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가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린 상황. 의연하게 대처하고 주어진 시간을 덜 불편하게 보내는 것을 목표 삼기로 했다. 아직 남은 가족들의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정확히 결정지을 수 없는 일정들이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려 애썼고 그리하였음에도 아이들은 때때로 불안해하고 문득문득 짜증스러워했다. 우리가 처한 이 상황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어찌 편안할 수 있을까. 어쩌면 아이들이 엄마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을지 모르겠다.
수동 감시 대상자에서 확진자로
아들은 지난주 내내 검도관에 수련하러 갔다. 그리고 이번 주 월, 화요일엔 비염(지금 와 생각하면 코로나 증상) 때문에 쉬었다. 검도관 확진자는 22일 마지막으로 더는 수련하러 오지 않았다 한다. 아들과 마지막으로 동선이 겹친 날짜가 22일 일뿐, 아마 그전에도 내내 부딪쳤을 것이다. 아들과 유난히 친한 형이었고 엄마의 추정에 의하면 검도관에서는 엄하게 사범님들이 감독하니 마스크를 철저히 썼을 듯하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조금 흐트러지지 않았을까 싶다. 운전하는 기사님이 그런 단속까지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들은 아마도 그 형아 옆에 붙어 앉아 형아의 핸드폰을 함께 들여다봤을 확률이 크다.
먼저 확진되었던 아이는 아마 부모나 형제가 확진되어 22일 이후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듯싶고, 그 아이가 확진된 것은 29일. 내 핸드폰으로 보건소의 문자가 날아든 것도 29일 오후였다. 이미 일주일이나 경과한 데다가 아들에게 특별한 증상이 없다고 여겼던 우리 부부는 마음이 조금 불안했지만 음성이 나올 거라 예상했고 그래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않고 (다음날 아빠와 누나가 정상적으로 출근, 등교할 수 있도록) 늦은 저녁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다.
그러나 아침 7시, 검사받은 병원에서 확진되었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9시 전후로 보건소에서 연락이 올 거란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확진 확인 후 바로 해야 했던 조치
그렇잖아도 확진자가 넘치는 이 상황에 보건소에서 전화가 일찍 걸려오리란 보장이 없었고 9시는 이미 등교가 이루어진 후의 시간이기 때문에 지체 없이 두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연락했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보고한 후, 다시 전화를 걸어 아이의 동선을 체크했다. 보건소의 연락이 닿을 즈음엔 이미 모든 아이들이 등교 완료한 후일 가능성이 높다며 학원에도 직접 전화를 걸어 아이와 시간이 겹치는 친구들에게 등교하지 말 것을 전달해달라 부탁하셨다. 전화를 끊고 바로 영어학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고, 영어학원 선생님은 아들과 같은 시간 학원에 있던 아이들에게 연락을 주시겠다 하셨다.
체계적이지 않았던 조사과정
아이들의 학교에서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올 때까지도 보건소에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얼마나 확진자가 많다는 이야기인지). 9시 반 즈음 검사받은 병원 관할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왔는데 역학조사관은 아들의 성별도 나이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 알 거라고 생각한 내가 무지했던 듯. 너무 황당했던 건 누구에게 전염되었는지 아냐는 질문이었다. 조금 황당해서 머뭇거리다가 추정되는 아이는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말하니 그제야 그런 걸 말해주지는 않지요, 하더라.
22일 이후의 동선을 물었는데, 생각보다 상세히 체크를 했다. 머문 시간을 정확히 알기 위해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 보라 고도했다. 극도로 조심했고 간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면밀히 살펴보니 나름 여기저기 들른 곳이 있었다. 다행인 건 모두 자차로 이동했고 마스크 벗는 곳은 가지 않았다는 거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외식하지 않은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던 순간이었다.
감사했던 아들의 담임 선생님
역학조사관과 통화를 끝내고 남은 세 식구 코로나 검사하러 가려고 준비하던 중에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의 반은 우리 아이의 코로나 확진으로 등교 중지되었고 반 친구들은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이 상황이 엄마인 나도 가슴이 쓰린데 마음 여린 아들은 오죽할까. 비염 증상이 나타났을 때 코로나 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던 건 우리 식구가 정말 조심하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했고, 월요일 비염으로 진료받았던 소아과 선생님이 등교해도 상관없다 말씀해 주셔서였다. 늘 비염으로 진료받던 아이이고 열이 없으니 그리 판단하셨던 것 같다.
마음이 너무 무겁단 나의 말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말라며 지금 너무 많은 확진자가 나오고 있고 우리 아이의 반뿐 아니라 다른 반도 이미 등교중지가 된 반이 있으며 형제자매들까지 연결되어 등교 못 하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셨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마음 편히 가지고 아이를 잘 돌봐주란 말씀에 가슴이 찡했는데, 옆에서 웅얼대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아이가 풀이 죽어있는 것 같은데 절대 그럴 필요가 없다고 꼭 전해달라셔서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나머지 세 식구의 코로나 검사
아들의 코로나 확진으로 나머지 식구들의 일상도 멈췄다. 주로 집에 머무는 엄마야 큰 상관이 없었지만 남편과 딸아이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이 주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학생 누나의 기말 시험이 끝났다는 것이고 학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라는 거다. 남편은 중요한 일들을 앞두고 있어서 모든 업무를 전화로 진행하느라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살아야 했지만 어쨌든 음성이 나와도 당장 출근하지 않고(가족이 확진이어도 접종 완료자가 음성이 나오면 주소지 분리 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족들과 동반 자가격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 나로서는 진정 감사할 일이었다.
딸아이의 검사 결과에 따라 같은 반 친구들의 등교 여부도 결정되기 때문에 딸의 담임 선생님은 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길 바라는 눈치셨다. 그래서 3시간이면 결과를 알 수 있다는 다른 시의 병원으로 내달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검색했던 것과 달리 사람이 미어터졌다. 알고 보니 불과 며칠 전 유료에서 무료로 변경되었던 것. 결국 다시 차를 돌려 집 근처 선별 진료소를 찾았고 의외로 대기자가 없어 바로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모녀에겐 첫 코로나 검사였는데 사실 마음이 어수선한 터라 코를 찌르는 그 느낌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진 않았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코가 뻥 뚫리는 기분이라며 반대쪽도 찌르고 싶다고 말해서 한참 웃었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
코로나 검사를 하며 차로 오가는 중에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먼저 관할 보건소로 이관한다는 안내 전화가 걸려왔고 이어서 관할 보건소 담당자가 재택 치료 여부를 확인하고 자가격리에 대한 안내를 해줬다. 일단 나머지 세 식구가 음성 판정이 나온다는 가정하에 접종 완료된 부모는 확진자의 증상 발현일 기준 일주일 경과 후 다시 검사해서 음성이 나오면 바로 수동 감시 대상자로 분류되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미접종자인 누나는 두 번 다 음성이 나온다 해도 여전히 자가 격리해야 한다고. 그리고 다시 열흘이 지난 뒤 세 번째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면 비로소 자가격리가 해제된다고 했다.
반면 확진자인 아들은 증상 발현일 기준 열흘이 지나면 별도의 검사 없이 자동으로 격리 해제란다. 거기서 살짝 당황스러웠다. 딸아이는 동생 때문에 자가격리를 하게 된 것인데 가장 격리 기간이 길다니. 그 긴긴 시간을 예민한 사춘기 소녀가 잘 버텨줄 수 있을까. 버티기야 버티겠지만 수십 번 에미를 잡겠지...
아들의 재택 치료를 선택하고 나머지 가족도 주소지 분리 없이 함께 동반 격리할 것이라 전달하니 담당자는 아들을 비대면으로 치료할 병원에서 다시 연락을 줄 거라며 전화를 끊었다.
생활치료센터 비대면 진료서비스
조금 뒤엔 병원 담당 간호사가 전화를 걸어왔고 핸드폰에 생활치료센터 앱을 설치하라고 했다. 조금 뒤 아이디와 비번을 문자로 보내줄 거고 로그인한 후에 체온을 체크하고 정신건강 자가 진단을 작성하란다. (정신건강 자가 진단 내용이 초등 아이가 체크할 수준이 아니어서 황당했다. 당연히 어린이용도 따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4시에 체온을 기록하고 자기들이 모니터링한 후 전화를 준다고 했다. 필요한 약도 처방해서 퀵으로 보내준다고.
이 모든 시스템들이 각 지자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열심히 검색해 보니 확진자에게 보내는 안내 문자도 천차만별이더라. 조금 더 명확하게 설명해 주면 좋았을 부분이 적지 않아서 아쉬웠다.
격리 통지서와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
조금 뒤에는 격리 통지서와 자가 격리자 안전보호 앱 설치 안내에 대한 문자가 날아들었다. 그런데 역시나 설명이 부족하다. 아들은 미성년자라서 부모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앱 설치는 본인 핸드폰에 해야 한단다. 부모도 자각 격리 대상자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미리 문자를 보낼 때 그 정도는 안내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나머지 세 식구에게는 아직도 자가격리에 대한 안내가 없다.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업무 마비 상태인 건지,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격리 통지서에 서명을 하고 다시 담당자에게 보내야 구호물품을 신속히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얼른 조치해서 전송했다. 네 식구 지지고 볶고 있으니 구호물품이 당연히 도움이 되겠지.
사춘기 남매의 자가격리
아이들이 믿고 의지하는 아빠가 집에 함께 있으니 확실히 덜 불안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함에도 두 아이 모두 감정 기복이 말도 못 한다. 이해하고도 남지만 와중에 수발까지 해야 하는 나는 어쩌나. 일단 아들에게 방 두 개와 화장실 하나를 지정해 줬다. 나머지 공간에는 마스크 쓰고 나와야 하며 될 수 있는 한 가까이서 대화하지 않기로. 밥은 방으로 가져다주고 아이의 공간에 들어갈 때 다른 식구들도 모두 마스크를 쓴다.
바로 어제까지도 비비고 물고 빨며 밥도 내내 같이 먹었는데 과연 이게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래도 시키는 대로는 한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만날 때마다 보호장구 착용하는 건 도저히 못하겠다.
딸아이는 시험기간 동안 제 스스로 반납했던 핸드폰을 시험 끝나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기간이라서 그래도 별 걱정이 안 된다. 가끔 방을 들여다보면 핸드폰과 물아일체가 되어있고, 어차피 이것도 한시적인 거라 오히려 다행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아들인데... 자유롭게 집 안을 다니지도 못하는 녀석이기에 핸드폰이나 패드를 자유롭게 쓰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일단 오늘은 여느 때와 같은 기준을 적용했는데 녀석이 몹시 지루해하고 힘들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몸 상태는 되레 며칠 전보다 좋아졌는데 심적으로 부대끼는지 먹성 좋은 아이가 밥도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과 의논해서 내일부터는 전자기기 활용 시간을 대폭 늘려주기로 했다.
어찌어찌 우리 식구의 자가격리 첫날이 지나갔다. 결코 만만한 시간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나갔듯이 앞으로의 시간들도 그러할 것을 믿는다. 하루하루 더 수월해지면 참 좋겠다.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 엎치락뒤치락하겠지만 무사히만 지나가다오!!
내일, 아니 몇 시간 뒤 세 식구의 검사 결과도 날아들 터인데 어떤 상황이라도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