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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Mar 22. 2022

작은 소용돌이들의 충돌에 대하여

균형과 조화를 위한 우선순위 정하기 



미리 걱정을 한다기보다는 대비해두려는 마음이었다. 워낙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쓸데없이 불안하고 예민한 부분이 적지 않다. 내가 통제 못하는 상황을 힘들어하지만 그렇다고 나 자신을 적절히 조절하며 살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이 불현듯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깨닫게 해주는 급브레이크 역할을 한다면 남편은 내가 천천히 시속을 확인하게 도와준다. 하지만 역시 그런 부드러움은 내가 경계를 지키고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물론 나는 그다지 모험심이 있지도 에너지가 넘치지도 않기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때로 소박하다 여기는 작은 욕심들이 여럿 뭉쳐지며 내가 예상하지 못한 부담이 어깨에 내려앉을 때 그 모든 일을 벌인 게 나이면서도 감당 못해 쩔쩔맬 때가 있다. 



올해 이렇게 정신 없어질 줄 정녕 몰랐다. 늘 하던 대로 이따금 강의를 하게 될 거고 제대 봉사를 그만둔 뒤 반년 가량 쉬고 있었으니 성당에서 봉사를 하나 맡아하리라 다짐했다. 예전에도 이 정도 수준이었고 글쓰기 모임, 독서토론, 낭독과 캘리 수업, 부모 기도 학교 등을 부수적으로 번갈아 곁들였던 것 같다. 최대 다섯 가지 일에 참여하며 매일 3가지 인증을 해야 했던 때는 버겁다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때도 남편은 그렇게 지내는 너 진정 행복하니, 하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정해진 일정이 있었기에 일들은 순차적으로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연이어 겨울방학을 맞이하면서 나는 오로지 엄마로서 주부로서 역할만 하게 되었다. 방학이니 강의는 없었고 성당은 주일만 지키면 되었고 모든 수업은 종강되었으니까. 오로지 매일 글쓰기 모임만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일이란 게 연거푸 생기게 마련이고 하는 사람에게 몰리는 거라더니 내가 딱 그짝이 되었다. 나름의 욕심도 있었고 하나같이 하고 싶던 일들이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강의는 하나가 더 추가되면서 실지 강의 빈도는 차치하고 준비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상황이었는데 딱 그즈음 상담을 다시 하게 된 것이다. 성당 봉사도 그랬다. 아들이 복사를 하게 되면서 이래저래 성당을 드나들 일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여기저기서 청해주셔서 나름 고민 끝에 전례부에 들어가기로 결심을 했다. 제대 봉사처럼 긴 시간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가벼이 생각했다가 놀라고는 있지만 내게 제대 봉사만큼 잘 맞는 일이라 여기던 중에 좀 더 내실을 채워보자 하고 성경공부 모임에 들어갔다. 거기까지였어도 괜찮았을 것을, 연이은 전화와 부탁, 사정과 읍소로 중 고등부 자모회까지 맡게 되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들면 상담 말고는 정해진 일정이 명확하지 않다. 상담조차도 내담자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하고 중간에 얼마든지 드롭아웃될 수도 있는 터. 강의도 줄기차게 밀려드는 것만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때를 선택할 수 있다. 전례 봉사는 한 달에 서너 번이고 아들의 복사 일정과 조율도 가능하다. 성경공부는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참여한다. 그나마 부담스러운 것은 단체장을 맡아 임명장까지 받은 청소년위원회 소속의 중 고등부 자모회인데 주로 하는 일은 아이들 간식 준비와 나눠주기이고 도와주는 분들이 많으니 나는 주로 조율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지만 슬이 때문에 거의 청년 미사를 빠뜨린 적이 없었고 회의는 한 달에 한 번이다. 



사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지체 없이 일을 벌였고 걱정하는 남편에게도 이렇게 설명해왔다. 하지만 나를 잘 아는 그의 지적에 나는 다시 골똘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각각의 일들에 필요한 에너지의 총합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면 안 된다 했다. 일의 규모보다 성격을 감안해야 하는데 내가 하는 일들의 성질은 부수적인 일들이 예고 없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강사단 일은 내가 총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잡무가 상당히 많다. 강사 의무 규정인 상담봉사도 꾸준히 해야 하고 강의가 밀려들면 내게 일 순위로 배정된다. 내 상황과 사정을 배려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부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담의 경우 센터 운영에 불편을 주면 안 되므로 내가 편한 시간을 고집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케이스가 늘어나도 거절하기 어렵다. 성당 봉사도 더러 만나는 비협조적인 학부모와 맞닥뜨리게 되면 내가 준비해야 할 일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남편은 아무리 소박한 일들이라 해도 그 일들의 소용돌이를 감내해야 하는데 그 소용돌이들이 동시다발로 발생하여 서로 충돌하게 되면 네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고 했다. 그나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니 화가 나진 않겠지만 속상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들이 가정과 아이들에게 영향, 정확히는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조금 냉철하게 일이든 봉사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한두 가지를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조언이 적확하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는다. 그간 비슷한 일들이 있어왔을 때 그가 싫은 소리 몇 마디는 했을지언정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별문제 없이 지나갔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에 비해 내가 벌인 일이 더 많고, 그는 그때에 비해 많이 바빠져 여유가 없다. 무엇보다 가정과 아이들에 대한 그의 헌신과 애정은 어디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공고한 것이라서 거기에 구멍이 보이면 몹시 힘겨워할 것을 알기에 내 마음도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생각이 많을 뿐 물리적으로 바쁜 것은 아니라서 냉철한 정리가 쉽지는 않지만 닥치기 전에 교통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속들이 마음까지 파헤치며 우선순위를 정리해야 하는 숙제가 내게 떨어졌다. 이 작업을 해나가면서 이다지도 소박한 나,라고 믿었던 나의 욕심 범벅 실체와 직면해야 할 테고 내가 왜 그래야만 했을까를 떠올리면서는 나를 더 애틋하게 여기게 될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늘 가슴에 품고 있지만 끊임없이 조율해나가야 하는 균형과 조화라는 과제와 다시 한번 씨름하게 되었다.  




© Pexels,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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