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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쁜공감 Dec 17. 2021

아들의 반성문자 그리고 딸의 위로

엄마도 부지런히 자라고 있어

아들은 사랑스럽지만 내겐 정녕 쉽지 않은 아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그저 나의 문제라 생각했다. 강박 성향이 있는 유연하지 못한 엄마. 취미라곤 책 밖에 모르는 내향적인 아빠 밑에서 자랐고 남자 형제도 가까이 지내는 남자 친척도 없었다. 내가 처음 접한 남자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남이었고 대부분 성장한 어른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 아들이 이렇게 힘들구나 여겼다.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라서 두려운 거구나. 그 과정을 너무도 모르는 나는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이구나. 사실 그런 자책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그렇잖아도 인정 욕구로 그득 찬 나였던 것을.



하지만 녀석이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건너가고부터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상담 때 만나는 선생님들의 반응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네 살 터울 누나를 통해 의례 칭찬을 늘어놓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그 시간이 내겐 몹시 낯선 장면으로 다가왔다. 아이는 평범하지 않았다. 감수성이 풍부했지만 지나치게 고집이 셌다. 제 생각은 어떻게든 입으로 뱉어야 했고,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상황을 못 견뎌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고는 해도 기관 생활에서는 분명 문제가 될 사항이었다.



당시에는 너무 많은 의문이 들었고 결국 화살은 내게로 돌아왔다. 나는 분명 충분히 사랑해주었고, 존중해주었는데 왜 아이는 이렇게 고집불통일까. 나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문제일 거야. 담대하지 못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나의 유약함이 아이에게 혼란을 주었을 거야. 내 문제를 알아간다는 것이 당시에는 안도가 아니었다. 불안은 커져갔고 당연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에도 영락없이 담임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영리하다고 했다. 하지만 잽싼 판단들이 세련되지 못한 사회적 기능과 만났을 때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당신은 아이에 대해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지만 이따금 아이를 만나는 전담 선생님들을 염두하고 한 말씀이었다.  뻑뻑 우겨대면서도 말랑말랑한 감성을 지닌 아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주는 선생님이라 다행이었지만 선생님의 태도는 수용과 배려는 아니었다. 나는 저 자세가 될 수밖에 없었고 선생님과 만나는 자리는 늘 가시방석이었다.



아이들의 관점에선 무섭고 엄마 입장으론 무던했던 2학년 남자 담임 선생님 덕에 엄마는 몸이 아팠음에도 그 해를 마음 편하게 보냈고, 그래서 우리 아이가 많이 다듬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코로나 이후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워낙에 아이를 만난 적이 없어 제대로 파악이 어려우셨던 것 같고 무엇보다 열의가 없었던 탓에 그저 시간을 흘려보낸 느낌이었다. 4학년이 되어 만난 선생님은 지금까지 학부모로 보낸 8여 년간 만난 선생님 중에 최고로 열정이 넘치는 분이었고 당연히 아이는 완벽주의 선생님께 여러 면에서  다양하게 지적을 받았다. 자신을 자꾸 건드리며 자극하는 여자아이와 대차게 붙은 날, 엄마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선생님은 아이에 대해 그 누구보다 상세히 알고 계셨다.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도 파악하고 계셔서 놀랐다. 아이는 복이 많은 셈이었다. 선생님은 아들이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란 아이로 느껴진다 하셨고 아이가 보이는 태도는 타고난 기질 때문이라 했는데 그 말은 나에게 무작정 위로가 되었다. 엄마로서 내가 애쓰는 부분을 알고 계셨고 그럼에도 불구 염려되기 때문에 함께 노력할 부분을 짚어주었다.



선생님을 만나고 온 뒤 사실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마음 편히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조금 더 명료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분명 다듬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딸과 아들은 많이 다르지만 커가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내적 성장을 나는 이미 깊이 체득한 바 있으니.



방학 동안 엄마 아빠는 나름의 노력을 했고, 아이도 그만큼 쑤욱 자라서 2학기엔 선생님으로부터 나아진 부분에 대해 무한 칭찬을 받았다. 아이뿐 아니라 엄마까지도. 녀석이 참고 인내하는 법을 조금 배운 모양이었다. 그런 긍정적인 피드백이 나를 힘나게 했다. 아이는 분명 제 자리를 잘 찾아갈 것이다. 엄마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누나가 그랬듯이. 양상이 다를 뿐 흔들리지 않는 시기가 어디 있겠냐며.



여전히 집에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는 엄마를 힘들게 한다. 단 한 번도 단 하루도 쉽기만 했던 기억은 솔직히 없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과정이고, 아이의 원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니 한결 나아졌다.



그런데 오늘 영어학원 마치기를 기다리며 차에 앉아있던 엄마에게 아이가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이밀었다. 무슨 일이야, 뭐야, 왜 그래? 하이톤으로 다그치고 싶은 마음을 꼭꼭 누르고 눈물을 닦아주며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물었다. 여느 때라면 자기 입장에서 장황하게 상황 설명을 하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을 것이다. 물론 녀석은 제 관점으로 그 상황을 그려내긴 했지만 마지막에 조용히 덧붙였다. 그런데 오늘 제가 잘못한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에게 버릇없이 했어요.  일단 벌어진 상황 자체는 속상했지만 녀석의 달라진 반응이 놀라웠다.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하지 않으려 몸부림쳤을 것이고 계속 딜하려 하며 제 의견을 내세웠을 것이다. 참다못한 선생님이 오늘은 그만 가라고 하셨단다. 남자아이들을 잘 다루는 나름 엄격한 선생님인데 녀석은 정말 강심장이다. 하지만 그렇게 혼나고 나니 무섭고 속상했던 모양이다. 눈물까지 보인 걸 보면. 그 얘기를 듣고 있다가 말했다. 요즘 영어학원 숙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니 이참에 좀 쉬어갈까. 아니면 선생님께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고 용서를 빌까. 아이는 자기가 잘못했으니 선생님께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 학원을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 선생님이 저를 다시 받아주실까요? 큰 아이를 쭉 맡겼던 선생님이고 어떤 분인지 너무 잘 알기에 녀석까지 부탁했던 거였다. 선생님이 어떤 지점에서 화가 나셨을 지도 너무나 상상이 되었다. 그래서 선생님은 네가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해주실 거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시무룩한 녀석이 레고를 가지고 노는 동안 나는 작은 걱정도 하지 않았다. 야들야들 휘둘리는 내가 이렇게 심지가 굳어졌다니. 개구쟁이 아들 키우다 보면 이렇게 되는 건가 나 자신이 신통할 지경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선생님께 전화가 걸려왔고 선생님은 되레 내게  미안해하셨다. 아이의 반응을 전하니 깜짝 놀라신다. 문을 박차고 나가자마자 목청 높여 선생님이 이러이러했고 나는 억울하다고 그렇게 읍소할 줄 알고 계셨던 모양이다. 방법이 그다지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으나 전환의 계기가 필요했던 시점인만큼 좋게 생각하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선생님은 녀석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셨다. 아이는 답장을 보내면서 엄마가 보지 못하게 가렸다.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과 전화 통화하는 걸 본 딸아이가 궁금해했던 탓에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괜찮더라고.  **가 한순간에 확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지거든. 예전 같으면 엄마에게 되레 큰소리치면서 자기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그랬을 거야. 엄마 말을 듣고 있던 딸이 말했다. 엄마. 엄마랑 **가 좋은 관계를 잘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 말에 왜 갑자기 울컥했는지. 그러면서 다시 말했다. 사실 **가 저보다 좀 세게 하는 편이긴 하지만 난 걔가 하는 말이나 행동, 다 이해돼요. 나도 그랬거든요. 다르지 않아요. 표현이 다를 뿐인 거예요. 그런데 지금 저는 그렇지 않잖아요? **도 분명 저처럼 다 괜찮아질 거예요. 세상 그 어떤 말이 이보다 강한 힘을 가질까. 누구의 말이 이렇게 내 마음을 깊이 어루만질 수 있을까. 너무 고마웠다.



오늘도 엄마는 배우는구나. 많이 다듬어진 딸에게. 그리고 아직 그 과정 중에 있는 아들에게도.



이 한문장에 담긴 너의 진심을, 성장의 과정을, 엄마는 믿음으로 지켜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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