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다가올 즈음 두 어머니는 우리 식구의 동태를 살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궁금해하신다. 아빠가 떠나기 전 엄마는 전혀 그런 내색 없으셨었다. 시어머니 역시 내가 십수 년 며느리로 살아온 동안 다녀갔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일흔이 넘은 두 어머니는 주말에 혹여 얘들이 올까, 궁금해하고 기대하신다.
엄마는 의연하고 담대한 사람이다. 그렇게 믿어왔고, 아빠를 보내드리며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랬기에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감사하다. 하지만 내가 낸 결론 안에 엄마를 가둘 수 없다. 아니 내 불편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엄마가 이제 칠십 노인이라는 사실이다. 주위에 늘 따뜻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인 엄마가 견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계시지만 사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은 어떻게도 채워질 수 없는 거니까.
시어머니는 그야말로 강한 분이다. 힘든 속내를 드러내는 법 없이 가족들을 위한 희생을 기쁨으로 아는 분. 나는 지금도 내가 어머니의 보호자란 생각보다 내가 어머니 그늘 아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오래 일하셨던 어머니는 은퇴 후 오래전 지어둔 시골집으로 완벽히 거처를 옮기고부터 여러모로 불편해지셨다. 마음도 힘들고 몸도 아프다. 언제가부터 내게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아들에게도 하지 않는 말들을 하시곤 했다. 내가 꿋꿋이 마음을 열고 그 모든 얘기들을 들어드릴 수 있었던 건 어머니가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 어머니도 이제 칠십이 되셨다. 시골집에서 벗어나는 일 없이 텃밭 가꾸기와 살림에만 골몰하는 생활을 하신다. 어머니도 외롭다. 아버님이 계시지만 그것과는 상관없는 외로움을, 그래서 더 깊어질 수도 있는 외로움을 나는 안다.
엄마는 예상하지 못한 순간 너무나 급작스레 혼자가 되었고 그랬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조금 이르게 엄마의 여생에 대해 골똘히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과 5년 후, 10년 후 그리고 그다음까지 조금은 세밀하게 그려보았고 그 모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들을 가늠해보았다. 언니와 나는 언제든 엄마와 함께 살 준비가 되어있었고, 까다롭지 않은 엄마 역시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실 수 있었다. 건강하고 여유 있는 엄마에겐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한결 놓였다.
시어머니의 노후는 사실 내가 적극적으로 고민해보지 않은 부분이었다. 일단 나는 며느리이고, 아직 아버님 건강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번에 사돈이 그리도 황망히 세상을 떠난 것에 대해 생각이 많으셨을 듯하다. 아버님 역시 지병을 가지고 계시고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시니 결국 당신이 남겨지실 거라 예상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오히려 염려되는 쪽은 어머니였는데 아버님이 계시다는 이유로 여러 걱정들이 가려질 뿐 아니라 소통이 되는 과정 역시 직접적일 수 없어서였다. 딸도 여자 형제도 없는 어머니는 이따금 여러 복잡한 마음들을 내게 여과 없이 보여주시곤 했는데 그러함에도 내가 뾰족한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던 것은 어떤 판단도 내 몫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어머니는 나와 둘 만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와인을 한 잔 따라주시고는 여느 때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셨다. 류마티스를 오래 앓고 있는 어머니가 이 커다란 시골집에서 기거하신다는 것이 몹시 불편해진 아들 며느리가 몇 차례 이사를 권유한 뒤였다. 거동이 불편해지는 큰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여기서 십 년을 기약한다 하셨고, 그 이후에는 우리 집 가까이 오시겠다 하셨다. 우리 부부는 사실 친정 엄마도 시부모님도 우리 근처에 계시길 희망해왔고 나이 드신 후라면 더더욱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솔직히 당신들이 기대실 수 있는 기둥이 되어드리겠다는 의지보다 우리의 걱정과 부담을 줄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제든 살펴볼 수 있고 무슨 일에도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모시고 싶었다. 마음이 불편할 바에야 몸 힘든 것이 기꺼운 남편의 간절한 바람이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아버님이 떠나시면 친정엄마 옆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도 하셨다. 조금 더 건강한 사람이 밥해주며 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는데 감사하면서도 참 마음이 아렸다.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면서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잘 견뎌내고 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지내고 있음에도 친정엄마는 쓸쓸할 때가 많으실 거다. 따뜻한 지인들이 많더라도 다른 식구가 없는 집의 문을 여닫는 일은 즐거울 수가 없다. 여기저기 몸이 불편해짐을 느끼면서도 그 커다란 집 살림을 아우르고 살겠다는 시어머니도 마음이 헛헛할 때가 많으실 거다. 나이가 들어간 다는 건 그런 일인 것 같다. 진정한 기쁨도 행복도 오롯이 나에게서부터 시작되기 어렵다. 마음의 부담이 줄어든 자리엔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들이 쌓여간다.
아직 손 갈 데가 많은 아이 둘을 키우는 나는 영락없이 낀 세대가 되었다. 위아래로 살피고 마음 쓰는 일이 지금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당연한 삶의 과정이고 내게 주어진 발달과업이라 여긴다. 부모님의 여생에 대한 고민의 과정은 결국 내 노후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테니까. 사는 건 다 그런 것 같다. 다만 다시금 느끼는 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절절한 사랑이다. 두 어머니의 선택이 당신들보다 자식의 안위를 위한 것임을 나는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결국 그런 부모가 될 것이라 예감한다. 그 예감은 슬프고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