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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Nov 23. 2021

결혼이란 나에게

 치열하고도 안전한 관계   


요 근래 남편과 나 사이는 참으로 평화롭다. 다툼이 없어 고요한 상태인 것이 아니라 여전히 다름을 느끼는 그 순간마저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익숙해졌다는 말은 그로 인해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두 달 뒤면 그와 결혼한 지 16년. 인간의 삶도 여느 생명체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빠른 속도로 치열하게 성장하고 일정 시간 머무르며 오래도록 서서히 퇴화한다. 그러니 앞으로 그보다 더 긴 시간이 남아있다해도 15년 즈음은 결혼생활을 점검해보기 적당한 시기인 것 같다. 출산과 육아의 거대한 산맥을 넘어 완벽히 개별적 존재로 자리매김 중인 아이들의 정서적인 독립을 지켜보기 시작하는 때이자, 다시 2자 관계로 회귀하는 길 모퉁이에 서 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어떤 단계에서도 대비는 필요한 법이지만 나는 지금이 어쩌면 인생 가운데 남은 삶의 품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결혼, 그리고 결혼생활에 대한 의미를 떠올리고 그 느낌과 생각들을 정리해보고픈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내가 애초에 가졌던 결혼에 대한 막연한 기대들을 바로잡으며 거세게 부딪쳐 다치고 또 상처를 주면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다는 불변의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그 순간을 지나 보내야 정리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과정들은 어떤 형태로든 결론에 도달하기에 정리하고픈 욕망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은 지혜로운 방법들을 터득했을 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될 게 분명한 상황들을 지금까지 보다 더 유연하게 관통해내야겠다는 다짐도 한몫을 했다. 정리의 목적은 이다음을 위한 발판이므로.



남편과 나는 한 편으로 준비된 부부였고 어떤 면으로는 철부지였다.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시기가 내가 논문을 쓰던 때와 일치했던 탓에 우리는 같이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시험에 합격하고 나도 논문을 쓰고 취업을 한 것은 비슷한 시기였고, 그 뒤로부터 꼭 1년 후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애쓰던 시간을 함께 견뎠고 기쁨도 함께 맛보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삶에서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었던 그는 삶을 다각도로 살필 수 있는 포용력이 있었고 자신의 상처와 싸우던 나 역시 분석받고 상담을 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치유했다. 결국 인간은 결핍 때문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마련이지만 우리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결핍에 따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 완전할 순 없어도 특별한 문제없이 사회적으로 잘 기능하는 독립된 인격체였음은 분명하니 결혼이라는 일생일대의 과업에서 첫 단추가 틀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은 경제관념이었는데, 둘 다 땡전 한 푼 벌어둔 것 없음에도 개의치 않고 결혼을 선언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지만 당시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 다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은 의당 부모님이 대주시는 거라 믿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양가 부모님은 모든 것을 준비해주셨다. 경제적인 문제에서 조금의 갈등 없이 결혼하게 된 것이 복이라면 복이겠으나 우리는 그 복잡다단한 과정을 뛰어넘은 대가를 분명하게 치러야 했다.



결혼 후엔 당연히 우리가 우리의 살림을 책임지고 꾸려나가야 했고 둘 다 벌고 아이가 없을 땐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휴직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데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자 우리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준을 새로 마련하고 대대적으로 재정비하여 살림을 꾸려나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런데 그때라도 그 과정을 아프게 밟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땠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부부갈등의 가장 큰 원인은 결국 돈이라는데, 치사하기도 하고 서럽고 짜증도 나지만 함께 살아나가야 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연인이 아니라 가족이 되고부터 경제적인 문제는 부부관계의 핵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부가 살아가는 곳은 엄연히 현실이다. 그러니 현실적인 대비와 구체적인 계획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그것이었고 그랬기에 그 문제를 가지고 맹렬히 부딪치곤 했다. 



물론 지금도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고 어느 분야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조율하고 있다. 아마 이건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진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어떻게든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의사를 전달할 방법을 찾고 행여 상처가 될 말이 나왔을 땐 바로 사과하는 것. 사실 그것만으로도 못 견딜 게 없구나 느껴지는 요즘이다.



결혼 과정에서 내가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 자체가 내겐 너무나 중요했고 의미 있었더랬는데 시간이 지나 알지 못했던 진실을 확인한 후엔 전혀 다른 의미의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사건이었다.



대학원 세 번째 학기에 나는 심리검사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수님은 과제로 지능검사로 시작해 문장 완성검사, mmpi , 심지어 로샤까지 시행한 완벽한 풀 배터리 검사 결과보고서를 요구했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수련생의 평가이기는 하지만 이런 기회를 잡기 쉽지 않거늘 아무도 검사에 응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남에게 속속들이 보여주는 일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나라도 주저했을 것 같다.


나는 당시에 나를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오던 남편에게 검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사귀기 전이었기 때문에 감정적인 개입 없이 검사가 진행될 순 있었으나 아직 내 마음을 확인하지 못한 그로서는 엄청난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거짓으로 응하면 창피당할 것이고, 솔직히 임했을 때 날 것의 자신을 발견하면 내가 뒷걸음 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는 흔쾌히 해주겠노라 대답했다. 리포트의 압박이 대단했던 나로서는 난감한 부탁을 했다는 죄스러움 보다는 고마움이 컸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결과는 그냥 그랬다. 지능은 높게 나왔지만 항목별 불균형이 심했고, 공감능력이 상당히 저조하게 나왔던 것이다. 당시 연구소에 함께 있던 내 슈퍼바이저는 그의 프로파일을 보자마자 내게 말했었다.


'사귀지 마라. 너 힘들겠다'


 나는 몇 날 며칠 고심하며 보고서를 써서 제출했고 그를 불러내어 긴 시간 매우 냉정하게 검사 해석을 해주었다. 굳이 그리 냉정하게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내가 왜 그랬을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는 그의 태도를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조금도 불편한 기색 없이 경청했고, 또 스스럼없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태도에 감명받아 그가 좋아졌다. 방어하며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사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그 여유가 좋았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겠으나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는 가까워졌고 사귀게 되었고 결국 결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결혼 후 5년쯤 되었을까. 어린 딸을 재워두고 밤에 식탁에 마주 앉아 연애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물었다. 언제부터 자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느냐고. 그래서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검사를 해석해주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런데 내게 그리도 중요했던 그 순간을 그는 나와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 그 검사 결과 하나도 기억 안 나. 사실 하나도 안 들었어. 들리지 않았어. 난 그냥 너랑 있는 게 좋았어. 그냥 나는 계속 네 얼굴만 봤어.'


정말 멍. 했다. 너무 큰 충격이었는데 그는 깔깔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결혼했고 아기가 태어났는데. 지금에야 나도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지만 정말 그 순간엔 당황스러웠고 내 선택이 옳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서로의 믿음은 일치할 지라도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고 충분히 다르게 느끼며 각자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것. 사람은 정말이지 내 방식대로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것. 그것은 내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그를 사랑하게 된 계기가 그저 나만의 진실이었다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큰 울림이었고 그 이후 우리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결혼이란 그런 것 같다. 같은 것을 보고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교집합을 찾아나가는 기쁨을 누림과 동시에 도저히 좁혀질 수 없는 간극조차 익숙해져서 더는 불편해지지 않는 과정.


그러니 결혼은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부부는 깊은 공감과 아픈 인정의 과정을 치열하지만 가장 안전하게 배워나갈 수 있는 관계이므로. 현실을 살아감에 있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가장 알맞은 전방위적인 향상의 기회는 내게 있어서 결혼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믿는다. 





매년 결혼기념일 축하카드를 써주는 남매가 있어 내 결혼은 더욱 옳은 것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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