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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Mar 14. 2022

학급 임원 선거와 남매

사춘기 남매 엄마의 균형 잡기 


가만히 떠올리면 가슴 저릿하지 않은 자식은 없겠지만 그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 녀석이 있기는 한 것 같다. 같은 녀석이라도 기쁨을 주면서 충만한 행복감에 젖게 할 때가 있고 안타깝고 짠해서 가슴을 콕콕 찌르는 아픔 때문에 몸서리치게 하는 때도 있다. 어느 쪽의 빈도가 잦은 녀석이 누구였던가 되짚으면 각각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어느 것이 더한 사랑인 줄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어른들은 우는 아이 먼저 젖 준다고도 하고, 속 썩이는 자식이 효도한다고도 하지만 공평을 외치는 부모와 억울함을 가슴에 새기는 자식은 천지에 널렸고 그렇다 보니 대개는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여기게 된다. 동기간에 질투와 경쟁은 지극히 정상적인 발달과정이지만 그 안에서 적확하게 판단하고 적절히 조율하는 부모는 결코 많을 수 없을 거다. 나 역시 두 아이 모두에게서 불평과 원망을 듣고 있는데, 굳이 따져본다면 맏이인 딸의 불만이 더 많고 구체적이다.



딸아이가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나는 정말로 당당하게 조목조목 반론을 이어가는데 솔직히 켕기는 구석은 별로 없다. 그건 아마도 내가 둘째이기 때문이고, 내가 다 못 누린 것들을 그녀는 풍족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나의 당당함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것은 맏이인 남편이고 그래서 우리가 그럭저럭 다른 입장을 헤아리며 두 아이 모두 사춘기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큰 갈등 없이 지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지난 금요일, 새 학기가 되어 등교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하교하는 딸의 전화를 받았다. 담임 선생님이 예고도 없이 학급 임원선거를 하겠다 하셨단다. 친구의 추천을 받고 딸아이 역시 즉흥적으로 소견발표를 했고, 학급회장이 되었다고 했다. 당연히 기뻤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와서도 내내 학급 임원을 했지만 그렇다 해서 심드렁하진 않았다. 진심으로 축하해 줬고 구체적으로 물어봐 주었다. 몇 명이 나왔고, 몇 표를 받았고, 어떤 공약을 발표했는지. 딸도 기분 좋게 엄마의 물음에 대답해 줬다. 그리고 딱 거기까지였다. 퇴근해 온 남편은 예고도 없이 임원선거를 했다니 의아해하면서도 진심으로 기뻐했다.



주말에 언니의 코로나 확진으로 엄마의 칠순을 축하해 드리러 가지 못하자 딸아이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학급회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는가 보다. 딸은 할머니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고, 친정엄마는 내가 그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섭섭해하셨다. 나중에 엄마는 내게 그렇게 정신이 없는 거냐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전화하는데 그 소식을 어찌 빠뜨렸냐며 나무라셨다. 그제야 내가 조금 무심했나, 무뎌졌나, 늘 그래 오던 녀석이라 당연하게 생각했던가, 딸이 엄마에게 섭섭해하는 부분이 이런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누나의 회장 당선 소식을 들은 아들 역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지만 예전 같은 부러움과 존경의 눈빛은 아니었다. 녀석이 뭔가 꿈틀, 하는 것을 어미는 느꼈다. 누나를 좋아하고 따르기에 누나가 하는 것은 뭐든 하고파 하는 아들이었다. 2학년 첫 학급 임원 선거 때 아쉽게 낙선한 녀석은 무척 상심했는지 2학기 땐 출마하지 않았다. 3학년 땐 코로나로 학급 임원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고 4학년 1학기에 다시 출마한 아들은 또다시 근소한 차이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무슨 소신이었는지 역시 2학기 땐 출마하지 않았는데 5학년 1학기엔 꼭 임원이 되어보겠다는 결심을 한 듯했다.



그게 참 기특하면서도 불안한 거였다. 아들 녀석은 열심히 발표 내용을 작성했고, 회장에서 떨어져 부회장에 다시 출마하는 것은 싫으니 상황을 파악해서 결정을 하겠다는 나름의 전략도 세웠다. 중학교까지도 성별에 따라 선거 결과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다른 입후보자들의 성별에 따라 즉흥적인 대처능력이 필요한 터. 아들은 시끄럽다고 누나에게 구박을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소견발표 연습을 했다. 녀석이 열을 올릴 때마다 왜 어미 가슴이 짜르르한 건지. 이렇게 공을 들인 적은 없는데 낙선하면 얼마나 좌절할 것인가. 그래 놓고 덤덤히 받아들이려 애쓴다면 그건 또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학교 가는 아들에게 그저 잘 다녀오라고만 인사했다. 그리고 선거가 치러질 시간 즈음 청소를 하다가 잠시 녀석을 떠올렸다. 그래, 삼세번이라는데 이번엔 한번 해보자꾸나. 응원의 마음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의 하교 시간이 되어 녀석의 전화가 걸려오자 역시나 별말 없이 학원에 잘 다녀오라 했다. 그러자 녀석도 그냥 그러마 하더니 갑자기 물었다.


엄마. 제가 수요일에 몇 시에 학원에 가죠?

하교는 1시 40분이고 수학학원은 4시라 대답하니 그럼 괜찮겠다 하기에 무슨 일이냐 되물었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학교 끝나고 전교 어린이 임원 회의에 가야 하거든요.


그 말을 듣고 녀석의 능청에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캐물으니 회장 선거에 여자 둘 남자 하나가 나왔는데 자기가 나서면 분명 여자아이가 회장이 될 거고, 부회장에서 그 남자아이와 붙으면 확률은 반반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임원이 되어보고팠던 자기는 일보 후퇴해서 부회장 선거에만 나갔고 당선되었다는 거다.



일단 녀석이 실망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안도했고 삼세번 만에 원하는 바를 이룬 것이 기특했다. 딸에게는 느껴본 적 없었던 신통한 기분이었다.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이 흐뭇함이었다면 아들에게서는 기쁨, 어쩌면 더 원초적이고 단순한 기쁨을 느꼈다. 무엇이 더 찐한 사랑이라고 그 누가 말할 수 있으리. 하지만 딸아이가 매사 서운해하고 서러워하기에 다시금 그녀의 입장이 되어 내가 그녀를 향해 들이대고 있는 기준의 질량을 내 마음 깊은 곳에 매달아 보았다. 그래서 나름으로 공평해지기 위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는 말을 삼켰고 친정엄마에게도 전화 걸어 알리지 않았다. 물론 두고두고 원망 듣지 않으려는 계산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보다는 지금껏 내가 확고하게 지켰던 내 틀이 늘 정당할 수만은 없다는 걸 스스로 알게 해주고 싶었다. 어느 방면에서든 나는 유연해져야 하니까. 그래야 앞으로 더 편안해질 테니까. 



딸이 바라는 건 너그러운 사랑이고 아들이 바라는 건 기대와 인정이라니, 인생 참 얄궂다. 하지만 그런 말을 담아내기엔 오늘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뿌듯한 엄마임을 인정하련다.


 



사춘기의 정점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한 아들과 이제 막 정점을 찍고 내려올 일만 남은 거라 믿고픈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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