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한 세상을 재밌게 사는 법
할머니 일행 다섯 분이 지하철을 타셨다. “너 나중에 신분당선 탈 거지?” “응. 넌 2호선?” 하는 대화가 오갔다. 4호선 퇴근시간이라 사람이 많았고 다들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일행과 대화를 하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도 역에 멈출 때마다 커졌다. 평소였다면 거슬렸을 지하철에서의 소음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나도 친구와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온 덕일까.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 분들과 오랜만에 만나 우정을 쌓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모습이 따뜻하게만 보였다. 할머니들은 별 얘기 안 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나한테는 어쩐지 자랑처럼 느껴졌다. 미래의 나와 내 친구들의 모습이 저럴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이런 식으로 끝이 났다면 미소 지을 한 순간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역 하나를 지날 때마다 들려오는 대화에 내 하루 끝은 달라졌다. “어머. 이번엔 뒤에서 열리네. 얼른 내려. 조심히 가.”라며 친구를 배웅하는 목소리. 나는 몇 정거장 더 지나 충무로에서 내려야 했고 할머니들 중에도 나와 같은 곳에서 내려야 할 분이 있었다. 충무로 전 역에 도착하자 “담에 저짝에서 열릴 수도 있으니께 잘 봐라.”하고 대화를 주고 받으셨다. 지하철 내부를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지하철 한쪽 벽에는 내릴 문의 방향까지 친절하게 표시된 노선도가 있다. 4호선의 경우 왼쪽이면 노란색, 오른쪽이면 흰색이다. 할머니들은 노선도를 보지 않으셨다. 대신에 역 하나마다 문이 어느 쪽으로 열릴지 맞히는 도전 골든벨을 즐기고 있으셨다. 출구와 가까운 열차 출입문, 빠른 환승이 가능한 칸 그리고 내리는 문의 방향까지 휴대폰 앱으로 확인하고 타는 나와는 사뭇 달랐다. 할머니들께 지하철 한 정거장 한 정거장은 미지의 세계였다. 가까운 쪽에서 열리면 이번엔 운이 좋았네, 먼 쪽에서 열리면 아이고야 지나가겠습니다. 확률이 50%인 홀짝 게임과 다를 바 없었다. 나는 내가 있던 쪽이 열릴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혹시나 반대편이 열리면 이 많은 사람을 뚫고 어떻게 가나 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두근대는 마음이 옆에 있는 나에게도 전해져 결말을 아는데도 괜스레 조마조마했다. 충무로역에 도착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이짝이네.” 하며 기뻐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에 웃으며 3호선 환승 통로로 걸어갔다.
할머니께 충무로는 이쪽에서 열린다고 알려드릴까 몇 번을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지랖을 부리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할머니들의 기쁨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컸다. 내가 할머니들의 대화에 끼어들면 오히려 게임을 망칠 것 같았다. 게임은 직접 문제를 맞닥뜨리고 풀어나가는 것이 묘미인데 내가 답을 다 제공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 할머니들은 지하철을 타는 내내 즐거워하셨다. 그 이유는 할머니들께서 문 하나에도 아이처럼 순수하게 즐거워할 줄 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무엇이든 재밌어 하고 신기해한다. 내 다섯 살 사촌동생은 새가 걸어가는 모습에도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열두 살이 된 지금에는 새가 날든 고꾸라지든 관심이 없다. 내 사촌동생처럼 대부분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세상이 놀랍지 않다. 시간이 흘러 경험이 쌓인다는 것은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와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을 뜻하는 일상(日常)은 하나의 형태를 뜻하는 일상(一狀)이 된다. 틀에 박히고 재미없는 것이 된다. 재미는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찾아오는데 나이가 들수록 예상이 대부분 들어맞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 예상하지는 못하더라도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손가락의 움직임 몇 번으로 궁금증을 해결하며 동시에 시시함도 얻는다. 대중교통은 예측도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대체로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열리는 문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은 시시하다. 늘 같은 통근길, 통학길에 큰 의미를 두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가까운 쪽 출입문이 열릴 확률에 50%를 부여하고 충무로역까지 얼마나 재밌는 지하철 게임을 하신 걸까.
아쉽게도 나는 매번 놀이를 할 위인이 못 된다. 지하철 탈 때를 포함해서 나는 많은 곳에서 극성이다. 사거리 신호등이 켜지는 순서를 외워 건너갈 때의 최단시간을 계산한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목적지에는 빨리 도착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 타면 무조건 닫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는 동안 원하는 층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혀야 출발하기 때문이다. 최적 경로에 따르는 것은 효율적이나 즉흥성이 없어 가끔 시시하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도리어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집착하다 골머리 썩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가끔은 할머니들처럼 랜덤게임을 해봐야지. 알아도 모른 척. 그리고 몰라도 찾아보지 않기. 그리고 죽는 날까지 세상은 아직 시시하지 않다고 보여주는 어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