밥이라던가 '오징어, 깻잎'처럼 내가 좋아하는 재료 듬뿍 넣은 떡볶이 등 일단 생각나는 건 모조리 만들고봤다. 그 결과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계란말이, 각종 볶음밥은 물론 어묵국같이 쉬운 요리를 만들 수 있었으며, 맞벌이로 바쁜 엄마를 대신해 오빠 밥을 챙겼고, 때때로 아빠의 술안주도 만들어드렸다. 거의 뭐 요리와 호형호제했달까?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니 있었던 것 같다. 나 스스로는 몰랐지만, 남들은 다 알았던 단 하나의 문제 '맛'. 그렇다 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요리똥손이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내 첫 메추리알 장조림은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다. 맞벌이로 너무 바빴던 엄마는 반찬을 만들 시간이 없었고, 우리의 식탁엔 다양한 메뉴가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때때로 반찬 만들기에 도전했는데 맛 내는 센스만 평가했을 땐 둘째가라면 서러운 똥손이지만, 나름 눈썰미는 좋아서 엄마의 조리과정을 한 번이라도 본 음식은 비스무리 하게 만들 수 있었다. 양념비율까지 따라 하진 못하니 맛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고작  메추리알장조림 따위 기억대로만 한다면 문제없을 터였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는 데에서부터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메추리알을 두 판쯤 삶고, 엄마랑 껍질을 같이 까다가, 못생긴 건 내가 먹고....'

그다음이 문제였다 아무리 떠올려 봐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마도 껍질 까던 메추리알을 하나 둘 집어 먹다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다음 과정엔 관심이 없어져 TV를 보러 가지 않았을까? 아무튼 지금은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의 반찬을 애타게 기다릴 가족들을 위해 힘을 내야 했으니.


그래, 걱정할 것 없다. 내가 누구인가! 초등 저학년 때 계란피자를 발명하고, 오빠의 점심을 챙기며 요리와 호형호제하던 사이 아니던가. 실패할 거라는 생각은 아주 그냥 0.0001%도 없었다.
"메추리알 그까이꺼 뭐 대충 간장만 넣으면 되지"


그리고 나는

정말로,

참말로,

진실로,

간장만을 넣었다.


메추리알과 간장만이 오롯이 조려지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라! 메추리알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죄 없이 고통받던 내 첫 메추리알은 결국, 간장 그 자체가 되었다.


절규하던 메추리알에 얼굴이 있었다면, 그것을 맛본 후 나를 바라보던 우리 아부지의 표정과 같지 않았을까. "아부지 미안♡"



메추리알 장조림

똥손을 위한, 똥손에 의한, 요리 똥손의 레시피/맛있어요/진짜예요/믿어주세요/


재료

* 본 재료 : 깐 메추리알 500g, 통마늘 10개, 꽈리고추 10개, 다시마 2조각

* 조림 장 : 물 2컵(400ml), 진간장 4T, 국간장 2T, 참치액 1T, 설탕 3T, 맛술 3T


조리과정

1. 깐 메추리알은 깨끗한 물에 여러번 세척하여 준비한다.



2. 갈라지거나 벗겨져 노른자가 보이는 메추리알은 자칫 비린내가 나고 맛을 해칠 수 있으니 골라내어 사랑스러운 나의 입에 쏙 넣어주자.



3. 꽈리고추와 마늘은 깨끗이 세척 후 꼭지를 제거한다.



4. 냄비에 다시마를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는다.

-우리 요똥들에게 과정 간소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5. 강불에 올리고 바르르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인다.



6. 중불로 5분간 끓인다.

- 오래 끓일 것 없다. 나를 믿어라, 다들 알지 않은가 내가 요리와 어떤 사이인지! 단 5분이면 충분하다.



7. 불을 끄고 다시마를 넣은 후에 완전히 식을때까지 그대로 둔다.



8. 완전히 식으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보관 용기에 담는다.



9. 밥과 함께 맛있게 먹으며 "아니, 이걸 내가?" 라고 감탄한다.

-냉장고에 들어갔다 나온 메추리알 장조림은 간이 배어 맛도 색도 예뻐진다. 식은 후에는 단짠이 더 잘 느껴지기 때문에 밥도둑으로 변하는데 이때 반찬가게 창업을 꿈꿀수도 있으니, 나의 멘탈을 잡도록 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