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이타적인 인간을 믿는 사상이다
탈모 치료에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자 탈모로 고생하는 이들은 이를 반겼다. 탈모 환자들은 스트레스가 매우 크며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희귀병 환자들은 탈모 대신 희귀병에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비싼 약값 때문에 금전적 부담이 크고 국가가 이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글에서는 J.S.밀의 책 “공리주의”를 바탕으로 희귀병 환자에게 건강보험을 우선 적용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
밀은 다수의 행복만 키우면 된다는 잔인한 주장을 펼친 적이 없다. 오히려 밀에 따르면 개인의 결정이 사회를 고려하는 행동일 때 세상은 최고로 발전한 상태이다. 밀은 세상을 팍팍한 곳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인 곳으로 본다. 발전을 이룩하지 못한 사회에서 개인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할수록 사회 구성원 모두에 대한 고려를 하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일체감이다. 밀은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공감할 것을 강조한다. 이런 면에서 공리주의는 실용적이다. 칸트가 도덕적 행위에서 고려대상이 아니라고 본 감정마저도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함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양심이 내리는 판단과 사회에서 내리는 외부적 제재인 포상과 징벌이 일치할 때가 사회적 일체감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으로 사회는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밀은 개인이 고려하는 대상을 사회 구성원 전부로 확장한 것을 공리주의의 진정한 의미로 이해한다.
탈모 치료 대 희귀병 치료 논의의 핵심은 사회 구성원이 희귀병 환자에 대하여 사회적 일체감을 함양하는 데 있다. 희귀병 환자 사례는 신문 기사나 뉴스에서 가끔 다루어지지만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은 아니다. 다큐멘터리나 특집 방송에 몇 번 등장할 뿐 일상생활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의 발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희귀병 환자는 5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유명 SNS인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희귀병”으로 검색하면 겨우 1천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환자 수에 비해 게시물 개수는 턱없이 적다. 약값이 높은 것을 떠나 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제약회사의 관심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탈모는 이미 공론화된 주제이다. 2022년 10월 기사에 따르면 2021년 탈모 환자는 24만 명을 넘었다. 집계된 희귀병 환자보다 적은 수치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에서 해시태그(#) “탈모관리”를 검색하면 약 24만 4천 개 이상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탈모 관련 글은 수만 건도 넘게 찾을 수 있고 인터넷에서 탈모인을 놀리지 않는 것은 암묵적 규칙이 되었다. 탈모로 고생하는 이들은 이미 사회의 고려대상 안에 있다. 즉, 탈모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일체감이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 된다. 탈모 시장까지 발전했을 정도이며 그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탈모를 막아준다고 광고하는 샴푸는 물론 각종 약까지 보급되어 있다. 탈모약에 대한 수요가 높기에 기업들은 여기에 주목했다. 그리고 치열하게 경쟁한 결과, 한때 비쌌던 약값도 이제는 한 달에 3만원 대로 떨어졌다.
희귀병도 분명한 질병이다. 질병에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은 더 발전해야 함을 의미한다. 사회적 일체감은 모든 영역에서 균등하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함양되기에 부족한 영역을 채우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깝게 느끼는 쪽에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멀어 보이는 곳으로도 개인과 사회의 시선이 넘어가야 할 때이다.
본 글은 밀의 "공리주의"를 읽고 대학교 수업의 과제로 제출한 것입니다.